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장 [바른 예배는 애통과 회개, 교만의 무너짐입니다]
사사기 8장
[바른 예배는 애통과 회개, 교만의 무너짐입니다]
1절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사실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늦게 불렀죠. 늦게 참여 했지만 미디안 장수인 오렙과 스엡을 죽인 일에 쓰임 받습니다. 진작에 불렀으면 더 좋았을텐데 늦게 부른 것에 대해 다투는 것이 아니라 원어로는 꾸짖은 것입니다.
2절입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끝에 동참한 에브라임이 처음에 참여했던 아비에셀, 즉 므낫세와 납달리와 아셀 지파가 했던 것보다 더 낫다고 위로하는 겁니다.
3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에브라임이 기드온의 능력을 보고 영적인 욕심을 가져서 화를 낸 건데 기드온이 위로를 하니까 그들의 화가 풀린 겁니다.
4절입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5절입니다.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요단 서편 사람들은 참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데 성공했지만 동편 사람들은 아직 미디안 왕인 세바와 살문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숙곳 사람들에게 떡덩이를 주라고 하는데 거절합니다. 요단 동편 사람들은 처음부터 영적으로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요단 동편을 구원 상실의 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미 미디안 귀신들에게 점령을 당해서 기드온과 하나가 안 되는 겁니다.
6절입니다.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지금 기드온을 비웃는 겁니다. 하나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7절입니다.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절입니다.
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브누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잘못된 예배를 참된 예배로 알고 있기 때문에 기드온과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세바와 살문나를 처리하고 돌아올 때 브누엘 망대를 헐어 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어둠이 강한 사람들은 설득을 해도 안 통합니다. 어둠을 처리해야만 알아 듣게 됩니다. 세바와 살문나를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말을 해도 하나가 안 되고 따르지 않습니다.
10절입니다.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두 왕 아래 만 오천 명만 남은 겁니다.
11절입니다.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12절입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기드온이 서편을 정복하고 이어서 동편을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잘못된 예배로 인도하는 어둠의 온 진영을 격파한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절입니다.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15절입니다.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절입니다.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들가시와 찔레는 애통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편 사람들은 예배 때 울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 때 울지 않고 애통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귀신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애통이 안 터져. 회개가 안 돼.’라고 말합니다. 다 귀신 때문입니다. 안에 세바와 살문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귀신은 예배를 방해합니다. 애통하지 않으면 천국 못 갑니다. 회개 없는 기도, 회개 없는 찬양, 회개 없는 말씀 이것들을 다 귀신 때문입니다. 미디안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애통이 없습니다. 은사나 계시는 많습니다. 하지만 애통이 없습니다.
기드온은 숙곳 사람들에게 애통을 통해 참 예배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징벌’은 오번역입니다. ‘taught'인데 가르친 것입니다.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내면의 어둠움을 몰아내고 애통과 회개의 세계로 이끌어서 참된 예배를 가르친 것입니다. 기드온은 참된 예배 혁명의 수장입니다. 서편에 이어 동편도 애통과 회개로 참된 예배를 전파합니다. 드디어 숙곳 사람들도 애통이 시작될 것입니다. 귀신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애통을 못하는 것은 영적인 큰 병입니다. 눈물이 안 난다? 병입니다. 귀신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기도를 많이 하다보면 눈물이 나기 시작합니다. 어둠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왜 미혹될까요? 바른 예배에서 나오는 싫은 소리, 찌르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고 좋은 말만 듣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미혹되는 이유가 다음절에 나옵니다.
17절입니다.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망대는 교만을 의미합니다. 참 예배를 못 드리고 미혹되는 이유가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못 받아들입니다. 교만은 나를 무너뜨리는데 교만이란 ‘내가 누군데’라는 마음입니다. 돈 있는 사람, 잘 생긴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은 교만합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지옥가기 쉬운 겁니다. 애통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울지도 않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 앞에서 안 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 안 엎드릴 수가 없습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도 고개를 세우는 겁니다.
기드온이 이 망대를 드디어 헐어 버립니다. 이들의 예배가 미혹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 참 예배로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가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예배의 문제입니다. 예배를 잘 못 드리면 지옥 가는데 그 마음 가운데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누가 인도를 하더라도 겸손하면 큰 은혜를 받는데 교만하면 절대 은혜가 안 옵니다. 기드온이 일으킨 예배 혁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의 칼인데 바로 말씀과 회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다볼은 다볼산을 의미하는데 이 다볼산에서 세바와 살문나가 죽인 자들이 바로 기드온과 같이 구원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귀신들이 구원 받은 자들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예배의 미혹, 잘못된 예배는 우리를 구원상실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배처가 엄청 중요한 것입니다. ‘그냥 가까운 교회로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은 상당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세상에서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서 먼 곳까지 이사를 가는데 하물며 예배처가 얼마나 중요한데 아무 교회나 나간다? 정신 나간 생각입니다. 내 영이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는데 예배처를 마음대로 정하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예배의 잘못은 구원상실을 줍니다. 기드온과 같이 왕자들의 모습같은 구원 받은 영혼들도 잘못된 예배로 인해 다 구원 상실을 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잘못된 예배로 인도해서 참된 신자들을 다 죽인 겁니다. 만약 그들을 살렸다면 기드온도 두 왕을 살려 주었을텐데 죽였기 때문에 당연히 너희도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아마도 어려서 두려운 것도 있고 또 칼이 무거워서 빼지 못했을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오번역입니다. ‘For as the man is so is his strength’인데 ‘그 사람의 힘 자체가 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말입니다. 아들이 어려서 못 죽이니까 기드온 네가 한번 죽여 보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영력이 있었지만 아들은 영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배가 잘못되는 이유는 바로 영력없는 사람들이 예배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영력이 없기 때문에 예배가 미혹되고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영력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영권만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오번역인데 ‘기드온이 우상 장식을 가졌네’하고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take away' 떼어서 버린 겁니다.
초승달 장식은 우상인데 현재 이슬람 상징에 초승달 모양이 있습니다. 왜 초승달 모양을 낙타 목에 걸고 다녔을까요?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의 넷째 아들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배가 미혹되어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우상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형상을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진짜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이라고 느낄만한 것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처음에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뭔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이것이 우상인 것을 알고 떼어서 버린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 뭔가를 형상으로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만들어 놓고 보고자 합니다. 심지어 목사의 옷이나 유품을 걸어놓고 바라봅니다. 하나님,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십니다. 다른 방법으로 만나야 하는데 자꾸 예수님 그림이나 형상을 만들어서 보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잘못된 예배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신데 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 만들어서 신앙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사람들이 기드온과 기드온의 후손들에게 예배 인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기드온이 대답하는데 내가 하는 것이 아니로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예배를 인도해 가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4절입니다.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금 귀고리’는 물론 귀신들의 귀고리인데 참된 예배를 못 드리는 이유는 귀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배의 핵심은 들을 귀인데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면 영적으로 목걸이나 팔찌 등 장신구가 생깁니다. 잘못 드리면 다시 사라집니다. 들을 귀는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왜 미혹이 되느냐?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과 음성이 귀에 안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막는 것이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은 하나님을 떠난 마귀에게 예배를 잘 드립니다. 영적인 귀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신앙의 단계는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귀가 열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일단 귀가 열리게 되면 참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25절입니다.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26절입니다.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금 천칠백 세겔’은 17kg 분량의 금을 모은 겁니다. 영적으로 좋아지면 영적인 좋은 옷들과 장신구들을 얻게 됩니다. 드디어 이들이 바른 예배로 돌아와서 영적인 좋은 귀걸이와 팔찌 등의 장신구를 얻은 것입니다.
27절입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는 옷으로 원래 천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 옷을 금으로 만든 겁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바른 말씀과 애통의 회개로 참된 예배를 인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문제가 생깁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마귀에게 접목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에봇 옷을 하나님으로 여긴 겁니다. 예배 자체나 예배 인도자를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데 에봇 자체를 섬기는 것이 바로 음란입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는데도 예배 인도자의 우상화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금 에봇을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둔 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된 것입니다.
28절입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드디어 40년간 영적으로 바른 예배를 드리며 평온한 기간이 된 것입니다. 혼자서 바른 예배를 드리다가 납달리, 므낫세, 에셀, 아셀, 에브라임 뿐만 아니라 동편 지역도 다 바른 예배로 인도한 것입니다.
29절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30절입니다.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기드온이 음란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은 천국 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이 천국 가는 이유가 뭘까요? 숫자는 상징인데 70명의 아들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기드온이 바른 예배를 통해 70명의 구원을 만들어 낸다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가 됩니다.
31절입니다.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아내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첩이 문제입니다. 첩을 통한 것은 구원 상실입니다. 영적인 대적자를 생산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문제가 되는데 나중에 기드온과 반대되는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불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기드온이 정말 모든 것을 다 잘 해 놓았는데 에봇의 우상화가 문제가 됩니다. 참된 예배자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지는 못하고 문제를 남겨 놓을 수 있습니다.
32절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드디어 기드온이 나이가 들어 죽게 됩니다.
33절입니다.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바알들’은 바알림을 말하는데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알림과 바알브릿을 신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요? 예전의 ‘바알’은 아니지만 또다른 형태의 잘못된 예배인 바알림과 바알브릿이 나오게 된 겁니다.
34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35절입니다.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기드온이 살아 있을 때는 기드온을 따라 다 바른 예배를 드리고 참된 신앙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자 그 자녀들을 무시하고 예배를 맡기지 않은 겁니다. 이것은 꼭 세습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바르게 선 자를 인도자로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세워진 자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봐서 훌륭해 보이지 않으니까 영적으로 미혹된 사람들을 따라가게 됩니다. 기드온과 달리 아들들은 영력이 대단해 보이지 않자 드디어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기드온처럼 바른 예배를 인도하는 자 밑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미혹되지 않고 바른 말씀을 받고 애통의 회개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에 바른 말씀과 애통의 기도가 없다면 그 예배는 가짜입니다. 예배는 반드시 바른 가르침과 애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만 빠져도 가짜입니다. 둘 다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이 두 가지 위에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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