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9장 [남의 귀신을 쫓아내도 자기 안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면 지옥가기 쉽습니다]

 


여호수아 19

[남의 귀신을 쫓아내도 자기 안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면 지옥가기 쉽습니다]

 

 

1절입니다.

둘째로 시므온 곧 시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

일곱 지파 중에서 첫 번째가 베냐민 지파였었고 두 번째 시므온 지파부터 이제 나옵니다. 지금 신기하게도 유다 지파에 할당된 땅 안에 시므온 지파가 뽑힌 겁니다. 매우 인상적인 땅 분배 모습입니다.

 

2절입니다.

그들이 받은 기업은 브엘세바 곧 세바와 몰라다와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살았고 이삭과 야곱이 살았던 지역입니다. 이 브엘세바가 시므온 지파의 수도입니다. 한 마디로는 세바입니다.

 

3절입니다.

하살 수알과 발라와 에셈과

 

4절입니다.

엘돌랏과 브둘과 호르마와

 

5절입니다.

시글락과 벧 말가봇과 하살수사와

6절입니다.

벧 르바옷과 사루헨이니 열세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며

 

7절입니다.

또 아인과 림몬과 에델과 아산이니 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며

 

8절입니다.

또 네겝의 라마 곧 바알랏 브엘까지 이 성읍들을 둘러 있는 모든 마을들이니 이는 시므온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라

 

9절입니다.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받음이었더라

시므온 지파는 나중에 북이스라엘에 속하게 됩니다. 유다와 베나민은 남유다입니다. 지역은 유다에 속했었는데 나중에 시므온 지파가 북이스라엘에 속하게 됩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유다와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했는데 영적으로는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 족속이 구원에 들어가게 되고 시므온은 구원에서 상실되게 됩니다. 유다 가운데 거하고 있었음에도 나중에 구원상실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선지자인데 남편은 지옥가는 경우입니다. 유다 안에 있었음에도 신앙이 떨어진 겁니다. 우리가 육적으로만 가까워서는 안 되고 영적으로도 가까워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셋째로 스불론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사릿까지이며

납달리 스불론은 갈릴리 지역으로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셨던 지역입니다.

 

11절입니다.

서쪽으로 올라가서 마랄라에 이르러 답베셋을 만나 욕느암 앞 시내를 만나고

사릿에서부터 동쪽으로 돌아 해 뜨는 쪽을 향하여 기슬롯 다볼의 경계에 이르고 다브랏으로 나가서 야비아로 올라가고

 

12절입니다.

또 거기서부터 동쪽으로 가드 헤벨을 지나 엣 가신에 이르고 네아까지 연결된 림몬으로 나아가서

 

13절입니다.

북쪽으로 돌아 한나돈에 이르고 입다엘 골짜기에 이르러 끝이 되며

 

14절입니다.

또 갓닷과 나할랄과 시므론과 이달라와 베들레헴이니 모두 열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15절입니다.

스불론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16절입니다.

넷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잇사갈은 갈릴리 호수 밑에 있는데 갈릴리 지역에 속해 있으면서 납달리와 스불론의 영향을 받은 곳입니다.

 

17절입니다.

그들의 지역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18절입니다.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19절입니다.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19절입니다.

레멧과 엔 간님과 엔핫다와 벧 바세스이며

 

20절입니다.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이르고 그 끝은 요단이니 모두 열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21절입니다.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22절입니다.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23절입니다.

그들의 지역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24절입니다.

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쪽은 갈멜을 만나 시홀 림낫에 이르고

 

25절입니다.

해 뜨는 쪽으로 돌아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을 만나고 북쪽으로 입다 엘 골짜기를 만나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 왼쪽으로 나아가서

 

26절입니다.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아셀 지파에 시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돈은 공격을 할 엄두를 못 냅니다. 두로도 마찬가지인데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할당은 되었는데 공격은 못한 겁니다.

 

27절입니다.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28절입니다.

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스물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29절입니다.

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30절입니다.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31절입니다.

그들의 지역은 헬렙과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에서부터 아다미 네겝과 얍느엘을 지나 락굼까지요 그 끝은 요단이며

 

32절입니다.

서쪽으로 돌아 아스놋 다볼에 이르고 그 곳에서부터 훅곡으로 나아가 남쪽은 스불론에 이르고 서쪽은 아셀에 이르며 해 뜨는 쪽은 요단에서 유다에 이르고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33절입니다.

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34절입니다.

게데스와 에드레이와 엔 하솔과

 

35절입니다.

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열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36절입니다.

납달리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37절입니다.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단 지파는 할당받은 땅을 나중에 블레셋에 다 빼앗기게 됩니다.

38절입니다.

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39절입니다.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40절입니다.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41절입니다.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42절입니다.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43절입니다.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44절입니다.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

레셈은 납달리 맨 위쪽입니다. 헬몬산 지역입니다. 그곳을 점령합니다. 단이 지금 더욱 확장해서 정복을 하는데 지금은 사라진 지파이지만 본인들의 할당된 지역 외에까지 가서 점령한 것입니다. 이것이 뭘 의미할까요? 자신들에게 있는 땅, 즉 본인에게 있는 어두움은 그대로 두고 남에게 있는 어두움을 쫓아내고자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마치 자신이 다 된 줄로 알고 그 안에 있는 어두움은 그대로 두고 남에게 있는 어두움을 쫓아내고자 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쫓겨 나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구원이 상실됩니다. 마치 단 지파가 다른 지역까지 정복해 나갔지만 결국 나중에 역사에서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내 안에 있는 어두움과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지파가 아주 안타까운 경우인데 야곱이 예언할 때 단은 독사에 비유됩니다.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어둠이 강하면 금세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둠이 강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해도 금방 잃어버리게 됩니다. 단이 레셈을 정복해서 단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나중에 금세 블레셋에 빼앗기고 맙니다.

 

현재 한국에 축사하시는 분들 보면 본인들 안에 있는 어두움은 그대로 두고 남에게 있는 어두움만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런 분들 얼굴을 보면 진짜 무섭습니다. 어둠이 나가면 기쁨과 평안이 넘쳐 납니다. 우리가 축사를 이해할 때 단 지파처럼 되면 안 되고 먼저는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쫓아내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45절입니다.

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

 

4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47절입니다.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

여호수아도 딤낫 세라 땅을 받게 됩니다.

48절입니다.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

가나안은 이 땅에서의 구원입니다. 내세의 구원은 천국 낙원입니다. 이 구원이 정말 어렵습니다. 이 땅에서의 구원은 항상 위태롭습니다. 내부적으로 귀신과의, 외부적으로는 악령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구원은 이 마귀들을 쫓아냄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축사 없이는 영생이 어렵습니다. 마가복음 없이 요한복음으로 못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에서만 영생이 나오는데 마가복음의 축사를 통과해야만 영생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회막에서 성소는 이 땅에서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성소 안에는 성령님을 상징하는 등잔대와 예수님을 상징하는 떡상이 있습니다. 이 두 분이 이 땅에서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십니다. 우리가 직접 만날 수 없습니다. 지성소가 영적으로 구원입니다.

 

금향단을 통과해야 하는데 금향단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의 파워를 의미합니다. 이 땅의 가나안이 구원인데 이게 구원의 전부가 아니라 재림하신 다음에 새 예루살렘, 즉 진짜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이 다 사라지고 새로운 새 예루살렘이 생기게 됩니다. 모세오경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는 책이고 그 다음부터는 구원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론이 여호수아서부터 말라기 까지입니다.

 

열 두 지파의 모형은 다 개인적인 싸움을 의미하는데 각자가 싸워야 할 몫입니다. 누가 대신 싸워주지 않습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안수는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축사는 다 내가 해야 합니다. 공부할 때 대신 해 준다고 됩니까? 안 됩니다. 신앙은 결국은 내가 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과 인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 안의 어둠과 싸워서 쫓아내야 합니다. 내 안에 어둠은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어둠은 질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죄로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고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담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안에 있는 귀신을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어도 매를 맞아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안에 어둠이 있으면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모든 고통의 배후에는 귀신이 있습니다. 내 안에 귀신을 쫓아내면 세상에 고통이 사라집니다. 질병과 죄와 고통은 어둠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어둠이 떠나가면 질병과 죄와 고통이 사라집니다. 어둠이 나갈수록 빛의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힘이 생기는데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파워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영력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둠과 싸우는데 말씀으로, 기도로 싸워야 합니다. 싸울수록 우리의 파워가 더 커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질병과 죄와 고통에서 해방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스스로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로 내 안에 있는 어둠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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