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6장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배인도자가 인도하지 않는 예배는 바른 말씀과 믿음과 헌신이 있어도 영생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 세계최초 구약전장강해


사무엘상 6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배인도자가 인도하지 않는 예배는 바른 말씀과 믿음과 헌신이 있어도 영생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여호와의 궤’ ‘Ark’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 여호와의 방주입니다. 구원을 의미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가나안의 일곱 족속과는 다른 족속으로 하나님께서 쫓아내라고 하지 않으신 유일한 족속입니다. ‘일곱 달이라일곱은 구원을 의미하는데 블레셋 족속에게 궤를 빼앗겼기 때문에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우리 안에 원귀신을 의미하는데 이 원귀신과의 싸움에서 실족당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2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블레셋 사람들도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 안에 일곱 족속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 원귀신의 경우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안의 영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이 상태는 여전히 믿음안에 있고 말씀안에 있는 상태입니다. 여전히 기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잃게 되는 경우입니다. 기독교 믿는 자 내에서도 예배 가운데 원귀신이 발동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귀신에 의해 예언도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고 하지만 실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이들도 신앙이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 방주를 어떻게 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여호와의 궤를 원래 있던 실로로 보내려면 그냥 보내지 말고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속건제는 ‘trespass offering’인데 위반할 때 드리는 제물입니다. 예배 방해죄가 이에 해당하는데 죄에 대한 보상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것에 대한 손상에 대한 실제적 보상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 죄를 입혔을 때 상해 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치료비를 보상으로 지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속건제는 보상이 따르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속건제를 드리자고 할 정도로 이들은 신령한 자들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데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몸이 부어오르는 암과 전체가 빠르게 걸리는 전염병들이 이들에게 있었는데 이러한 병들도 낫고 병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들의 모습은 유사 기독교와 같습니다. ‘어디 가니까 병이 낫더라. 신령하더라. 예언이 끝내 주더라.’ 하지만 대부분 성령님이 아니라 오늘 나온 블레셋, 곧 원귀신의 역사입니다.

 

4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모든 블레셋 사람들 중에 ‘the lords’입니다. 5명인데 우리 안의 원귀신이 5마리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마귀의 숫자는 그 수를 알 수 없습니다. 5마리에서 5천마리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이 원귀신은 누구나 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귀신입니다. ‘금 독종 다섯과독종은 오번역이고 부풀어 오르는 병인데 지난 5장 강의에서 암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암에 걸릴 때 그 부위의 몸이 살짝 부어 오릅니다.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쥐는 전염병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암과 같은 성인병과 전염병을 상징하는 금 독종과 금 쥐 다섯 마리로 속건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블레셋 거주민들과 통치자들에게 같은 재앙이 내렸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신령한 곳인데 병이 낫는 곳인데 형상을 만든다? 이들은 바른 예배자들이 아닙니다. 성상이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위험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예를 들어 불이 나온다거나 연기가 자욱한다거나 깃털이 떨어지거나 금이빨로 변하는 것 등등은 원귀신에 의한 역사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눈에 보이는 것을 기적으로 믿고 무조건 따라 다닙니다. 표적을 구합니다.

 

6절입니다.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 블레셋 제사장들이 하는 말인데 굉장히 신령합니다. 애굽인들과 바로 이야기를 하면서 왜 마음을 완악하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완악하게 하지 말고 빨리 법궤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 맞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예배 인도자들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겉으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뿌리가 성령님인지 원귀신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모든 종교에는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의 뿌리가 원 귀신인지, 하나님인지가 중요합니다. 그 역사의 배후, 출처가 중요합니다.

 

7절입니다.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이 암송아지를 진영 바깥에서 죽여서 잡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암송아지를 성막 안으로 가지고 와서 회막 문을 향해 피를 7번 뿌리고 번제단에 올려서 가죽과 똥과 고기를 다 불에 태웁니다. 그 재를 다시 진영 밖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그러면 문둥병자나 시체를 만졌던 부정한 자들이 진영에 들어올 때 그 재를 탄 물에 온 몸을 씻고 들어오는데 그래야만 정결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결의 물입니다. 이 정결의 물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속죄제는 수송아지를 바치는데 여기서는 암송아지입니다. 비슷하지만 살짝 다릅니다. 암송아지일 뿐만 아니라 새끼가 있는 암송아지입니다. 성경에서 새끼 있는 소는 제물로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새끼도 2마리입니다. 이 새끼 딸린 암송아지들을 수레에 메우고 보낸 겁니다. 이 벧세메스 사건은 원귀신이 강한 예배에서 구원받아야 할 크리스천들에게 역공격이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역공격은 블레셋에 있는 제사장과 점쟁이들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원래대로 돌려 주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만 좋은 게 아닙니다. 이제부터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비슷하게 제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 같지만 참 예배와 다릅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속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모방입니다. 기독교를 모방한 악한 영들의 역사입니다. 어둠의 영들이 들어와 기독교인들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엄청 무서운 영적인 시험입니다. 거짓된 예배가 참 예배로 위장하는 것인데 너무 비슷하니까 사람들이 참으로 믿게 됩니다.

 

9절입니다.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10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절입니다.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절입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드디어 그 유명한 벧세메스 사건이 나옵니다. 벧세메스는 블레셋과의 경계지역인데 그만큼 원귀신의 세력이 번진 것입니다. 딤나도 단 지파였는데 다 넘어갔습니다.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자식을 떼어 놓는 헌신을 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갑니다. 굉장합니다. 말씀대로 살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 같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5명의 블레셋 방백들이 경계선까지 따라 갔습니다. 왜 따라갔을까요? 블레셋 방백들은 원귀신을 상징하는데 지금 역공을 하기 위해 따라 온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내 안에 있는 원귀신들과의 싸움을 합니다. 이 싸움에서 지게 되면 그 증거로 암에 걸리거나 전염병에 걸립니다. 성경에서 천국 간 인물들 중에 질병으로 죽은 사례가 하나도 없습니다. 많은 헌신과 눈물과 예배가 있다 해도 원귀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천국이 어렵습니다.

 

13절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절입니다.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여호수아의 밭원래는 여호수아가 딤낫세라라는 에브라임 산지에 밭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밭이 벧세메스에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도 어느정도는 원귀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죽기 전까지 눈의 쇠하지 않고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막판에 원귀신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큰 돌 있는 곳에돌은 믿음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에 의해 큰 믿음이 많이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이 행위는 잘한 것일까요? 법궤도 있고 번제물로 암소도 있으니 완벽합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요?

 

사람들이 원귀신에게 왜 당할까요? 막판에 왜 구원을 잃어 버릴까요? 사울도 원귀신인 블레셋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인 엘리도 죽었고 교회도 무너졌습니다. 법궤가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도 있는데 뭐가 문제일까요? 바로 예배 인도자인 제사장 문제입니다. 만인 제사장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나 예배를 인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바른 말씀을 증거할 수 있다해도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셔야 합니다.

 

지금 놀라운 선지자인 여호수아의 혈통을 이어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자 예배를 드립니다. 누가 언제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했나요? 제사장만이 그 소를 죽이고 번제로 드리고 예배를 인도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예배 인도자인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운 사람입니다. 이 세운자가 예배를 인도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인데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자가 예배를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있고, 선지자가 있고, 예배 인도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좋다고 장로나 신학교수나 일반 집사가 말씀이나 예배를 인도하면 안 됩니다.

 

15절입니다.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예배 인도를 하면 안 됩니다.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배 인도자가 인도해야 합니다.

 

16절입니다.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블레셋 다섯 방백에 드디어 영적으로 이겼다고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지옥으로 인도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잘못된 예배 때문에 구원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분명히 큰 믿음을 상징하는 돌도 있고 신앙의 혈통도 아주 훌륭합니다. 말씀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법궤도 있습니다. 번제도 있습니다. 완벽합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매우 참혹합니다.

 

17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결국은 어둠에 의한 잘못된 예배의 시작은 블레셋 다섯 왕들입니다. 우리 안에 원귀신에 의한 어둠이 잘못된 예배로 인도한 것입니다.

 

18절입니다.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블레셋에는 5개의 성이 있는데 블레셋 시골의 마을만이 아니라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벧세메스의 큰 돌에 이르기까지 예배의 미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벧세메스는 이스라엘 땅인데 블레셋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여기서 큰 돌은 참된 예배를 말하는데 이들이 참된 예배를 드린다고 오해한 것입니다. 참과 거짓을 말씀으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으로 구별이 가능합니다. 예배 인도자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가 아니면 천국 가기가 힘듭니다.

 

19절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하나님께서 570명을 죽이십니다. 설마 하나님께서 제사장 없이 잘못된 예배를 드렸다고 570명을 죽이셨을까? 70명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오늘날 번역할 때 5만을 ( )로 한 것입니다. 원어에도 570명입니다. ‘크게 살육하셨으므로영어로 ‘a great slaughter’인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보통 천 단위 이상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설마 5만 명이 죽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죽었습니다. 미혹되어 영이 죽은 것입니다. 말씀도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있습니다. 헌신도 있고 눈물도 있고 다 있습니다. 단 하나, 제사장만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 아무나 인도자로 세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은 예배의 핵심입니다. 예배는 법궤와 제사장, 이 두가지 조건입니다.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입니다. 실로에서 엘리와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더 이상 인도자들이 없습니다. 이 때 인도자들이 어떻게 세워지느냐가 기럇여아림을 통해 나타납니다. 조건은 같은데 한 곳은 망하고 한 곳은 흥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기럇여아림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교회가 매우 중요한데 하나님께서 세운 제사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참교회에 구원이 존재합니다.

 

20절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드디어 깨달은 겁니다. 다 죽으니까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을 안 겁니다. 그래서 예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궤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합니다.

 

21절입니다.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임재가 왔는데 실패하자 임재가 옮겨집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세우신 제사장이라는 두 조건이 맞는 곳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제 엘리 시대가 아닌 참 제사장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 제사장인 인도하는 참된 예배로 인해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무엘 시대가 옵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은 참된 예배의 싸움인데 함부로 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예배 드린다고 하면 무조건 좋아하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반대로 바른 예배가 아니면 우리 영이 망가집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닐수록 많이 미혹됩니다. 원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똑같습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 조건은 두 가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입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66@gmail.c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열왕기상 1장 [하나님이 세우시는 영적인 순서는 하나님이 직접세우는 선지자가 첫째이며 선지자가 세우는 제사장이 둘째이며 선지자제사장이 세우는 왕이 셋째입니다]

사무엘하 23장 [영력은 어둠(마귀)를 쫓아내는 힘인데, 영력만큼 타인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으며, 다윗은 37명 용사들과 70만명을 인도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6장 [하나님 뜻으로 세워진 성전은 구원방주로써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면 무너지며 성소는 temple로 구원받은 자들 모임이며 지성소는 영생의 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