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5장 [성령의 음성에 불순종하면, 예배에 충실해도 지옥갑니다]

 


사무엘상 15

 

[성령의 음성에 불순종하면, 예배에 충실해도 지옥갑니다]

 

 

1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전달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는데 여호와의 말씀들영어로는 ‘ the voice of the words of the LORD.’인데 이런 표현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the voice of LORD’ 또는 ‘the words of the LORD’로 표현하는데 특이한 표현입니다. 앞에 ‘voice’는 레마를 의미하고 뒤에 ‘words’는 로고스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통 성령의 음성은 레마를 의미합니다. 이 레마는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이미 로고스에 다 포함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 성령의 음성들은 당시 사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들려주는 말씀들입니다.

 

2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he LORD of hosts’인데 hosts는 모든 떼, 수 많은 천군천사를 의미합니다. ‘길에서 대적한 일로홍해를 건너자마자 아말렉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여호와 닛시가 나오는데 거듭난 후나 구원받은 후에 늘 싸워야 하는 존재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말렉이 어떤 존재냐에 대한 정의가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아말렉은 사울이 구원상실을 당한 요인이 됩니다.

 

3절입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번에는 아말렉을 선제 공격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4절입니다.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절입니다.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절입니다.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겐 사람입니다. 미디안 족속입니다. 아말렉은 에돔 족, 에서의 넷째 아들입니다. 겐 족속은 구원은 어렵지만 이스라엘과 친한 관계에 있는 족속입니다. 다윗의 충신 우리야 역시 겐 족속입니다. 사울에 이 겐 족속에게 아말렉에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아말렉은 신앙을 방해하는 불신자들이고 겐 족속은 신앙으로 들어올 수 있는 불신자입니다. 불신자들 중에서 아말렉 족속들처럼 신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7절입니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절입니다.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절입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울이 불신자 가운데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남긴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 위험한 것입니다. 나에게 영적으로 해가 되는 불신자들이 많은데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들은 남기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 상실에 큰 이유가 됩니다. 믿음의 세계는 불신자들과 단절해야 하는데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방법론입니다. 불신자가 좋아 보이기 때문에 함께 하게 되는데 이것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남겨놓게 되는데 이것이 올무가 됩니다. 사울이 지금 이 불신 세력들을 말씀대로 다 진멸하지 못하고 남겨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절입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울의 잘못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길갈에서 제사장이 드려야 할 예배를 자신이 인도하게 됩니다. 그 때는 구원 상실까지는 아니었는데 드디어 오늘 구원상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 인도 한 번 했다고 구원 상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왕권만 사라집니다. 오늘날 만민 제사장설은 구약은 안 믿고 신약만 믿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교리들 중에 하나가 바로 만민 제사장설입니다. 신앙은 구약 위에 신약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제사장이 있고 선지자가 있고 왕이 있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장로가 왕에 속합니다. 이 장로가 예배를 인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 상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왕권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구원상실에 이르는 스토리입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다 진멸해야 했습니다. 불신 세력 중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다 진멸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합니다. 명령도 없는데 주변 불신자들을 다 단절시키면 그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은 불신 세력을 끊을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오늘날도 이러한 명령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방해하는 불신자들을 끊으라고 명령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불신의 영들은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고 구원상실을 주는 영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불신세력들이 업무에 도움을 주니까, 돈이 되니까 그대로 관계 속에 남겨 두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거듭날 때부터 구원받을 때까지 계속 우리를 방해합니다. 아말렉은 불신 세력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혹으로 이끄는 이단세력도 포함됩니다. 오히려 이들은 더 외적으로 부흥합니다.

 

이러한 아말렉에 대한 정의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신자 뒤에 있는 마귀의 세력을 이해 못합니다. 이단 교회들 뒤에 숨은 마귀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우리의 영을 빼앗으려고 늘 노력합니다.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사무엘이 사울에게 임하게 될 구원상실로 인해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이 이제 완전히 미친 겁니다. ‘기념비는 오번역이고 자기자신을 세운 것입니다. 갈멜산은 엘리야가 활동하던 산입니다. 이곳에 자기 동상을 세운 것입니다. 부흥하니까 자기 자신을 기념으로 세운 겁니다.

 

13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하나님 명령대로 아말렉을 격파하고 아각을 잡아 왔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지금 예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남겨서 가져 왔다고 말합니다. ‘불신자이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나에게, 교회에 물질적인 많은 도움을 주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짜일 수 있지만 변명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냥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변명하기에 바쁩니다.

 

16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17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절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아말렉 사람을이것은 영어로 ‘the sinners’인데 죄인, 즉 불신자를 말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불신자를 통한 영적인 공격입니다. 신앙을 붕괴시키기 위해 믿지 않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 전도사, 장로가 이러이러 하더라.’하며 이상한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러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그래? 정말 그런가보다.’하며 믿게 됩니다. 아말렉은 거짓으로 말을 만들어 내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성도들은 그것을 믿게 됩니다. 같이 선동하게 되고 결국 악한 자들에게 속하게 되어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쓰임받게 됩니다. 이것이 아말렉인데 지금도 이 아말렉은 역사합니다. 이 아말렉은 거짓을 잘 만들어 내는데 이것을 통해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고 하셨습니다.

 

19절입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드디어 하나님의 진단이 떨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성경에서 악하다는 다 지옥입니다. 이 악은 두 가지가 있는데 회복이 되는 악이 있고 회복이 안 되는 악이 있습니다. 회복이 되는 악은 회개를 촉구하지만 안 되는 악은 지옥을 선포하게 됩니다. 지금 사무엘의 선포는 왜 악을 행했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끝난 겁니다. 회복이 안 됩니다. 사람은 죄에 물들면 어느 순간부터는 회개가 안 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지금 사울의 죄는 단순히 아말렉을 다 진멸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울이 죄인임을 나타내는 표면적인 죄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죄를 지었을 때 간음죄만 회개하면 천국 갑니까? 아닙니다. 그 간음죄를 지을 때까지 그동안 모든 마음의 음란함과, 모든 더러움과, 모든 추악함을 다 회개해야만 구원이 가능한 것입니다. 회개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어떤 하나의 죄를 회개한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에 도달하기까지, 다시 말해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는데 그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기까지 과정 가운데 사울에게 악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사울이 이 때 바로 회개했으면 기회가 있었을텐에 자기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다고 말합니다.

 

21절입니다.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자신은 죄가 없고 백성이 양과 소를 끌어 왔다고 변명합니다.

 

22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울은 예배를 잘 드리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울은 예배를 잘 드리는 예배 매니아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지금은 구약 시대가 아닌데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가 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천국 못 갑니다. 선지자는 자기 개인 견해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수없이 들었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왕이라고 해서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인침 받은 왕이라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선지자 앞에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유명한 구절이죠. 제사는 화목제를 말합니다. 화목제는 아주 좋은 것인데 그것보다 순종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이 구원의 요체입니다. 구원은 예배나 기도에 있지 않고 오직 순종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순종이 모든 신앙의 틀입니다. 예배는 잘 드릴 수 있지만 순종은 잘 안 됩니다. 그 이유가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23절입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이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해야 하는데 거역을 합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경우와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이방인의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역하는 이유는 내 생각이 맞는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울이 제물로 쓰려고 좋은 것 좀 남긴 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사람들은 내 사정도 몰라주고 왜 그러실까? 내가 지금 빚이 얼만데. 내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거역하는 마음입니다.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합리성을 생각하지만 신앙 자체가 비합리적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연역적이지만 하나님 세계는 귀납적입니다. 일단 순종하고 그냥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증거가 따라오고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칠 때 여러 가지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순종합니다. 신앙에 논리나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머리 좋은 수뇌들이 신앙이 어렵습니다. 머리를 써서 계산하고 따지고 분석하면 안 됩니다. 그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신앙 가진 사람이 영적으로 망한 사례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불신적인, 세상적인 사상에 빠져서 추락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인데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신앙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집, 내 돈, 내 아내, 내 자녀 다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순종이 안 됩니다. 예배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면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24절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드디어 사울이 회개를 합니다.

 

25절입니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울이 이제 내가 회개했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26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절입니다.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절입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모든 교회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신령하게 시작했다가 나중에 이단화가 됩니다. 유대교도 처음에는 좋았다가 단체로 이단화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단체를 세웁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나온 것과 같습니다. 오늘 사울에게서 이스라엘을 떼어서 다윗 왕조에게 넘기겠다는 말씀입니다.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지금 사울이 지옥가고 사울이 세운 왕조가 망하고 새로 다윗 왕조가 나타난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예언입니다. 많은 경우에 예언이 되돌려지는데 되돌려지지 않는 예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봐 주시는데 사울의 경우는 끝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사울의 애통과 회개는 받아 들여지지 않았을까요? 이미 사울에게는 경고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듣습니다. 불순종이 처음이 아니라 계속 불순종을 해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결단을 내리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3번 이상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3번이 넘어가면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경고가 무서운 것입니다. 3번째는 하나님을 믿고 꼭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안 믿어 주시는 것을 되게 힘들어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믿어 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뭔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하지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안 믿어도 봐 주시지만 나중에는 그냥 끝을 보십니다. 버리십니다.

 

우리는 사울의 이야기를 남 이야기처럼 듣지만 아닙니다. 우리 내면 가운데 보이지 않지만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구원을 받았어도, 확정 받아서 왕이 되었을지라도 구원 상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봐 주시지 않는 이유는 불순종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 경고 받았을 때 돌아서야 했습니다. 사람은 갈수록 악해집니다. 한 번, 두 번 불순종하다 보면 결국 악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나중에 지옥 심판을 받게 되지만 이 땅에서도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음이 강퍅해져서 결국 엘리처럼, 압살롬처럼, 사울처럼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를 왜 합니까? 찬양을 왜 부릅니까? 강퍅한 우리 마음에 부드러움을 갖기 위해서 입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 순종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부드러움을 가지기 위해서 늘 애통하고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늘 은혜 가운데 거하지 안 그러면 금세 악해집니다. 나중에는 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30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사울이 끝까지 예배 드리면서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 달라고 합니다. 불순종하고 예배 잘 드려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31절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이 어쩔 수 없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 줍니다. 사울이 장로들 앞에서 잘 보이려고 예배를 드리지만 아무 필요 없습니다. 끝까지 잘못을 돌이키지 않고 예배만 드리려고 하는데 이것이 악한 것입니다.

 

32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아각을 끌어오라고 하였는데 아각이 올 때 즐거이영어로는 ‘delicately’ , ‘화사하게. 점잖게. 보기좋게라는 뜻입니다. 아각이 겉으로는 아주 좋아 보이고 점잖아 보인 겁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 온 것입니다. 이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어둠은 영적으로는 나쁘지만 육적으로는 좋아 보이고, 괜찮게 보입니다. 안에는 악이 꽉 차 있는데 겉으로는 착해 보이고 선하게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판단내리실 때는 보통 악한 것이 아닙니다.

 

33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아말렉이 믿는 자들에게 구원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이제 너도 마찬가지로 자식이 없을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지금 사무엘이 악한 아각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는 증오해야 합니다. 악한 마귀들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데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그 사람이 좋아 보이게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데 사람 보기에는 인상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내면이 악하면 겉으로도 악하면 좋은데 겉은 엄청 선해 보입니다. 대부분 대형 교회 목사님들은 인상이 좋게 보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악한 줄을 스스로 모릅니다. 겉으로는 없어 보이고 악해 보이고 인상이 안 좋아도 내면이 진짜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34절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

드디어 두 사람이 헤어집니다. 원래 사무엘이 기브아에 있는데 갈라 서게 됩니다. 선지자와 왕이 있어야 교회가 부흥이 되는데 이 두 사람의 결별은 아주 안 좋은 경우입니다.

 

35절입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하나님의 후회하심은 노아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신다면서요? 미래를 아시는 분이 왜 후회하실까요? 만약 우리가 사울이라면 집으로 안 돌아갑니다. 왕권이 끝났고 지옥 간다는 선포를 받고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 사무엘을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이미 마음이 무디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늘 갈고 닦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쉽게 강퍅해져서 사울처럼 됩니다. 신앙은 연륜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도 금세 상실되어 지옥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내가 지옥 간다고 생각하고 회개하면서 살면 지옥에 안 떨어집니다. 천국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꾸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들, 전도사들, 장로들이 지옥가기 쉽습니다. 마음이 쉽게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 줄을 모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은 지옥가는 생각입니다. 어린 아이보다 내가 더 못하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울이 얼마나 강퍅했으면 하나님의 진단 가운데서도 사무엘의 말을 무시합니다. 우리는 나의 영이 성장한다고 해서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항상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구원의 완성은 없습니다. 매일 눈물로 나아가야 하는데 눈물이 안 나면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께 탄원해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내가 무너지느냐 안 무너지느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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