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장 [다윗은 사울이 믿음의 방패가 마귀의 화살을 막지못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됩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구약강해

사무엘하 1

[다윗은 사울이 믿음의 방패가 마귀의 화살을 막지못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됩니다]

 

1절입니다.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사무엘 상이 사울이 폐해지고 다윗이 세워지는 스토리라고 한다면 사무엘 하는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가는가에 집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2절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사울이 죽은 시점과 다윗이 아말렉을 치고 돌아온 시점이 맞물리는 이틀 뒤, 즉 삼일 째 되는 날입니다. 현재 시글락에 머문 상태인데 이 때 길보아 전투에서 한 병사가 나온 것입니다.

 

3절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다윗은 이스라엘 전쟁에 대해서 엄청 궁금했을 것입니다.

 

4절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다윗이 이스라엘 군사들과 사울과 요나단이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5절입니다.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원수의 죽음에 다윗이 기뻐해야 하는데 이 때 반응이 담담합니다. 오히려 사울과 요나단이 죽을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합니다.

 

6절입니다.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우연히? 낌새가 이상합니다. 전투에 참여한 병사라고 해야 하는데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 갔다고 합니다.

 

7절입니다.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절입니다.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아말렉 사람이 이스라엘에 있을 수 있나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에서 네가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게 되리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말렉을 한 명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말렉은 철저히 죽여야 하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안 죽인 사람이 있었는데 사울입니다. 원래 아말렉은 하나님과 철저하게 원수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이 자신을 아말렉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분명히 이 사람은 사울 옆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지금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데 사울이 자살을 했는데 내가 왕관과 고리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분명히 옆에 있었는데 사울이 죽자 왕관과 고리를 훔쳐 온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는 사울의 구원 상실의 현상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왕관은 벗겨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서도 이름이 지워질 수 있습니다. 팔에 고리는 영적인 상급인데 다 끝나 버린 겁니다. 이 때 이 말을 듣고 다윗은 기뻐하고 잔치를 벌여야 하는데 기분이 더 안 좋습니다.

 

11절입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성군인 다윗이 애도하는 것이야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함께 있던 자들도 모두 옷을 찢고 애도합니다. 아마도 함께 한 자들 역시 영적인 은혜 속에 들어 갔을 것입니다. 타인의 구원 상실 앞에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핍박자요 원수이지만 지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고통 가운데 아파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우리 같으면 원수의 죽음에 잔치를 벌이겠지만 다윗과 신하들은 오히려 금식합니다.

 

13절입니다.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다윗에게 소식을 전한 청년은 아말렉, 이방인 곧 불신자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진영에서 온 사람이 아닙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사울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블레셋 사람들이 생포해서 종으로 있다가 참전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방인에 의해서 구원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기름 부음 받은 자는 과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만 기름 부음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구원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네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왜 죽였냐는 것입니다. 구원 상실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끝까지 붙들어야지 죽이면 안 됩니다. 살인입니다.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뺀다던가 안락사 시키는 것도 일종의 살인입니다. 절대 누구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살인죄로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왕관과 팔에 고리를 가져와서 다윗에게 칭찬받고 한자리 차지하려고 왔는데 분위기가 이상한 겁니다. 금식하고 애도하니까 당황했을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살인죄는 명백한 범죄이므로 그 죄에 대해 죽음으로 벌한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분명히 내게 유익한 아군인데 영적으로는 적군인 것입니다. 육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이방인으로 영적으로는 해가 되는 사람입니다.

 

16절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17절입니다.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슬픈 노래애가입니다. 예레미야 애가가 있죠. 구원안에 있다가 상실되어 지옥으로 떨어진 자들에 대한 애곡입니다. 육신적인 애통이 아니라 영적인 애통입니다. 사울이 구원상실의 모델이라면 다윗은 구원에서 영생까지 얻은 인물에 대한 모델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에 대해서 애가를 부른 것입니다. 그러면 요나단도 지옥 갔나요? 요나단도 원래 지옥 갈 운명인데 간신히 천국 갑니다. 요나단은 구원상실 직전에 단명으로 천국 간 사람입니다. 요나단의 단명은 그대로 두면 지옥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빨리 데려가신 경우입니다.

 

18절입니다.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사울과 요나단의 일을 유대 족속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는데 이 야살의 책은 우리나라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서입니다. 창세기부터 여호수아, 사무엘상하 내용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할 때 다른 것은 다 불태워졌는데 이 야살의 책 원본이 스페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 책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스페인에서 1817년도에 출판하게 됩니다. 이후에 영어로도 출판됩니다. 창세기부터 사사기 1장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서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참고로 하는 것입니다. 두 번 나오는데 여호수아 10:13절과 지금 사무엘하 118절입니다. 진리는 아니지만 참고 할 만 합니다. 창세기가 내용이 2배 이상 되는데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산 위에서는 오번역인데 ‘high places’로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계실만한 장소에서 바른 예배를 드려도 영적인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예배를 안 드린 것이 아닙니다. ‘high places’에서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아무리 성전을 짓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이라 해도 구원 상실이 있습니다. 확실히 구원 받은 왕이라 할지라도 넘어지고 상실이 있다는 것입니다.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사울은 구원이 상실되어 지옥갔고 요나단은 넘어졌지만 간신히 천국에 간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가드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5대 지역 중 2곳입니다. 원귀신들이 이 두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기 때문에 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마귀들이 사울의 죽음에 대해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패배는 마귀들의 승리입니다. 이 구원상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에 다윗이 애도를 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길보아 산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음 당한 산입니다. ‘이슬은 성령의 은혜를 말하고 는 죄를 씻는 은혜입니다.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곡식이 자라지 않습니다. 제물을 드릴 밭도 없다는 것입니다. 길보아 산은 예배는 잘 드리는데 열매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두 용사의 방패단수가 아니라 복수 방패들입니다. 믿음의 방패가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사울이 왜 지옥 갔을까요? 믿음의 방패가 날아가 버려서 마귀의 화살을 막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기름으로 발라지지 않은 것처럼 구원이 상실되었는데 이것을 다윗이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알수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성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지옥에 간 것에 대해 애도한 것입니다. 사울의 믿음의 방패가 날아가 버렸기 때문에 쉽게 구원 상실이 되어 지옥에 간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선지자였습니다. 왕 겸 선지자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천국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잘 몰라서 그런 겁니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당신 지옥 간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성도들이 오면 여러분은 천국 갑니다.’라고 말하지 지옥 갑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간음죄가 있어도 천국 갈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신앙의 베이직이 성경이 아닙니다. 전통이 베이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해 잘 알았는데 믿음의 방패가 날아가서 기름부음 받지 않은 자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22절입니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요나단의 활이 뒤로 돌아가지 않고 마귀와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칼도 헛되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사울도 블레셋과 싸웠다는 것을 다윗이 안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울 역시 열심히 블레셋과 싸웠습니다. 요나단은 구원상실을 안 당하기 위해서 열심히 싸워서 승리하고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사울은요? 사울도 열심히 싸웠는데 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확신이나 노력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원수인 마귀를 이겨야 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사울도 잘 싸웠습니다. 하지만 마귀에게 이긴 요나단과 달리 사울은 졌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싸움에서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언제까지? 끝까지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마귀가 우리를 끌고 갑니다. 계속 싸워야 하고, 계속 울어야 합니다. 계속 회개해야 합니다. 사울이 포기했다면 모를까 싸웠는데 결국은 졌기 때문에 지옥 간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살아있어서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아름다운 자들이었습니다. 둘 다 은혜 가운데 있었는데 나중에 한 명은 구원이 상실된 것입니다. 요나단은 사울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단명하게 된 것입니다. 요나단이 사울과 같이 있지 않았다면 빨리 안 죽었을 것입니다. 요나단도 왕의 급수에 속하는데 이러한 왕 급수만 간신히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못 버팁니다. 사울에게 있지 말고 다윗에게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사울 곁에 있었기에 일찍 죽게 되었고 간신히 구원 받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독수리는 하늘의 맹수입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강하냐? 시시한 새들이 아니라 영적으로 강한 자들입니다. 사자보다 강합니다. 천국은 웬만해서는 못 갑니다. 마귀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서 살아났는데 사자는 영적으로 구원 상실의 영을 상징합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서 사자 입에서, 즉 구원 상실에서 건짐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도 구원 상실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웬만한 힘으로는 어려운 것입니다.

 

24절입니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과거에 그들은 영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칠 정도로 훌륭한 자들이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과거 용사들이었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많이 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옷과 금 노리개는 영적으로 좋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큰 은혜를 끼친 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다윗이 영적으로 본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끼쳤어도 말년에 지옥에 가기 쉽습니다. 목사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천국 가기가 오히려 더 힘듭니다.

 

25절입니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용사들이 마귀와의 전쟁에서 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쟁에서 졌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이기게 하셨습니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앞으로는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설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전투에서 지면 끝난 겁니다. 항상 이겨야 합니다. 매일매일의 싸움에서 패했을 때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내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패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작은 패배라고 해서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가만 두면 안 됩니다. 그 작은 패배가 나중에 큰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군이 10만명이 있는데 작은 패배로 100명이 죽었습니다. 100명이 죽었네? 하고 내일 전쟁에 나갔는데 또 1000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다 죽게 됩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매일 승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도 승리가 있는 것이지 에이. 뭐 질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싸움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졌다고 낙심해서 자멸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싸움에서 이겨서 승리의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들 수련회 때 보면 가출한 청소년들에게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힘 내.’하고 대부분 위로를 해 줍니다. 물론 이런 위로가 필요는 하겠지만 절대 따끔한 충고나 조언은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보면 나중에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게 됩니다. 이것은 반드시 잘못된 죄이므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지적하거나 따끔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상한 문화가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20세기 직전부터 기독교 내에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죄를 나는 원래 그런가 보다.’라고 정당화 시킵니다. 절대 천국 못 갑니다.

 

예전에 청소년 사역으로 성공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식입니다. 청소년들의 비행을 인정해 줍니다. ‘원래 그 시절에는 다 그런거야. 괜찮아.’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니 당연히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다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사조가 1980년대부터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청소년들이 죄를 가볍게 여기고 합리화시킵니다. 이런 사조에 영향을 받아 성장한 이들이 지금의 교회 지도자들이 된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죄를 받아주고 위로해 줍니다. 그러니 다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냥 쉽게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겨야 갈 수 있습니다. 죄와 싸워서 이겨야만 갈 수 있습니다. 음란과 싸워서 이겨야 하고, 미혹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싸우지 않고 그런 죄들을 받아들이면 끝난 겁니다.

26절입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I am distressed for thee’ 형인지 동생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영어로는 내가 당신 때문에 스트레스로 골치가 아픕니다.’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여자의 사랑보다 더하여 내게 놀랍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요나단이 천국 갔는데 다윗을 사랑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윗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요나단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단명으로 간신히 천국에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왜 아버지인 사울 곁에 있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징계를 받게 됩니다.

 

27절입니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지금 두 용사가 엎드러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전쟁에 쓰는 무기가 멸망 당했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싸울 때 우리의 무기인 구원의 투구와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와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인 말씀과 평화의 복음의 신을 가지고 싸웁니다. 마귀와 싸우는 우리의 무기들인데 이것들이 하나씩 없어진다면 결국에는 구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믿음의 방패가 없으면 공격을 막을 수 없어 죽게 됩니다. 사울 역시 방패가 버려지게 되어 결국 싸움에서 져서 끝나 버립니다.

 

이 영적인 무기들이 오늘날 어디에 있을까요? 영적인 무장이 되면 영적으로 얼굴이나 몸이 건강하게 보이고 옷을 잘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장이 안 되면 바지가 없거나, 윗도리 옷이 없거나, 옷들이 더럽습니다. 환상 가운데도 팔 다리가 없거나 의족을 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영적으로 무기들이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우리는 영력을 상징하는 이빨이 튼튼해야 하고 눈과 귀가 커야 합니다. 영적 파워가 커야 합니다. 영적인 무기들을 잘 갖추고 있어야 마귀에게 이길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무기들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채워서 강해져야 합니다.

 

천국은 누가 이 무기들을 잘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완전무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로마 군인들이 완전무장한 것처럼 무기들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가 계속 달려 오는데 이 싸움에서 계속 이겨야 합니다. 천국은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공격 앞에 신앙이 쉽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다른 것이 힘든 게 아니라 이 신앙이 힘듭니다. 싸워서 이기려고 늘 애 쓰지만 잘 무너지기 때문에 힘든 겁니다. 무너지고 또 무너지면서 자꾸 싸워도 무너집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기게 됩니다. 어떻게 할 때? 무기들을 가지고 계속 싸울 때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 받지는 않을까 늘 두려워 했습니다. 바울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게임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늘 두려움 가운데 하루하루 싸움을 해 나가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naver.com

댓글

  1. 마귀와의 싸움에서 계속 이기기 위해 영적 무기를 갖춥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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