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6장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마지막 십자가 앞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떠나셨다 생각해 추종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는 영적 진실, 겸손 소유자]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구약전장 강해

 

사무엘하 16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마지막 십자가 앞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떠나셨다 생각해 추종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는 영적 진실, 겸손 소유자]

 

1절입니다.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마루턱은 올리브 산 꼭대기입니다. ‘시바는 여왕이 아니라 므비보셋의 남자 종 이름입니다.

 

2절입니다.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3절입니다.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네 주인의 아들은 므비보셋입니다. 지금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있는데 시바의 말은 내 아버지의 나라즉 사울 왕의 나라가 회복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지금 다윗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시바의 말은 므비보셋이 지금 혁명, 또는 반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항상 식탁에서 함께 한 자입니다. 당연히 이 말을 들을 때 열 받을 것입니다.

 

4절입니다.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사울의 모든 재산을 다 므비보셋에게 주었는데 반역한다고 하니 다윗이 열 받아서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 시바 네가 다 가져라고 말한 겁니다. 정말로 므비보셋이 반역을 계획했을까요?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다윗이 순간 맛이 가서 열 받은 겁니다. 진실은 나중에 알려지는데 므비보셋이 다리를 저니까 나오지 못하고 시바만 보내 다윗을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나중에 므비보셋을 다윗이 만나서 진실을 알고는 재산을 다시 회복시켜 줍니다. 거짓을 말한 시바도 문제이지만 다윗도 맛이 가서 분별력을 잃은 것이 문제입니다.

 

5절입니다.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시바는 속이는 경우고 시므이는 저주하는 경우입니다.

 

6절입니다.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절입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피를 흘린 자여피는 죄를 의미합니다. ‘너 죄 지었지?’라고 말한 겁니다. ‘사악한 자여’ ‘마귀의 자녀여가 원래 의미입니다. 다윗처럼 공인된 의인을 향해 마귀 새끼라고 죄인이라고 저주하는 겁니다.

 

8절입니다.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은 사울 때문에 울었던 사람인데 이런 다윗을 죄인 취급합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네 아들이 반역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시바 말을 듣고 므비보셋에 이어 두 번째로 열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 것입니다.

 

9절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산 등성이에서 내려가는 길인데 아비새가 건너가서 시므이를 죽이겠다라고 말합니다.

 

10절입니다.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다윗이 열 받았지만 이번에는 잘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시므이에게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고 시키십니다. 애매하게 욕을 먹기도 하고 길 가다가 돌에 맞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때리기도 하시고, 책망하시기도 하시며, 칭찬하시거나 맘에 들어하실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열 받으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굴이 다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종 잡을 수 없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사람에 대해 열 받아 하시다가 오늘 갑자기 칭찬하십니다. 반대로 오늘 칭찬하시다가 내일 분노하시기도 하십니다. 어떤 것이 진짜일까요? 둘 다 진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때리기도 하시고 칭찬하시기도 하십니다. 물론 마귀가 역사하기도 하시만 하나님께서 마귀 새끼를 들어 쓰시는 겁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루야의 아들들이 시므이를 죽이겠다고 했을 때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싸우라고 하시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라야 합니다.

 

11절입니다.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다윗이 이번에 잘 넘어갑니다. 만약 죽이는 것을 허락했다면 살인죄에 해당하게 됩니다. 다윗에게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날까요? 아들 반란도 힘들어 죽겠는데 시바가 와서 므비보셋이 반란 일으킨다고 거짓말하고, 시므이가 나타나 돌 던지며 저주를 하는 일들이 왜 일어났을까요?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주신 이유가 뭘까요? 이것이 미스테리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어렵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천국에 쉽게 오지 못하고 떨어지도록 가기 어렵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쉽게 못 가고 늘 환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럴 때 당황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환란과 핍박을 예비해 놓으십니다. 이런 과정들을 다 이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로역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과정들을 다 통과해야 천국이 가능합니다. 때로는 물질의 유혹, 사람들에 의한 핍박 등을 다 통과해야 합니다. 순간 잘못하면 마귀에게 금방 넘어가기 때문에 매일매일 마귀와의 싸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자의 정자를 예로 들면 정자 수가 총 5억개가 넘는데 그 중에 한 개만 수정이 됩니다. 그냥 한 마리만 있어서 수정되게 하면 편할텐데 엄청 많은 숫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각과 다른데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김과 극복을 좋아하십니다. 극복을 잘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모든 문제 앞에서 마귀를 이기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다윗이 처음 시바의 거짓말에는 넘어가서 실패했지만 두 번째 시므이의 저주는 잘 통과했습니다. 두 번째도 패배했다면 천국이 더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고공 비행과 같습니다. 잘못하면 추락하여 끝나 버립니다. 계속 떠 있는 상태로 긴장하며 지냅니다. 시험은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12절입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절입니다.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시므이가 끝까지 저주하며 따라옵니다. 그래도 다윗은 끝까지 견디어 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저주나 협박 같은 악성 댓글에 견디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을 다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안 그런데 이상한 말로 모함을 하고 오해를 해!’ 그러면 안 됩니다. 다윗은 내가 누군데 저주를 해!’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 냅니다.

 

14절입니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15절입니다.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아히도벨은 다윗 왕 때 있었던 모사입니다. 지혜를 주는 사람입니다.

 

16절입니다.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17절입니다.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압살롬이 후새가 다윗의 친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는 우정도 없느냐?’라고 묻는 겁니다.

 

18절입니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굉장히 후새가 지략이 뛰어납니다. 하나님과 모든 백성이 택한 당신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압살롬에게 온 이유가 신앙적이라는 것입니다. 반란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19절입니다.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후새가 다윗을 섬겼듯이 압살롬을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이 때 압살롬이 후새를 안 받았어야 하는데 속아서 받아 들입니다.

 

20절입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21절입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게 되면 압살롬과 다윗이 대적관계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압살롬과 다윗의 편을 가르자는 겁니다.

 

22절입니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옥상에다 텐트를 치고 후궁 10명을 넣고 압살롬 혼자 1:10으로 동침합니다. 그런데 왜 10명의 후궁일까요? 다윗이 10명의 부인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11처제가 원칙입니다. 사별일 경우에만 재혼이 가능합니다. 이런 비극이 일어난 또 하나의 이유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허용해서 자기 아들이 후궁들과 동침하게 한 것입니다.

 

23절입니다.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다윗도 아히도벨에게 계략을 물어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원래 하나님께 직접 물어서 받는 직통계시의 사람입니다. 직통계시자인데 아히도벨에게 물어보고 그 내용을 하나님의 것으로 받아 들인 겁니다. 언제냐? 다윗이 맛이 갔을 때입니다. 직통계시가 사라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직통계시가 없어지면 지혜만 남습니다. 기도할 때 떠오르는 생각이 지혜이고 음성으로 들려 오는 것이 계시입니다. 그런데 음성이 안 들린다? 신앙이 많이 추락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날 왜 계시가 왜 없을까요? 신앙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신약 때 사도 요한도 베드로도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았습니다. 성경에 다 나옵니다. 지금은 왜 없을까요?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묻고 답을 받는 직통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히도벨에게 물어봤을까요? 그 정도로 신앙이 약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은 계시가 없다고 말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본인들이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합리화입니다. 하나님께 직통계시를 받은 아브라함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아히도벨이 악한 자인데 그동안 다윗도 많이 미혹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악한데 과거에도 좋은 계략을 다윗에게 주었을까요? 똑같이 악하게 계략을 짰을 것입니다.

 

다윗이 과거에는 직통계시를 받았던 선지자였는데 이제는 끊겨서 그냥 의인에 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없으면 힘듭니다. 오늘날은 직통계시를 무조건 이단으로 봅니다. 신앙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직통계시는 신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의 영입니다. 기도하면 지혜가 오는데 이 단계도 쉽지 않은데 계시는 직접 말씀해 주시는 단계입니다. 다윗이 이것을 놓쳤는데 그 이유가 밧세바를 범하고 맛이 가서 신앙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은 아직도 훌륭한 성군이지만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다윗의 환경이 평안했기 때문입니다. 평안할 때 사람은 다 맛이 갑니다. 우리가 고난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가 평안할 때 신앙이 좋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 내 영이 살아있기 때문에 고난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변 전 국가를 정복하고 후궁도 많이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겁날 게 없어서 망가진 것입니다. 오히려 블레셋으로 가서 미친 척 하며 거품물고 지낼 때가 더 좋았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았습니다. 고생할 때가 더 좋은 겁니다.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와서 영적으로 싸울 때, 그 때가 건강한 겁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복을 받는 것이 오히려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돈도 많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영적으로 좋은 겁니다. 다윗이 지금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통이 안 될 때 아파해야 합니다. 은사가 약해질 때도, 계시가 안 와도 아파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도 금식하며 기도할 때 바나바를 세워라고 전체가 다 들을 정도로 신앙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다 놓쳐도 신앙만큼은 놓치면 안 됩니다. 다윗이 계시 신앙을 잃어 버렸는데 계시가 없다는 것은 선지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 기독교가 파산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 인간을 만나 오셨는데 안 만나실 때가 있었습니다. 말라기부터 세례 요한까지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인간을 안 만나 주셨습니다. 계시가 없는 것이 바로 환란입니다. 큰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다음 세대에 계시가 없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픕니다. 계시가 없으면 무엇으로 천국과 지옥을 진단하겠습니까?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계시가 없으면 한계가 있는 겁니다. 직통계시의 사라짐은 큰 문제가 됩니다. 아히도벨이라는 악한자의 모사가 다윗을 이끌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이것이 다윗의 말년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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