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5장 [예수님을 따름으로서 오는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구약전장 강해

 

사무엘하 15

[예수님을 따름으로서 오는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1절입니다.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요압 장군이 압살롬과 다윗을 만나게 한 그 후 말씀입니다. 호위병 50명을 두었다는 것은 압살롬에게 계급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한 자에게 계급이 달리면 선하게 쓰지만 악한 자에게 달리면 위험합니다.

 

2절입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대부분 악한 자는 왕과 바로 대적하지 않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만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다툼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3절입니다.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내가 상대방을 인정해 주면 상대가 내 편이 됩니다. 악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인정받기 위해서 상대방을 옳다고 인정해 줍니다. 일반적으로 성도들끼리 인정을 잘 해 줄수록 같은 편이 됩니다. 반대로 목사님과는 멀어집니다.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압살롬이 이제는 거짓말까지 합니다. 그래서 왕과 백성들 사이에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관계를 가로챕니다.

 

4절입니다.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이제 압살롬이 더 나아가 자신이 재판관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왕자가 말하니까 그대로 믿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가로채는 자들이 영혼들을 망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선을 방해합니다. 송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재판관이라고 거짓말 하면서 재판을 해 주기로 합니다.

 

5절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사람들이 압살롬에게로 가까이 옵니다. 드디어 가로챈 겁니다. 자신의 견해를 말해 줍니다. 교회에서 목사님 외에 성도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들, 설교하는 사람들, 훈수 두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엄청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다 망합니다. 자신의 경험, 기도나 은사 받은 체험들을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그에게 빠지게 합니다. 교회든 조직이든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가 아닌 자가 사람들을 가르쳐서 인정을 받으면 위험한 것입니다.

 

6절입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사람들이 올 때마다 압살롬이 마음을 훔쳐서 다윗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름은 왕자이지만 실제로는 반역자입니다. 이러한 일은 어느 사회나 어느 조직이나 다 존재합니다. 교회에서 전도사나 각 부서 회장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에 만족하고 좋아합니다. 이것이 명예욕입니다.

 

7절입니다.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4년동안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다윗 왕이 이것을 몰랐을까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을 대권 주자인 후계자로 여겼기 때문에 그대로 둔 것입니다. 다윗이 처음에는 암논을 좋아했다가 지금은 압살롬을 후계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맛이 가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압살롬이 신앙적인 이야기로 말합니다. 예전에 서원한 것이 있으니 헤브론에 가서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지금 아주 종교적으로 말하는데 그럴싸한 이유를 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가겠다고 거짓으로 말합니다.

 

9절입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10절입니다.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원래 헤브론은 다윗이 왕 되었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을 보내 압살롬이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게 합니다.

 

11절입니다.

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압살롬을 따라간 자들은 그 이유도 모르고 따라간 것입니다. 이들은 평소에 압살롬 근처에 있던 자들입니다. 신앙은 평소에 내가 누구 근처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에 따라 천국 지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200명이 이유도 모르고 압살롬을 따라 갔는데 지옥 결정이 납니다. 역사서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알려 주는 것이 역사서입니다. 왜 지옥가는 사람 근처에 있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마음을 같이하고 근처에 있는 자, 즉 중심부에 있는 자는 신앙이 약해지지 않습니다. 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게 됩니다.

 

12절입니다.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압살롬이 지혜자 아히도벨을 데려 옵니다. 아히도벨은 원래 다윗의 모사였습니다. 사실 지금 다윗에게 반역하는 것인데 바로 지옥입니다. 압살롬과 그를 따른 200, 그리고 아히도벨도 지옥입니다. 그들은 압살롬과 함께 할 정도로 영이 안 좋은 겁니다. 사람은 영의 판단에 의해 움직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를 보여 줍니다.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압살롬과 있으면 그냥 자동적으로 반역하게 되는 겁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이 다윗에게 반역하는 겁니다. 많은 백성들이 반역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나쁜 일을 하고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잡혀 갑니다. 마찬가지로 반역하는 자들 옆에 있으면 안 됩니다.

 

13절입니다.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절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다윗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예전에는 전쟁할 때 하나님께 늘 물었습니다. 지금은 맛이 간 겁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도망가자고 합니다. 백성들의 인심이 압살롬에게 갔다는 한 마디만 듣고 빨리 도망가자고 합니다.

 

15절입니다.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절입니다.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

게 하니라

 

17절입니다.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예루살렘 성 오른쪽에 올리브산, 감람산이 있습니다. 그 사이가 기드론 계곡인데 그 직전에 위치한 별궁이 벧메르학입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었는데 다윗이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별궁에서 멈춘 겁니다 .

 

18절입니다.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그렛 사람은 미슬라엠 계통 사람인데 블레셋 가사 지방으로 배타고 건너가 그 지역 사람을 물리치면서 거기서 정착했는데 그 곳이 블레셋입니다. 여기 그렛 사람은 혈통적으로 블레셋과 섞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가드에서 온 모든 사람 육백 명이블레셋에서 추방당한 600명이 왕 앞으로 지나간 겁니다. 그런데 왜 블레셋 사람들이 같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블레셋을 점령할 때 잡아온 포로들을 왕궁에서 종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처럼 융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19절입니다.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가드 사람 잇대는 원래 있던 자가 아니라 새로 온 사람일 것입니다. 아마 600명도 원래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어제 새로 온 자들일 것입니다. 다윗은 잇대에게 너는 나 따라오지 말고

네가 섬기던 왕에게 가.’라고 말합니다. 위기 가운데 있을 때 한 명이라도 우리 군사로 사용하고자 할텐데 600명을 자기 군사로 쓰기보다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약간 맛이 갔어도 영성이 정말 대단합니다. 600명이면 엄청 많은 숫자인데 잇대에게 가라고 합니다.

 

20절입니다.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나는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고생길이 훤하니, 너는 가서 편하게 쉬어.’라고 말하는 겁니다. 지금 엄청 궁지에 몰린 상태인데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의 놀라운 영성을 알 수 있습니다. 잇대 혼자가 아니라 동포들도 다 데려가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축복하는 여유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잇대의 충성심이 엄청납니다. 볼 것도 없이 천국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한가지 결정할 때 마음의 모든 것이, 그의 가치관이 다 드러납니다. 구원은 간단합니다. 다윗과 함께할 때 고생길이 훤하지만 다윗왕이 참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잇대가 다윗왕을 만난지가 하루 밖에 안 지났지만 다윗을 선택하므로 천국이 결정납니다. 잇대의 단면의 모습이지만 성향과 방향성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입니다.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절입니다.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24절입니다.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사독은 대제사장입니다. ‘아비아달도 대제사자인데 나중에 버림받고 지옥갑니다.

 

25절입니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하나님의 궤는 즉 언약궤는 모든 백성들과 이스라엘이 인정하는 하나님 자신이자 임재의 상징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데 이것도 도로 갔다 놓으라는 겁니다. 잇대도 가라고 하고 언약궤도 다시 갔다 놓으라고 합니다.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다윗이 위기 가운데 지금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은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지금은 내가 정상이 아니지만 나중에 내가 회복한다면 언약궤와 하나님 계신 곳을 다시 보여 주실 거라는 겁니다.

 

26절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다윗이 정말 대단합니다. 지금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반란하는 무리들에게 욕을 하고 비난하며 열을 받아야 할텐데 다윗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뻐하지 않으신 걸로 여긴 겁니다.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하나님! 저를 기뻐하지 않으시나봐요. 내게 마음대로 행하세요.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모르겠어요.’ 굉장히 겸손한 겁니다. 우리 같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 우리는 이제 곧 회복할 거야.’라고 여길텐데 다윗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고, 법궤도 다시 가져가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법궤가 없으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어려움을 선택한 것입니다.

 

27절입니다.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사독은 선견자,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독에게 너 뿐만 아니라 모든 선견자를 데리고 성읍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법궤를 그곳에 두고 거기 있으라고 돌려 보냅니다. 물론 나중에는 이 일이 다윗에게 선으로 작용하게 되지만 다윗의 본심은 그것을 바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지 않으시는구나하고 자신을 돌아본 것입니다.

 

28절입니다.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29절입니다.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30절입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감람산올리브 산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장소입니다. ‘맨발로신발도 없이 울면서 갑니다. 예수님도 갈보리 골고다 언덕길을 맨발로 올라가셨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선의 모형이고 의의 모형입니다. 따르던 사람들도 자신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갑니다. 구원입니다. 비록 현재는 고통이지만 구원의 길입니다. 구원은 간단합니다. 내가 누구편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31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다윗이 기도합니다. 아히도벨은 원래 다윗의 모사꾼이었습니다. 왕은 제사장과 군대장관과 지혜자를 옆에 끼고 정치합니다. 아히도벨은 지략이 뛰어나서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아히도벨이 전략을 짜면 끝난 겁니다. 다윗도 아히도벨의 지략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히도벨이 배반하고 압살롬과 함께 있으니 다윗이 위기를 느끼고 기도한 것입니다.

 

32절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오번역입니다. ‘다윗이 산 꼭대기에 왔을 때 그가 하나님께 예배하였다입니다. 어떻게 예배했을까요? 예배는 이마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이 예배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마를 땅에 대고 기도한 것입니다. 드디어 전쟁을 역전시킬 인물이 나타납니다. 후새가 등장하는데 이 후새는 나중에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인물입니다. 다윗이 올리브 산 위에서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서 후새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드디어 다윗은 쉽게 이기게 됩니다. 후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33절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지금 친구인 후새에게 너 지금 나랑 같이 가면 나에게 짐이 돼.’라고 말하는 겁니다.

 

34절입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후새의 역할은 다윗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압살롬에게 가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후새는 다윗의 친구입니다. 압살롬이 생각할 때 다윗의 친구 말이 더 믿을만할까요, 아히도벨의 말이 더 믿을만할까요? 다윗의 친구가 내 편으로 왔는데 당연히 압살롬이 더 믿었을 것입니다.  

 

35절입니다.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리라

 

36절입니다.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듣는 모든 것을 그들 편에 내게 소식을 알릴지니라 하는지라

사독과 아비아달의 두 아들이 있으니 그들을 연락병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37절입니다.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드디어 후새가 압살롬에게 들어갑니다. 이제 다음 말씀에서는 다윗이 어떻게 승리하는가가 나옵니다. 진짜 다윗은 굉장한 인물입니다. 잠깐 맛이 갔어도 순간순간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감동대로 행동합니다. 결국 전쟁에서 아주 쉽게 이기게 되고 압살롬만 죽게 됩니다. 다윗의 장점이 있는데 바로 겸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 나는 천국에 들어가.’ 이런 세뇌가 신앙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을 때 돌아올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 마음대로 행하여 주시라는 겸손이 있었습니다. 이런 겸손한 마음 속에서 모든 지혜와 내용들이 나오게 됩니다. 반대로 교만해 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이상하게 됩니다. 교만해지면 승리만 원하고 좋은 것만을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내가 압살롬을 꼭 이겨야겠다.’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다윗은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빗나갔나보다. 하나님과 멀어졌나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지 않으시나보다.’라고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둡니다. 만약 승리에 마음이 있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모으고 법궤도 안 보냈을 것입니다. 승리가 축복이 아닙니다. 형통이 복이 아닙니다. 때로는 패배가 더 좋을 때도 있고 안 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을 얻는 것이 성공입니다. 부요함이나 형통이나 좋은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얻는 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오늘 말씀의 다윗이 바로 성공한 인물입니다. 전쟁의 승리나 왕위를 유지하는 데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얻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외 다른 모든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위대했으면 성경 많은 곳에서 다윗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다윗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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