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방주)를 다윗성에 들여옴으로, 3만명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구약전장 강해

 

사무엘하 6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방주)를 다윗성에 들여옴으로, 3만명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1절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오변역입니다. ‘삼만 명을 모두 함께 모았습니다.’입니다. ‘다시라는 말은 없습니다. 지금 유대와 이스라엘에서 삼만 명을 뽑아 모은 것입니다. 이것은 참교회인 다윗을 통해 거듭남에 있는 영혼들에게 삼만 명이라는 사람이 구원에 들어온 것입니다. 엄청난 부흥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이유는 다윗 한 사람 때문에 나중에 120만 명이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역사입니다. 군사 삼만 명이 나온 것입니다.

 

2절입니다.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바알레유다유다에 있는 바알레입니다. 기럇 여아림인데 기럇바알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이름일까요? 기럇 여아림에서 20년동안 법궤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유다 안에서만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거듭난 자들에게도 확산이 되는데 법궤라는 하나님의 임재인 구원이 드디어 같이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바알레유다바알은 원래 주인이라는 뜻으로 유다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궤는 ‘Ark’ , 방주입니다.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그룹은 체루빔입니다. 사람 모양의 천사가 양쪽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하나님의 임재가 이 땅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임재하실 수 있는데 이 법궤를 통해서 임재하십니다. 이 법궤는 임재 및 구원에 대한 상징입니다.

 

3절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절입니다.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절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수금은 하프입니다. ‘비파는 바이올린이고, ‘소고는 탬버린이고 양금은 나팔이고 제금은 심벌즈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할 때 어떤 은혜가 임하느냐? 하늘의 천사들에게 찬양이 있는 것처럼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늘 찬양이 살아 있습니다. 물론 구원 전에도 찬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찬양은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찬양입니다. 찬양이 늘 살아서 올라옵니다.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구원에 대한 영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로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타작 마당은 보통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는 심판대를 상징합니다. ‘소들이 뛰므로오번역이고 소들이 법궤를 흔든 것입니다. 이 때 웃사가 손으로 안 떨어지게 잡게 됩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잡으면 안 되는 건가요? 웃사가 왜 죽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왜 분노하셨을까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파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영혼이지만 구원의 임재가 임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면 구원이지만 안 받아들이면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구원만이 아니라 심판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메시지는 아주 무섭습니다. 이것을 통해 천국과 지옥이 결정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이런 게 없지만 구원의 세계는 무서운 세계입니다. 구원의 메시지가 있는 참교회에서는 심판이 결정됩니다. 지금도 법궤가 존재합니다. 지금도 임재의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안 받아 들이면 영이 죽는 겁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오번역입니다. ‘made a breach upon’으로 박살내다, 관통시키다라는 뜻입니다. 법궤를 잡자마자 몸이 떨어져서 순간적으로 즉사한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이 마음이 힘든 겁니다. ‘베레스웃사웃사를 치셨다라는 뜻입니다. 웃사가 왜 죽었을까요? 구원에 도달하지 않은 자가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만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어갈 때 이 말씀을 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거듭난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다릅니다. 말씀을 주실 때 당황이 되더라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약은 구원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말씀입니다. 이것을 통과하고 나서 신약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구원은 거듭남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구원은 거듭남이 아닙니다.

 

9절입니다.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절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가드 사람가드는 블레셋입니다. 블레셋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언약궤를 옮깁니다. 제사장 아들인 웃사는 죽었는데 이방사람 오벧에돔은 멀쩡합니다. 오벧에돔이 신앙이 좋았을까요? 그건 모릅니다. 더 보겠습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유대 사람 웃사는 죽었는데 오벧에돔은 이방인인데 구원을 얻었습니다. 복음의 구원의 말씀 앞에 인간의 반응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거듭남은 넒고 약한 말씀들인데 구원의 말씀은 센 말씀들입니다. ‘십계명을 지켜야 천국 간다.’ 이런 말씀은 거듭남에서는 없습니다. ‘산상수훈을 지켜야 천국 갑니다.’ 이런 메시지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 세계에서는 존재합니다. 구원은 또다른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렇게 신앙이 안 된다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은 이것을 받아 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임재가 뭘까요? 하나님이 오셔셔 함께 하는 것? 임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임하셨을 때 그 뜻대로 내가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존재에 맞춰서 내가 사는 것, 이것이 임재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그 분이 내게서 떠나 가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 가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와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남 수준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함께 하십니다. 웬만하면 안 떠나십니다. 하지만 구원은 다릅니다. 떠나가십니다. 그래서 이 임재가 신앙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원을 받게 되면 늘 불안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건 아닌가? 나는 여전히 구원 안에 있는가? 구원 전에는 그냥 교회만 잘 다니면 되었는데 구원 받으면 달라집니다. 때로는 내가 구원 이탈이 된 것은 아닌가 불안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만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받아 들일 때 구원이 임합니다.

 

12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다윗이 볼 때 제사장 아들인 웃사는 법궤를 만져서 죽었는데 오벧에돔은 복을 받는 것을 보고 신기한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법궤를 소에게 메게 했다가 나중에는 직접 메고 가는 겁니다. 법궤는 원래 어깨에 4명이서 메는 겁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다윗이 두려워하는 장면입니다. 여섯 걸음을 간 그 자리에서 바로 소와 송아지를 예물로 바치고 제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임재가 궤, 방주인데 지금도 임재하시는 곳이 존재합니다. 임재가 방주, 궤입니다. 이 궤가 성전에서 메인입니다. 성전의 핵심인 방주가 있으면 성전, 없으면 성전이 아닌 겁니다. 다윗이 예배를 드리니까 갑자기 마음에 기쁨이 오면서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14절입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이 너무나 기뻐서 춤을 추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예배의 기쁨, 하늘의 기쁨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배 드릴 때 다윗처럼 춤을 추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제가 예전에 많이 부르던 찬송이 나 어느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예배를 드리니까 그 즐거움이 마음에 확~ 다가온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갈 때 늘 기쁜 찬송이 올라옵니다.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에봇은 제사장이 입었던 옷입니다. 다윗 때 의상은 다 원피스입니다. 나중에 다윗의 하체가 드러나는데 춤을 추다 보니 안이 들여다 보인 것입니다. 허리띠가 풀러진 것이 아니라 원피스 에봇을 입고 춤을 추다가 하체가 보인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6절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미갈이 왕인 남편이 하체가 보이도록 춤을 추는 것을 본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모든 사람이 다 보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하체를 드러내고 춤을 출 정도로 이성을 잃은 것입니다. 얼마가 기쁘고 즐거웠으면 하체가 보이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춘 것입니다. 굉장합니다. 다윗의 즐거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성막이 있는데 지성소에 법궤가 있습니다. 성막을 다 꾸며 놓은 상태에서 법궤를 가져 온 것입니다. 법궤는 성막에서 메인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에 있는데 이 임재가 없으면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이 임재를 여는 사람입니다.

 

18절입니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거듭난 다음에 구원에 이를 때 화목제를 드려야 합니다. 화목제는 거듭날 때 바치고, 구원받을 때도 바쳐야 하는 예물입니다.

 

19절입니다.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오번역이고 ‘a flagon of wine’입니다. ‘flagon’은 포도주 큰 잔입니다. 지금 빵 한 조각과 고기 한 덩어리와 포도주 큰 잔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구원에 따른 포도주, 속죄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기는 영적인 충만함과 은혜를 의미합니다. 지금 영적으로 아주 충만한 상태인 것입니다. 백성들이 드디어 구원 받아서 영적으로 충만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백성들에게도 은혜가 임하니까 충만한 기쁨 가운데 가족에게 돌아옵니다. 축복하러 미갈에게 돌아왔는데 미갈이 다윗을 맞이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다윗을 비꼬며 말합니다. 일반 백성들의 하녀들이 보는 가운데 몸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수위가 어느정도일까요? 당시에는 팬티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허벅지 정도가 아닙니다. 다 보인 것입니다. 남편이 밖에서 기뻐 춤 추는데 하체가 다 보이는 겁니다. ‘uncovered himself’입니다. 왕이 하녀들 앞에서 몸을 다 드러냈으니 미갈이 열 받은 겁니다.

 

21절입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미갈의 반응은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라는 겁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will I play before the LORD.’하겠다고 말합니다. 여호와 앞에 뛰놀더라는 표현이 성경에 나오는데 성령 충만한 기쁨 가운데 뛰어 노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한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 예측이 안 됩니다. 나는 상태가 좋고 기쁜 가운데 있는데 책망하실 때가 있으시고 반대로 힘들고 슬픈 가운데 기뻐하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실제로 존재하십니다. 신앙은 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인식이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환경이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식이 됩니다. 살아계신 분이 감동을 주실 때 웃었다가 울었다가 하게 됩니다. 지금 다윗이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춤을 추었기 때문에 하체가 드러난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인 미갈 입장에서는 남편이 추책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맞는 것이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22절입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오번역입니다. ‘will be base in mine own sight’인데 바닥에 있게 될지라도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겸손했으면 왕이라는 신분을 벗어 버린 것입니다. 목사, 장로 타이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겸손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가장 낮은 자가 된다 할지라도 미갈 너처럼 말하는 자는 계집종이라는 것입니다. 종은 구원을 안 받은 자들입니다. ‘나는 구원 받은 사람 중에 가장 낮다 하더라도 구원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춤을 추지만 너는 구원을 안 받았기 때문에 너에게만큼은 영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갈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미갈이 첫째 부인인데 아마도 다윗이 미갈을 그동안 상당히 대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국을 평정한 다음에 다른 부인들을 제쳐 두고 미갈을 가장 먼저 만나러 갔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다윗이 가장 마음을 두고 특별 대우한 부인이 천국에 못 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형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미갈 같으면 다른 부인 다 내버려 두고 자기에게 왔는데 엄청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고 멸시하니 당연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지옥에 가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복음이 올 때 그 복음 앞에 우리의 반응이 엄청 중요합니다. 이 반응이 인생을 좌우합니다. 복음이 뭐냐? 다윗이 바로 복음입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예표하는데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에 의해서 구원이 결정됩니다. 이 때 미갈이 다윗과 함께 기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게 안타까운 겁니다. 우리 마음판의 태도가 중요한데 거듭난 자들이 구원에 못 들어오는 이유가 바로 구원받은 자의 말씀과 자신이 배운 말씀이 맞지 않아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고 받아 들이게 되면 오늘 말씀에 나온 오벳에돔처럼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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