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장 [애통과 회개의 역사가 예배의 본질입니다]

 


사사기 11

[애통과 회개의 역사가 예배의 본질입니다]

 

1절입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입다가 3장에 걸쳐서 나오는데 10장에서는 입다의 등장 배경이 나옵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용사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출신은 별로 안 좋습니다. 첩의 아들은 지옥가게 되는데 누가 봐도 입다는 지옥가는 크리스천입니다. 육적으로는 지옥가는 크리스천이지만 영적으로는 천국 가는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원래 길르앗의 아버지가 마길이고 마길의 아버지가 므낫세입니다. 길르앗은 5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다를 낳은 적이 없습니다. 바로 길르앗이라는 영적인 혈통이 내려 온 것입니다.

 

2절입니다.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길르앗의 아내가 낳은 아들들이 입다를 이단으로 여기고 쫓아냅니다. 기업을 잇지 못하면 지옥인데 입다 너는 지옥 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해 돕 땅으로 도망을 갑니다. 입다를 이방인으로 여기고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망친 것입니다. ‘돕 땅에 거주하매돕 땅은 이방인 지역과 경계선 부근인데 그곳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4절입니다.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절입니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처음에는 입다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고 쫓아냈는데 나중에 아니라고 판단이 되자 다시 부른 겁니다.

 

6절입니다.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처음에는 쫓아냈지만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입다의 신앙을 인정하고 장관으로 초청한 것입니다.

 

7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이방인으로 여기고 쫓아낸 사람을 다시 인정하고 부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기고 다시 초청한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암몬은 혼합주의를 의미합니다. 사사기 10~12장은 원래 하나의 스토리인데 3장으로 나눈 겁니다. 혼합주의가 들어올 때 유일하게 혼합주의에 속하지 않은 입다를 사람들의 머리, 우두머리로 초청한 것입니다.

 

9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절입니다.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미스바는 유다에 있는 미스바가 아니고 얍복강 바로 아래에 있는 미스바입니다.

 

12절입니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절입니다.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암몬 왕이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 자기 땅이니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이 지역들이 원래 암몬 땅이었을까요? 원래 아닌데 속이는 겁니다. 현재 암몬이 살고 있으니 자기들 땅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절입니다.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입다가 정확하게 말해 주는데 모압과 암몬 땅을 전혀 건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일까요? 사실입니다. 이것을 입다가 증명합니다.

 

16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이제 드디어 입다가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성경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장면입니다. 혼합주의와의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입니다. 혼합주의가 들어온 이유는 성경을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다가 성경을 정확히 이야기 해 주는데 애굽에서 올라와 가데스에 이를 때 모압과 암몬을 전혀 건들지 않고 지나 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17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18절입니다.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절입니다.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모압과 암몬은 건드리지 않고 시혼을 지나가려는데 허락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됩니다.

 

20절입니다.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절입니다.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23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입다가 성경을 통해서 모압과 암몬을 점령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혼합주의를 이기려면 성경을 통해서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4절입니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25절입니다.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암몬이 모압보다 못하다고 말합니다. 물질주의 기복신앙인 모압보다 혼합주의인 암몬이 더 나쁜 겁니다. 혼합주의는 기복주의를 능가하는 더 나쁜 사상인데 교회마다 사람들은 초청하고 간증하게 하는 것들이 다 혼합주의입니다. 영적인 검증이 안 된 자들,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 좋다고 초청해서 간증하게 합니다. 다 혼합주의입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신앙을 다 믹스시켜 버리는데 이것이 엄청 위험한 것입니다.

 

암몬은 블레셋, 모압, 아람, 에돔 사상들을 다 끌어들이고 받아들입니다. 현재 카톨릭과 신교를 합치려고 하고 종교 다원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절대 진리 외에는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은사도 처음에는 좋게 보이지만 또 은사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은사를 앞세우게 되면 그 때는 혼합주의가 되는 겁니다. 말씀이 앞서야 하는데 은사가 앞에 간다? 위험합니다. 찬양도 찬송가보다 CCM이 들어와서 다 흐리게 만듭니다. 인간을 위한 곡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가(hymn)가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만 요란하고 회개나 애통이 전혀 없는 노래만 부르다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교회가 무너집니다. 이유가 뭘까요? 혼합주의 때문입니다.

 

진리 외에 다른 사조들은 절대 경계해야 합니다. 은사주의, 계시주의 경계해야 합니다. 계시를 통해 보는 것, 천국 지옥 갔다 온 것, 이것이 신앙의 메인이 아닙니다. 예배는 오직 말씀과 기도라는 두 가지가 메인이 되어야 하는데 혼합주의가 들어오면 나중에는 메인이 점점 줄어들고 엉뚱한 것이 자리잡게 됩니다. 신앙은 성경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26절입니다.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27절입니다.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28절입니다.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29절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미스베는 미스바인데 번역자가 헷갈려서 혼합해서 쓴 겁니다.

 

30절입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입다가 서원을 하게 됩니다.

 

31절입니다.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서원이 나온 겁니다.

 

32절입니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드디어 승리합니다.

 

33절입니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입다가 드디어 혼합주의를 물리친 겁니다. 과연 어떻게 물리쳤는가에 대한 방법론이 나옵니다. 입다의 신앙이 나옵니다. 물론 입다도 몰렉에게 자녀를 번제물로 드리는 당시 이방 종교 사상으로 신앙이 약간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는 성령의 감동으로 정확히 온 것으로 서원한 것입니다.

 

34절입니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결국 서원대로 자신의 무남독녀를 바치게 됩니다.

 

35절입니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절입니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입다의 딸도 오직 말씀대로 순종하겠노라고 결단합니다.

 

37절입니다.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신앙의 진짜 메인이 뭘까요? 말씀에 대한 이해, 기도, 찬양 이것도 사실 서브입니다. 신앙의 진짜 메인은 바로 애곡입니다. 애통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신앙을 이해할 때 말씀을 많이 아는 것, 기도 많이 하는 것, 찬양 잘 부르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왜 혼합주의가 생길까요? 그것은 애통하지 않고 말씀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미혹됩니다. 애통하지 않고 찬양하면 마찬가지로 미혹됩니다. 이 애통이 없으면 사실 모든 기독교는 다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다 미혹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에서 애통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미혹됩니다.

 

애통하지 않는 자가 예배를 인도하게 되면 그 예배는 죽은 예배가 됩니다. 병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오해하는데 아닙니다. 애통이 진짜입니다. 이런 일이 역사적으로 있었나요? 바로 찰스피니 시절입니다.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애통하는 시대였습니다. 울지 않으면 결국은 지옥입니다. 왜냐하면 천국가는 방법은 메인이 애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전 세계적으로 애통하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아주 예전에는 교회마다 울음바다였는데 지금은 울지를 않습니다.

 

병고침, 은사, 계시, 천국 지옥 경험들이 메인이 아닙니다. 애통이 메인입니다. 애통이 있는 상태에서 이런 것들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애통이 없으면 혼합주의가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애통이 안 올라오면 옷을 찢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의 통곡이 없을 때 우리는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해야 합니다. 애통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합니다.

 

지금 입다가 길르앗 동쪽 사람들을 인도하는데 입다의 신앙은 말씀에 정통하였고 애통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부인이나 자녀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의미합니다. 딸이 2달간 애곡 시간을 달라고 한 것으로 봐서 입다가 애곡 신앙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입다를 용사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애통하는 사람, 눈물이 늘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인데 눈물이 말랐다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처녀는 영적인 정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튜부 때문에 혼합주의가 쉽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애통이 잘 안 되는 겁니다. 참된 말씀은 우리를 애통으로 인도해서 회개하게 합니다.

 

38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산 위에서산 위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영적인 정절을 지키는 방법이 바로 애통입니다. 다른 사상들을 배격해야 합니다. 현재 기독교 문화 내에 타종교의 문화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겉으로는 구별이 잘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애통으로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많이 울어야 합니다. 하루가 아니라 몇 년을 울어야 합니다.

 

39절입니다.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입다의 딸의 나이가 아마 15~20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40절입니다.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이스라엘 후손의 딸들이 해마다 4일씩 애곡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애곡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1년에 4일은 꼬박 애통으로 꽉 차야 합니다. 그래야 혼합주의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쉽게 잘 혼합됩니다. 그래서 애통으로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과 어려움이 복이 됩니다. 애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요와 축복은 오히려 애통을 방해합니다.

 

입다처럼 정확한 성경 지식과 애통이 있을 때 혼합주의를 분별하고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애통이 성령의 주 역사고 은사, 병고침, 예언 등은 성령의 부 역사입니다. 애통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애통이 메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은사자들, 간증자들 초청해서 다 애통이 아닌 다른 것으로 빠집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메인이 빠져 있으니 맥이 없고 힘이 없고 허전합니다. 시간 지나면 다 지옥으로 빠지게 됩니다. 저희 교회는 애통이 늘 있습니다. 하지만 애통이 없는 교회는 다 힘이 사라지게 됩니다. 애통의 역사가 메인 역사이며 이것이 길르앗 땅 넓은 지역에서 구원상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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