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1장 [원귀신을 이겨야 구원이 상실되지 않는데, 약속의 이행과 나로 상처입은 자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줌으로 내 안의 원귀신은 제압됩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구약전장 강해

 

사무엘하 21

[원귀신을 이겨야 구원이 상실되지 않는데, 약속의 이행과 나로 상처입은 자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줌으로 내 안의 원귀신은 제압됩니다]

 

 

1절입니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3년의 기근은 sign입니다. 한 번은 일어날 수 있지만 연속해서 기근이 3번일 때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뭔가를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간구는 오번역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sign이기 때문에 ‘enquired’ 하나님께 묻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먼저 말씀하시지 않고 자연계나 인간계에 역사하셔서 행동으로 미리 보여 주십니다.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다윗 자신의 죄도 아니고 사울과 그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기근이 왔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억울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바로잡으려는 마음이 있으셨기 때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2절입니다.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 기브온 사람이 멀리서 온 것처럼 속여서 평화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공격하지 못하고 그냥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사울 왕 때 그들을 죽이게 됩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3년의 기근의 이유를 하나님께 묻자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묻습니다. 다윗의 영성이 대단합니다. 다윗이 저지른 죄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윗에게 다 넘기신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이 3년의 기근 동안에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기근의 이유를 감동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사울의 죄 때문에 이 기근이 왔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4절입니다.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기브온 사람들이 어떻게 보상하면 되느냐는 다윗의 말에 금과 은, 즉 돈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을 죽여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마음이 아픈 문제입니다. 그 고통을 다윗이 몰라 줬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의 죄는 아니지만 왕으로서 책무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의 고통은 돈이나 어떤 사람의 죽음으로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한 사람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이 학살, 즉 쑥대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자손 일곱 사람원어는 그 한 사람의 아들인데, 즉 사울의 아들들 가운데 7명을 달라는 것입니다. 사울의 고을인 기브아에서 사울의 아들 7명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이 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엄청 아프게 했는데 이는 범죄입니다. 여호수아 때 해치지 않겠다는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므비보셋을 제외하고 내 줍니다.

 

8절입니다.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매랍은 사울의 큰 딸인데 아까워서 다윗에게는 둘째 미갈을 줍니다.

 

9절입니다.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7명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깁니다.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원래 유월절 때부터 오순절 전까지 보리를 벱니다. 그리고 오순절 때는 밀을 베기 시작합니다. 보리와 밀은 다릅니다. 보리는 거듭남을 상징합니다. 오병이어는 보리떡입니다. 칠병다어는 보리가 아니라 밀떡입니다. 다른 겁니다. 보리 추수는 거듭났다는 것이고 밀 추수는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들 7명은 거듭났지만 실족 당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왜 실족 되었을까요?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기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되면 실족되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과 계약을 맺었는데 그 계약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임기응변이나 거짓 계약을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범죄가 됩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각서를 썼으면 꼭 지켜야 합니다. 각서를 남발하면 안 됩니다. 구두 약속이나 서명으로 한 내용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거듭난 다음에 실족되는 이유가 이런 약속을 안 지킨 죄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이 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후대들에게 어려움이 온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아야는 두 아들을 잃은 엄마입니다. 갑자기 어느날 두 아들이 죽게 된 겁니다. 얼마나 황당할까요? 하늘이 노랗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사 지내지 않고 바위 위에 시체를 두고 비가 올 때까지 지킨 겁니다. 죽은 이유가 범죄 때문인데 이 범죄는 마귀들이 와서 일으킨 것입니다. 모든 범죄는 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귀의 역사는 불행만이 아닙니다. 모든 죄는 마귀, 즉 새와 짐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다 실족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악령이 붙어 있으면 다 죄를 짓게 됩니다. 지금 죽은 이 두 아들도 어둠, 즉 마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사울이 죄의 원흉이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11절입니다.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12절입니다.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그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원래 사울과 요나단이 길르앗 전투에서 죽게 됩니다. 그 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 갑니다. 그 다음에 에셀 나무를 심고 7일간 금식합니다. 길르앗 야베스와 베냐민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사기 마지막에는 길르앗 야베스 외에는 총회에 속한 자가 없이 다 구원 상실이 됩니다. 베냐민도 막판에 다 죽게 됩니다. 레위인이 자기 여자를 베냐민 지파에서 죽임 당한 후 시체를 12조각 내서 온 이스라엘에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는 남자 600명만 남기고 다 죽게 됩니다. 이 때 400명의 여자를 길르앗 야베스에게서 얻게 됩니다. 이렇게 길르앗 야베스와 베냐민은 깊은 관계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야베스는 구원상실의 대명사입니다. 이들이 사울을 가져와서 추모합니다. 사울을 구원 받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에셀 나무는 영생의 나무인데 사울과 요나단을 영생을 얻은 자로 여기고 묻은 겁니다. 그리고 추모합니다. 이것이 큰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신 겁니다. 이건 다윗이 한 게 아니라 그들이 한 것이지만 책임을 다윗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뼈를 가져간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14절입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의 묘에 묻게 합니다. 왜냐? 동방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지옥가는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이 굉장히 안 좋은 겁니다.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은 안 좋은 겁니다. 이게 엄청 위험한 겁니다. 어둠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천국 간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묘 자체는 죄가 안 되지만 추모는 우상숭배 죄가 됩니다. 하나님을 분노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것을 알고 뼈를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가정에서 추도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추도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 대해 과거가 떠오를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가정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살아생전 행적을 이야기하며 예배드리는 것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구원을 잃어버린 자들이 행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아니라 자꾸 죽은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집트 가면 무덤이 많은데 무덤을 중시합니다. 다 이방문화입니다.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리며 효도해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 추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잃어버린 자들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15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왕년에 다윗은 블레셋을 물리치는데 선수였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지쳐 쓰러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영력의 감소입니다. 우리의 영력은 지속되지 않고 감소합니다. 나이들면 누구든지 영력이 떨어집니다. 만약 다윗이 이때 바로 죽었다면 지옥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원귀신인데 우리 안에 늘 존재합니다. 이 원귀신을 이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블레셋은 나가지 않고 항상 내 안에 존재합니다. 죽을 때 나갑니다.

 

16절입니다.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다윗이 이제 큰 놈을 만났는데 이 때 져서 죽었다면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17절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내가 영력이 떨어졌을 때 제자가, 내 군사가 나를 도와줘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 영력이 센 사람을 배치를 많이 해 놓아야 내가 나중에 이길 수 있게 됩니다. 때로 우리 안에 어둠이 역사할 때가 있는데 주변에 영력이 강한 사람이 있으면 어둠이 잠잠해지게 됩니다. 우리의 어둠이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항상 아비새 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이 다윗이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다윗이 이제는 이빨이 빠져서 힘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이들어 힘이 약해졌을 때 남들의 도움을 얻어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70세 이상만 되어도 영력이 약해져서 예전에 은혜와 영적인 힘이 없어지고 약해집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영력을 많이 키워 놓아야 합니다. 또 영력이 강한 분을 주변에 두고 영력이 강한 사람이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철칙입니다. 그렇다면 영력을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요? 영력의 기준이 뭘까요? 오직 계시입니다. 계시로 알 수 있습니다.

 

18절입니다.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이제 다시 블레셋 거인족 아들 삽과 싸워서 이기게 됩니다. 이들은 블레셋 즉, 원귀신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사울과 그 집안들은 이기지 못했는데 이들은 이겼습니다. 원귀신이 어떤 존재일까요? 내 감정을 동요시킵니다. 그래서 감정이 많이 상하면 원귀신이 센 겁니다. 슬프거나 외롭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원귀신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이 원귀신은 또다른 나입니다. 사람이 괜히 미워진다? 싫어진다? 또다른 자아인 원귀신입니다.

 

원귀신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아가 강한 것입니다. 이 원귀신이 늘 매일같이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문제는 이 원귀신이 구원을 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드디어 원귀신이 나를 점령하게 됩니다. 보편적인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마귀야.’하며 싸워야지 그냥 묻혀서 지내면 안 됩니다. 자아가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어떤 형질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원귀신이 인격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주시는 평강과 은혜의 삶이 아니라 아주 괴팍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괜히 우울감을 주고 만족감이 없게 됩니다.

 

이 원귀신과의 싸움이 어렵습니다. 귀신은 사고가 부정적이고 항상 매사가 꼬여 있습니다. 받은 내용에 대한 감사가 없고 늘 불평합니다. 이것을 이겨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원귀신을 이기면 싸울 일도 없고 다툴일도 없고 삶이 힘들지가 않습니다. 만족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귀신을 이기지 못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원귀신을 이긴 다윗은 사울을 용서합니다.

 

이 원귀신을 이기려면 도를 닦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많이 해서 원귀신을 죽이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삶이 괴롭지도 우울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습니다. 내면이 탄탄해 집니다. 이것이 다윗이 얻어낸 신앙입니다.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원귀신입니다. 원귀신이 늘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는데 이를 감지하고 싸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누가 잘 싸우느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사고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자꾸 부정하고 싸워 이겨야 합니다. 내면의 나 자신을 분리해서 보고 나쁜 원귀신과 싸워서 나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19절입니다.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엘하난이 엄청난 거인, 강한 귀신을 죽입니다. 원귀신은 골리앗 같이 외부에 있는 적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적입니다. 원귀신은 여러마리가 있는데 3마리, 2마리, 1마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마리는 꼭 1마리가 아니라 규모, 즉 사이즈 수준을 말합니다. 그래서 1마리는 1마리가 아닌 여러마리가 함께 붙어 있기도 하는데 다 정도가 있습니다. 1마리면 염려하는 정도의 수준, 2마리면 미워하는 정도의 수준, 3마리면 증오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우리가 원귀신을 이겨야 하는데 자신과의 싸움을 많이 할수록 유리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설교하거나 인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어둠이 나를 괴롭히는데 다른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역사는 항상 역사하며 힘이 대단합니다. 이 어둠과 싸우는데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20절입니다.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손가락 발가락이 6개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그냥 변이인데 염색체로 가능한 것입니다.

 

21절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지금 4명의 가드 거인족, 즉 원귀신이 나오는데 그들을 죽일 정도로 힘이 된 것입니다. 원귀신은 안 나갑니다. 원귀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숨어 있습니다. 오늘 이겼다 해도 내일 또 역사합니다. 마귀는 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일 또 싸웁니다. 마귀는 틈만 나면 역사합니다. 큰 대승을 거둬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다해도 그 순간의 승리로 여겨야지 다리 쭉 뻗고 자면 그 순간 또 당합니다. 우리가 원귀신을 소장하고 있는 이상 죽을 때까지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다른 귀신들을 다 쫓아내도 원귀신 때문에 구원이 힘든 겁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늘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옛날 신앙인들이 이것 때문에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철야를 하면 귀신이 역사를 덜 하게 됩니다. 쉬면 원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에 잠을 안 자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철야는 천국가는 길이 됩니다. 대부분 어두움은 우리가 relex 할 때 역사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끈을 놓고 있을 때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끈을 놓치 않고 늘 긴장해야 합니다.

 

22절입니다.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다윗이 거인을 이기지 못했는데 왜 다윗의 손에 넘어졌다고 기록되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부하들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키우면 나중에 나를 도와주게 됩니다. 주변에 강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귀신들이 잘 역사하지 않습니다. 귀신이 역사할 때 사랑으로 마크하면 상대방 귀신이 제압됩니다. 주변에 어두움들이 다 없어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 귀신이 역사하면 내 영이 약하다는 증거입니다.

 

귀신이 역사할 때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귀신 역사는 사랑이 방법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과 부하들이 이렇게 귀신을 이겼다는 말씀입니다. 귀신이 역사할 때 용납하고 봐주고 용서해야지 비난하거나 정죄하면 안 됩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는 편하기 때문에 정죄하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이 때 정죄하면 안 되고 자꾸 받아주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이럴 때 귀신이 역사하지 않는데 정죄하면 귀신이 더 역사합니다. 원귀신과 싸울 때 우리의 교만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귀신이 역사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면 안 됩니다. 당연한 겁니다. 이 역사를 수용하고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원귀신이 역사할 때 내 치부로 받아들이면 점점 줄어들어서 귀신들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지속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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