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장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가 유다지파처럼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며, 가족과도 같이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 함께하심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구약전장 강해

 

사무엘하 19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가 유다지파처럼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며, 가족과도 같이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 함께하심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1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승리했는데 왕이 슬퍼하니 부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픕니다.

 

2절입니다.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절입니다.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전쟁에서는 이겼는데 부끄럽게 살며시 성읍으로 들어갑니다. 이 때 성읍은 동편 성읍입니다. 서편에서 싸워 이겨서 동편에 있는 자신들의 성읍으로 들어온 겁니다.

 

4절입니다.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압살롬은 신약시대에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자신을 죽이려는 자녀라 할지라도 죽게 되면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악한 압살롬을 사랑한 것입니다.

 

5절입니다.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절입니다.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지금 요압이 다윗 왕의 마음을 몰라주고 말합니다. 다윗 왕의 마음은 그래도 아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오기를 원하시는 마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원수의 죽음을 잘 죽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자들의 대적도 영적으로 안타까워하십니다.

 

7절입니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백성 입장에서는 왕이 너무 하다고 생각하며 등을 돌리고 한 명도 따르지 않을 거니 제발 나가시라고 요압이 지금 왕에게 말한 겁니다.

 

8절입니다.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절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절입니다.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절입니다.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다윗이 지금 유다에게 뒷통수를 친 겁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분리된 상태인데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다시 모셔오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유다 장로들에게 이스라엘이 나를 왕으로 모셔 오자고 하는데 너희가 먼저 모시자고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겁니다. 지금 유다를 편애해서 먼저 기회를 준 겁니다. 다윗은 왜 이스라엘이 아니라 유다를 더 편애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편애를 하십니다. 우리를 똑같이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유다를 더 사랑하십니다. 여기서 유다는 전체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방인들이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못 따라갑니다. 이스라엘의 2000년간의 신앙은 아무도 흉내를 못 냅니다.

 

12절입니다.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보다 이스라엘을 더 형제와 골육으로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더 중히 여기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노아 때부터 아브라함 때까지 5000년 정도 됩니다. BC 7000년 정도에 대홍수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BC 7000년 이전에 문명들은 굉장히 발달된 문명들이었습니다. 아담 때부터 노아 때까지는 약 3만년 정도 되는데 노아 때 엄청 뛰어난 과학 문명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유적들을 통해 많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노아 때부터 아브라함 때까지 구원의 수가 점점 줄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신앙이 엄청 좋았기 때문에 성경에서 모델로 많이 사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혈통, 즉 피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사랑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애정은 성경에서 많이 드러납니다. 로마서에 써 있죠. 이스라엘을 돌감람나무가 아닌 참감람나무로 선포하십니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은 신앙이 좋은 겁니다.

 

13절입니다.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아마사는 압살롬이 세운 군대 장관입니다. 그런데 요압에 이어서 군대장관을 삼겠다는 것입니다. 요압을 멀리하고 아마사를 데려옵니다. 이런 편애가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충성하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그렇게 충성했던 요압은 지옥에 가고 아마사는 천국에 들어갑니다. 왜일까요? 마음 상태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신앙이 어려운 겁니다. 우리가 나중에는 패닉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골육이 아니냐골육은 마음을 다합니다. 골육이 단순히 친척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섬깁니다. 아마사가 그렇다는 겁니다. 요압은 머리로 섬깁니다. 가족은 남과 다르게 마음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갈 때 영적으로 유다 지파가 되는 거고 마음이 안 갈 때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도 똑같이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안 보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14절입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절입니다.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건너가게 하려고오번역입니다. ‘to conduct the king over Jordan.’인데 ‘conduct’는 인도하다라는 뜻입니다. 유다 지파가 다윗을 예루살렘까지 인도하기 위해서 길갈에 모이게 됩니다.

 

16절입니다.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절입니다.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절입니다.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절입니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절입니다.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절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아비새가 군사 지략에는 뛰어난 자인데 왕을 저주한 자를 그냥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지금 다윗이 자신에게 저주를 퍼 부은 자를 용서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죄의 분량과 상관없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그냥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돌아서야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이 회개인데 입술만이 아니라 마음이 돌아서야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시므이가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에 다윗이 용서해 준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24절입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므비보셋은 천국에 들어간 사람인 것을 말해 줍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기 전까지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고 발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지금 다윗에게 인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 중에 누가 제일 다윗을 사랑한 자일까요? 당연히 므비보셋입니다. 사람은 패닉 상태에 있으면 편하게 먹거나 잘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중환자실에 누워서 오늘 내일 한다는데 어떤 남편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교회의 어려움 앞에, 핍박 앞에, 함께 마음을 아파하는 정도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진짜 사랑하는 자들은 잠을 못 잡니다. 지금 므비보셋이 다윗을 엄청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5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절입니다.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절입니다.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절입니다.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서 자신은 죽을 자라고 가장 낮은 자가 되어 나옵니다.

 

29절입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절입니다.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므비보셋은 재산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윗 왕이 평안하게 돌아온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다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께서 유다만 사랑한다고 시기합니다. 자녀라고 다 똑같은 자녀가 아닙니다. 유다와 므비보셋을 편애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유다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다윗도 자신을 사랑한 므비보셋을 사랑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리를 절었지만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됩니다.

 

31절입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절입니다.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절입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절입니다.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바르실래는 천국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 자체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축복에 관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같으면 좋다고 다윗을 따라갈 텐데 정중히 거절합니다. 이스라엘은 축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유다는 하나님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축복을 좋아하면 어려움 앞에 힘들어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고난이나 슬픔과 역경이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제일 사랑하는 하나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자체가 좋은 것이지 그 사람의 차나 집, 재산이나 직위가 좋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 이게 신앙입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원하는 것도 없고 소원도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이 좋아졌다는 증거입니다.

 

 

35절입니다.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지금 바르실래의 신앙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왕궁에서의 좋은 음식들과 노래하는 자들의 소리도 안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왕을 사랑합니다. 헌신을 많이 했음에도 댓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36절입니다.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절입니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절입니다.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절입니다.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바르실래가 왕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온 겁니다. 그리고 다윗이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복을 빌어주자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과 우리의 삶은 아주 밀접합니다. 구원은 지식이나 깨달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행동, 액션인데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드느냐가 중요합니다.

 

40절입니다.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절입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이스라엘이 지금 열 받아서 말한 것인데 유다가 은밀하게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42절입니다.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다에 대해 너희는 숫자가 적지 않느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숫자가 적어도 적은 자 한 명을 크게 보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한 명을 천 명처럼 보십니다. 우리의 관점과는 다릅니다. 유다가 적다 할지라도 이스라엘보다 더 좋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따져도 유다가 말로 이깁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명의 신실한 사람을 여러 사람보다 더 높게 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인데 선지자 한 명을 크게 보십니다. 이방인들은 계수조차 하지 않습니다. 거듭난 사람 1000명 대 구원 1명으로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편애하시는데 오늘날도 누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커가면서 점점 머리로 신앙을 하게 되는데 마음으로 하는 것을 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갈 때 기도도 마음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현대 사회는 머리를 많이 쓰는 사회인데 우리는 머리를 안 쓰고 마음을 써야 합니다. 이 마음을 쓰는 것에 성공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쓰기보다 머리를 쓰기 쉽습니다. 제가 주일학교를 대학교 때부터 섬겼는데 가르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지식을 전달해 주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했을 때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났을 때 열매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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