사무엘하 20장 [하나님의 사람을 비난하거나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지옥은 물론 이 땅에서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구약전장 강해

 

사무엘하 20

[하나님의 사람을 비난하거나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지옥은 물론 이 땅에서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1절입니다.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원어에는 ‘a man of Belial’입니다. ‘Belial’은 마귀의 다른 표현입니다. 마귀의 아들, 즉 아주 악한 자입니다. 100% 지옥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세바라는 이스라엘 중에 한 악한 자가 말하는데 다윗 왕이 유다 지파만 챙기고 이스라엘은 찬밥 신세로 여기니 나눌 분깃이 없으며 다윗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고 말한 겁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떠나가고 유다만 남게 됩니다.

 

2절입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다윗왕은 예수님의 상징이고 예루살렘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구원에서 멀어지고 유다 지파만 구원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3절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

니라

다윗의 특별한 모습이 나옵니다. 시므이, 사울, 시바, 그리고 압살롬도 다 용서한 사람인데 지금은 후궁을 잡아서 별채에 가두게 됩니다. 성군 다윗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요? 이제까지 다윗의 모습은 항상 인자하고 긍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0명의 후궁에 대해서는 배신했다고 별채에 죽는 날까지 생과부로 지내도록 합니다. 아마도 10명의 후궁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다윗이 왜 그랬을까요? 후궁은 첩입니다. 왕에게 여자는 먼저 결혼식을 통해 얻은 아내, 즉 왕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첩이 있는데 첩은 아직 성관계를 하기 전 상태에 대기조로 있는 후궁입니다. 솔로몬은 아내만 700명이 있었습니다. 후궁이 300명 대기조로 있었죠. 지금 다윗이 후궁 10명에게 궁을 지키라고 했는데 압살롬이 오자 문을 열어 준 겁니다. 그리고 왕궁 옥상에서 대낮에 동침합니다. 만약 제가 후궁 10명 중에 한 명이었다면 처음부터 문을 열어주지 않고 싸우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건물 옥상에서 동침할 위기에 있었을 때도 압살롬이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 칼로 찔렀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독살을 하든, 다른 방법을 쓰든, 기회를 봐서 얼마든지 압살롬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후궁 10명이 압살롬 편이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만 다윗편이었지 마음은 압살롬에게 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지금 화가 난 것입니다. 압살롬 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도 이 때문인데 우리가 누구 편이냐가 중요합니다. 벨리알, 즉 마귀편은 용서가 안 됩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것은 그냥 두지 않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로 가만두지 않고 가두어 버린 겁니다.

 

 

4절입니다.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세웠습니다.

 

5절입니다.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6절입니다.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아마사가 지체하자 아비새에게 명령합니다.

 

7절입니다.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8절입니다.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9절입니다.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내 형은 평안하냐?’ 형은 오번역이고 형제입니다. 요압이 나이가 더 많습니다. ‘평안이 아니라 원어는 건강하냐?’입니다.

 

 

10절입니다.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요압의 칼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요압의 지혜가 여기서 나오는데 아마사를 만나기 전에 미리 일부러 요압이 칼을 떨어뜨린 겁니다. 그래야 아마사에게 안심하고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하는 척하며 왼손에 미리 예비해 놓은 칼로 찌른 겁니다. 계획된 살인입니다. 배에서 창자가 쏟아졌다고 했는데 창자는 아랫배를 갈라야 흘러 나옵니다. 그것도 찌른 것이 아니라 긁어야 창자가 흘러 나옵니다. 바로 죽은 걸로 봐서 심장을 찔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랫배만 찌른다고 바로 죽지 않습니다. 먼저 심장을 찌른 후에 아랫배를 긁은 겁니다. 아니면 이 말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정말 끔찍한 살인은 저질렀는데 요압이 왜 그랬을까요?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이유는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적군의 장관은 천국 못 갑니다. 심판입니다. 물론 요압도 지옥에 가지만 요압을 통해 아마사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네가 왜 압살롬 편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예배를 드리면 되지 장소가 중요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후배가 교회 다니고 있을 때 절에 가서 기도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스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 누구 편이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합니다. 아마사가 다윗 편에 있어야 하는데 압살롬 편에 있었기 때문에 요압을 통해 심판하신 것입니다. 요압이 더 악한 자였지만 악한 자를 통해 심판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아마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느 편이지 잘 살펴야 합니다.

 

11절입니다.

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아마사 곁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이며 요압을 따라 다윗을 위하는 자는 누구냐 하니

오번역입니다. 원어는 요압에게 은혜를 주는 자가 누구며, 다윗을 위하는 그 자로 하여금 요압을 따르게 하라입니다. 요압의 부하들이 드디어 회복된 겁니다.

 

12절입니다.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아마사는 밭에 던져졌는데 지옥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지막 모습이 천국 지옥을 말해주는데 지금 아마사는 지옥입니다. 왜일까요? 왜 압살롬 편에 서 있었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편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 무조건 늘 서 있어야 합니다. 아브넬이나 아마사 둘 다 적군 편에 있었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가니라

 

 

14절입니다.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세바가 지금 이스라엘 전국을 다니며 군사들을 규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성문이 아니라 성벽을 큰 통나무로 부수고자 한 것입니다.

 

16절입니다.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절입니다.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절입니다.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오번역입니다. ‘사람들은 아벨에게 가서 지혜를 반드시 구하라. 그러면 문제가 끝난다.’라는 옛날 속담을 여인이 말한 겁니다.

 

19절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20절입니다.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절입니다.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여인이 담대하게 세바의 머리를 성벽에서 던지겠다고 말합니다. 왜 이 여인이 겁도 없이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성을 지키려는 마음, 성을 사랑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천국 갈 확률이 많습니다. 성을 사랑한 겁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한 겁니다. 다윗을 사랑한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합니다. 이 여자는 여자의 몸으로서 수많은 사람의 지도자인 세바의 머리를 내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요? 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용기가 생기고 담대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많아지고 겁이 많아집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모릅니다. 우리가 언제 강해질까요? 사랑할 때입니다. 이 여자가 성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담대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일의 승패는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누가 사랑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면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평소에는 모릅니다. 위기 때 알게 됩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불사하고 나섭니다. 이 여자는 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을 불사하고 세바를 내 주겠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22절입니다.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일이 쉽게 해결됩니다.

 

23절입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요압이 아마사를 없애고 드디어 군대 장관이 됩니다. 그런데 요압은 솔로몬 때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갔습니다. 왜 지옥 갔을까요? 이번 사건도 있지만 나중에 아도나이가 반란을 일으킬 때 그 쪽으로 붙게 됩니다. 다윗을 잘 지키다가 결국은 적군에 들어가서 반란에 합류하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숨길 수 없게 됩니다. 악한 사람은 결국은 악한 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다윗의 군사 가운데 3위에 해당하는 엄청 용맹스런 사람입니다.

 

24절입니다.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절입니다.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아비아달은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인데 결국은 지옥에 갑니다. 언제 배신하게 되느냐? 마찬가지로 아도나이가 반역할 때 그쪽으로 가게 됩니다. 솔로몬이 나중에 요압과 아비아달을 집으로 가라고 합니다. 아비아달은 제사장 엘리의 마지막 후손입니다. 엘리의 혈통이 끝나게 됩니다. 엘리 뿐만 아니라 엘리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다 지옥에 갔습니다. 이것은 엘리의 죄와 가문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가 이어져 온 것입니다. 다윗에게 그렇게 헌신했던 아비아달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도나이 반역 때 배신으로 인해 지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이 반역하고, 세바가 반역하여 힘든 상황인데 나중에 또 아도니아가 반역을 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반역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하나님과 싸우는 것입니다. 나중에 솔로몬이 둘 다 처리합니다. 제사장 직분도 사독만 이어갑니다. 우리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영적 상태가 어떤지 모릅니다. 나중에 알게 됩니다. 내가 어디 있느냐가 나를 결정합니다.

 

 

26절입니다.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이라는 사람 이름인데 다윗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다윗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예정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입니다. 실패한 사람도 있고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모형인데 지금 이 사람들이 다윗을 위해 죽습니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들이 다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신앙이 어려운데 상대가 사람인데 하나님처럼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원리가 그런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누구나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어려운 것입니다. 다윗도 항상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맛이 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변함없이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말씀이 기록될 이유가 없습니다. 다윗을 계속 따랐느냐, 대적했느냐가 결정합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내가 누구에게 충성했었는가가 계수됩니다. 다윗에게는 37명의 부하가 있었는데 다윗 때문에 천국이 확보된 사람들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개인적인 영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우리는 내면으로 충성과 사랑을 하는데 누구에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평가하고 이해할 때 개인적인 지혜가 아니라 충성에 결정됩니다. 그 충성이 어디를 향하느냐, 그 지향점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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