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8장 [구원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은 천국가는 자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8

[구원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은 천국가는 자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회중이 아니라 성도의 모임입니다. 실로는 에브라임 지파가 있는 곳으로 최초의 성막이 있던 장소입니다. 회막보다는 성막이 맞는 표현입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정복해서 성막을 세운 것입니다.

 

2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

파라

7이라는 숫자는 구원의 수이고, 12는 거듭난 백성의 수를 의미하며 3은 영생의 숫자입니다. 성경에서 숫자를 이해할 때 3은 하나님의 숫자이며 영생의 수를 의미합니다.

 

3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일곱 지파가 아직까지 점령하러 가지 않은 겁니다. 구원은 반드시 영적 싸움을 싸워서 통과해야 하는데 싸움을 하지 않고 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해도 내 안의 마귀를 반드시 쫓아내야 합니다.

 

4절입니다.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정탐할 때는 2명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3명씩 선정했는데 3은 영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변화산에 3명의 제자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구원도 어려운데 영생은 더 어렵습니다. 3명이 나머지 땅을 그려서 오라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되 유다는 남쪽 자기 지역에 있고 요셉의 족속은 북쪽에 있는 그들의 지역에 있으니

 

6절입니다.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 곳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제비뽑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방법입니다.

 

7절입니다.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하더라

레위 사람은 회당이나 각 마을에서 예배 및 제사장 직분을 하는데 그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된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그 땅을 그리러 가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것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라 하니

여호수아가 지도를 그려 오라고 명령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나 자신을 그려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음란이라는 무서운 적과 물질의 탐욕이라는 적과 개인적인 정서적인, 성격적인, 영적인 문제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얻었다 해도 쉽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도해해서 각자의 문제들과 어두움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남들의 문제를 연구하기보다 나 자신의 문제를 늘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유지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어두움은 우리 삶 가운데 전반적으로 역사합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늘 나의 문제를 도해하며 그려봐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고쳐 주신다? 아닙니다. 결국은 내가 구원을 얻고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지만 결국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국은 단순히 믿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가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100%, 1000% 확신합니다. 천국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수한 싸움과 인내와 애씀과 투쟁으로 가는 것이지 그냥 못 갑니다.

 

세상 공부나 직장에서도 결과를 얻기 위해서 엄청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영생이 달린 문제인데도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대충 제압해서 정상이 되어 교회에 다녀도 나중에 다시 귀신 때문에 교회를 나오고 신앙생활을 그만 둡니다. 왜냐하면 안에 있는 귀신과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귀신을 어느 정도 남겨 두십니다. 싸우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 내 안에 모습들을 잘 그려서 도해를 해야 합니다. 결국 게으른 자들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악하고 게으른 자들은 길이 없습니다. 내 문제를 잘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9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려서 실로 진영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당시에는 책이 없었으니까 양피지에 그려서 왔겠죠.

 

10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드디어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한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왜 베냐민 자손의 경계를 유다와 요셉 자손의 가운데에 두었을까요? 베냐민은 북이스라엘과 싸울 때 둘로 나눠집니다. 그래서 상당수가 유다에 포함되는데 나중에 남유다에 메인이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 지파가 됩니다. 베냐민은 신앙이 좋은 유다와 신앙이 안 좋은 북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겁니다. 베냐민 자체는 믿음이 없는데 유다처럼 구원이 강한 사람과 붙은 겁니다. 우리가 구원이 약하다해도 강한 사람에게 붙어 있으면 됩니다. 모든 세계에는 쎈 자가 있는데 그 쎈 자에게 붙어 있으면 됩니다. 내가 어디에 붙어 있느냐가 영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원은 나의 영향 절반과 남의 영향 절반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은 나중에 유다와 레위 지파와 함께 구원을 잃지 않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12절입니다.

그들의 북방 경계는 요단에서부터 여리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서쪽 산지를 넘어서 또 올라가서 벧아웬 황무지에 이르며

 

13절입니다.

또 그 경계가 거기서부터 루스로 나아가서 루스 남쪽에 이르나니 루스는 곧 벧엘이며 또 그 경계가 아다롯 앗달로 내려가서 아래 벧호론 남쪽 산 곁으로 지나고

 

14절입니다.

벧호론 앞 남쪽 산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여 유다 자손의 성읍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에 이르러 끝이 되나니 이는 서쪽 경계며

 

15절입니다.

남쪽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부터 서쪽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 근원에 이르고

 

16절입니다.

르바임 골짜기 북쪽 힌놈의 아들 골짜기 앞에 있는 산 끝으로 내려가고 또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여부스 남쪽에 이르러 엔 로겔로 내려가고

 

17절입니다.

또 북쪽으로 접어들어 엔 세메스로 나아가서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글릴롯으로 나아가서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까지 내려가고

 

18절입니다.

북으로 아라바 맞은편을 지나 아라바로 내려가고

 

19절입니다.

또 북으로 벧 호글라 곁을 지나서 요단 남쪽 끝에 있는 염해의 북쪽 해만이 그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는 남쪽 경계며

 

20절입니다.

동쪽 경계는 요단이니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의 사방 경계였더라

21절입니다.

베냐민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들은 여리고와 벧 호글라와 에멕 그시스와

 

22절입니다.

벧 아라바와 스마라임과 벧엘과

 

23절입니다.

아윔과 바라와 오브라와

 

24절입니다.

그발 암모니와 오브니와 게바이니 열두 성읍과 또 그 마을들이며

 

25절입니다.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26절입니다.

미스베와 그비라와 모사와

 

27절입니다.

레겜과 이르브엘과 다랄라와

 

28절입니다.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열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었더라

예루살렘은 원래 베냐민 땅인데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이 누구 땅이죠? 예루살렘 성은 나중에 이스라엘 수도가 되고 성전이 세워집니다. 나중에 다윗이 여부스를 몰아내고 정복합니다. 그 전에는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함께 살았고 여부스를 종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도 수동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은혜를 강조하며 너무나 편하게 쉬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땅을 분배해 주어도 못 얻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정복하고 내가 얻는 것이고 나의 신앙도 내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미래도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뿐입니다. 이 도움조차도 내가 구해서 얻는 겁니다. 거지도 집에 가만히 있으면 돈을 못 벌고 나가서 구걸을 해야 돈을 버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영적인 은사나 은혜도 적극적으로 나가야 체질이 바뀌게 되고 또 많이 배울 수 있게 됩니다. 기도가 안 될 때 포기하기보다 억지로 더 소리내서 기도하고 눈물이 안 날 때는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노력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안 되는 것을 볼 때 도저히 안 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노력할 때 우리의 영이 발전하게 됩니다.

 

분명히 이 땅은 베냐민 땅으로 여호수아가 할당해 준 땅인데 베냐민이 그냥 냅둔 겁니다. 언제까지? 다윗이 정복할 때까지입니다. 다윗이 정복 이후 자신의 집을 짓고, 나중에는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지어지고 예루살렘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중심지로 만든 것입니다. 내가 있는 곳을 전 지구에서 가장 신앙이 좋은 신앙의 중심지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으면 많은 것이 바뀌게 됩니다. 여부스 땅을 왜 다른 사람은 정복을 못하고 다윗만이 정복을 했을까요? 삼면이 골짜기라서 정복하기 불가능한 땅이었지만 다윗은 정복한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이러한 열정과 야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온 열정과 야망이 가득한데 영적인 야망은 없습니다. 가장 큰 영적 야망을 가진 사람을 못 따라갑니다. 우리의 영적인 능력이 어둠을 이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에서 계속 열정을 가지고 싸우면 세상적으로는 약해진다 할지라도 신앙 하나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 게으른 자는 할당받은 땅도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능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윗과 같은, 사무엘 선지자와 같은 능력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했더니 적군들의 눈이 멀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일들은 단순히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적이 왜 안 일어날까요? 우리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문화가 인터넷에 휴대폰에 TV와 유튜브까지 즐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영적으로 게을러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역사하십니다. 단지 우리의 믿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능력을 키워서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쫓아내고 외적으로도 능력들이 나타나야만 다윗처럼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영적으로 최고 좋은 상태를 만들어서 항상 도전하고 성취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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