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0

[구원 후, 비의도적인 범죄는 회개의 기회가 제공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도피성은 6군데로 정하게 되는데 게데스와 골란과 라못과 베셀과 세겜과 헤브론입니다. 12지파 중에 레위 지파들이 거주하는 성 중에서 6곳을 정한 것입니다.

 

3절입니다.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사람을 죽이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즉 구원상실을 당해야 하는데 구원상실을 당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고의성이 없는 살인입니다. 고의성이 있으면 지옥입니다. 이 고의성은 하나님께서 절대 용서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의적이지 않고 우발적으로 쳤거나 사고를 냈는데 죽었다면 용서가 가능합니다. 우리 마음에 고의성이 있다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고의성일까요? 고의성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인을 죽인자는이라는 조건을 달고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고 미워했지만 고의적으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고의성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고의성은 쉽게 말해서 악인과 선인을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악인은 아주 고의적입니다. 고의적으로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 순간 하나님께 끝장 난 겁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범죄한 것은 하나님께서 봐 주십니다. 그냥 봐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기회를 주신 것이 바로 도피성입니다.

 

4절입니다.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6개의 성 문 입구에 서서 장로들에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우발적으로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하라는 겁니다. 이 장로들이 누굴까요? 레위 지파 가운데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있을 때 교회에 가야 하는데 교회는 우리의 죄가 끊어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교도소에도 교화시키는 곳이 있지만 죄를 온전히 끊게 하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죄를 끊어주는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로 가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죄에서 벗어나는 길로 가야 합니다.

 

5절입니다.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미워함 없이 살인을 했어도 판정은 지옥입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간음죄를 짓게 되면 판정은 지옥입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기회를 주시는데 그곳이 바로 도피성입니다. 6개의 도피성이 있는데 이 6이라는 숫자는 인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아직 구원에 도달이 안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우발적인 경우 도피성인 교회에서 영적인 은혜를 충전해야 합니다. 죄를 이길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우리가 고의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범죄할 경우 긴장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나를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살인자가 도피성에 오면 그냥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고의성이 없었는지 재판장이 판단하는 겁니다. 만약에 고의라면 재판장에 판단하에 유죄 판결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진짜 고의가 아니라면 그 때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비고의적인 죄에 대해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 잡혀 왔을 때 원래 율법대로라면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그 여인은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적용하여 간음죄도 용서해 주셔,’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닙니다. 비고의적인 죄에 대해서 용서해 주시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다 용서해 주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과 복음은 서로 상충되지 않습니다.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다? 100% 지옥입니다.

 

비고의적인 죄에 대해서도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비고의성이 인정되어 용서받지만 또다시 그 죄를 짓게 되면 그 때는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정이 된 것입니다. 똑같은 살인죄, 간음죄라 할지라도 그 죄의 배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 그 죄를 짓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판정하시는 것인데 자기 스스로가 나는 비고의적이야.’라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이 고의성에 의해 버림받게 됩니다. 고의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들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귀로 가득 찬 사람들은 회개가 안 됩니다. 마귀를 쫓아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비고의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변화가 안 되면 다시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이 도피성은 천국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도피성에서 계속 거하게 되면 결국 지옥입니다. 다시 나와야 합니다. 대제사장이 죽어야 나올 수 있는데 몇 살에 죽을까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비고의적으로 죄를 지었다할지라도 도피성에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우리가 천국 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었다면 천국 가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은 어렵습니다. 한 번 죄를 맛 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이 죄를 짓지 않도록 오랫동안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결국은 지옥을 판정받게 됩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내부, 마음은 잘 안 바뀝니다. 마음이 바뀌는데 오래 걸립니다. 중세 수도원이 생긴 이유가 이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인데 오랫동안 은혜 생활을 해야 마음이 조금 바뀝니다. 그러다보면 죄를 안 짓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구원으로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도피성으로 온 살인자는 집행유예 기간을 보내는 것인데 이 때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 조심하고 의로운 쪽으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발적인 죄라 할지라도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고의성이 없다할지라도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만약 나는 고의가 없이 죄를 지은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음에 그 죄를 또 짓게 됩니다. 우리가 고의성이 없는 죄조차도 안 질 정도로 변화가 되면 누구를 건든다 할지라도 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우발적인 죄를 지었다는 것은 내 안에 어둠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어두움을 몰아내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음에 그 어두움 때문에 또 죄를 짓게 됩니다. 이 때는 기회가 안 주어집니다. 지옥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어두움과 자꾸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 마음에 죄들을 그대로 두면 나중에 그 죄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인간은 노력하지 않으면 죄를 못 이깁니다. 노력은 죄를 이길 수 있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노력해도 안 되고 넘어집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또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 안하고 그대로 두면 마귀에게 끌려갑니다. 이길 때까지 계속 노력해서 정복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도 죄를 못 이깁니다. 마음에서부터 죄를 안 짓게 되는 단계가 있는데 마음에 할례를 받은 경우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에서 원하는 것을 보고 듣기를 원합니다. 죄도 마음에서 원하기 때문에 이상한 영상들을 보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마음에서 떠나면 안 보고 안 듣고 죄를 안 짓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폰과 영상으로 인해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치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죄가 없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죄를 온전히 버릴 때까지 도피성에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 노력하다보면 죄가 멀리 떠나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 때까지 계속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성결하게 살 수 있을까요? 대제사장 밑에서 말씀 배우고,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에서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는 것은 굉장히 유익합니다.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계속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산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성결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이 성결은 마음에 할례가 일어날 때까지, 즉 내 마음에 죄가 없어질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의적인 또는 비고의적인 죄도 안 짓게 됩니다.

 

7절입니다.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이 지역은 대제사장이 있는 곳입니다. 내가 신령한 사람 밑에 있을 때 같이 신령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요? 신령한 사람을 찾아가서 머물러야 합니다. 안 그러면 길이 없습니다.

 

8절입니다.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6곳의 도피성은 특별히 지정된 장소입니다. 범죄한 사람들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구원으로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버려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버림받을 행동을 할 뿐입니다. 창세기를 번역할 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말씀에서 멸망당할 짓을 하는지 볼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멸망을 왜 당하느냐? 멸망당할 짓을 하면 멸망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버림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멸망당할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비고의적인 죄를 지었을 때 내가 다시 회복해서 돌아올 수 있는 기회의 장소가 바로 도피성입니다. 우리가 만약 십계명을 어겼다면 그 죄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어기면 지옥간다는 말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십계명을 어기는 대죄는 지옥가는 사유가 되기 때문에 대죄를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소죄는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대죄는 용서받기 힘듭니다. 미움죄 같은 중죄도 천국 못 갑니다. 미움죄는 소죄가 아닙니다.

 

죄 가운데 대죄는 행위로 짓는 죄입니다. 중죄는 계속 마음으로 품는 악한 생각인데 하나님께서 봐 줄 수 없는 죄입니다. 바로 미움죄인데 요한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소죄는 작은 거짓말 같은 것인데 이것은 천국 갈 수 있습니다. 소죄 외에는 천국 가기가 힘듭니다. 중죄 같은 경우는 한 번 미워했다고 바로 지옥은 아니지만 계속되면 최종 판정에서 결정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무서워하고 회개하며 돌아서야 합니다.

 

9절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회중 앞에 선다는 것은 다시 구원받은 자의 모임에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형교회는 영적으로 구원받은 자의 모임인데 이 모임에 다시 설 때까지 도피성에서 성결과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다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이후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으면 그것으로 다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죄로 인해서 다시 구원을 잃게 됩니다. 비고의적으로 죄를 짓게 되었을 때 도피성으로 가야 합니다. 도피성은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은혜의 장소이지, 구원 안 받은 자들은 비고의적인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지옥 갈 확률이 큽니다. 물론 100%는 아닙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많은 혜택을 주십니다.

 

다윗도 범죄했고 삼손도 범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원받은 자였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불신자가 성경에 보니 간음죄 지어도 천국 가던데?”라고 말한다면 이미 끝난 겁니다. 왜 이런 사람들은 쉽게 심판하시고 버리실까요? 하나님과 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용서가 있고 자비가 있습니다. 더 안타까워 하십니다. 다윗과 삼손도 하나님과 멀리 있었다면 범죄했을 때 쉽게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했을 때 나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운명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나의 신앙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같은 범죄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평가는 다 다릅니다. 더러운 자가 범죄하면 나중에 버리십니다. 엘리압은 누구를 죽인 적도 없는데 그를 버리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큰 범죄를 해도 용서해 주십니다. 많이 변화가 되어서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매우 유리한 것입니다. 도피성에 있을 때 구원이 다시 회복되는데 회복할 때까지 계속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율법적으로 누구를 죽인 자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않게 보호하신다는 것은 죄로 인해 영적인 손해 말고도 육적인 손해에 대해서도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은 도피성에 들어갔을 경우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도피성에 안 들어가면? 그냥 보복자의 손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실수로 어떤 남자를 살짝 건드렸는데 넘어져서 죽었을 경우에 나는 고의가 아니었는데?’하며 그냥 도피성으로 안 가면 나중에 죽은 자의 아내가 보복을 해서 내가 죽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도피성으로 안 가면 지옥가게 됩니다. 우발적인 죄를 짓게 되었을 때 도피성, 즉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붙들게 되면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작해 주십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고의가 아니었어.’하고 그냥 있으면 기회가 안 주어집니다.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연히, 비고의적으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다시는 우발적인 죄조차도 안 짓는 자로 변모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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