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9장 [피해에 따른 보복심리는 남을 심판하는 죄에 속하므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지 않게 하는 마음의 죄입니다]

 


사무엘상 29

[피해에 따른 보복심리는 남을 심판하는 죄에 속하므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지 않게 하는 마음의 죄입니다]

 

1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사울이 지난번에 분명히 수넴에 있었는데 다시 아벡으로 내려간 것 같습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이스르엘은 이스라엘 골짜기 상류에 있습니다.

 

2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3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방백들은 ‘princes’인데 지휘관들을 의미합니다. 이 지휘관들이 뒤따라 오는 다윗 일행을 보고 아기스 왕에게 말합니다. 한 때 적군의 장수였던 다윗이 뒤따라오니 뒤가 불안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14개월을 블레셋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현재는 마귀 편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핍박할 때 용서하고 참고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1, 2, 3, 8년 오래 되다보니 더 이상 참지 못한 것입니다. 이 때 다윗 안에 있던 원귀신이 드디어 다윗을 점령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게 될 때 이것이 오래 되다보면 보복심리가 작용하게 됩니다. 마음 속에서 상처와 분노가 생깁니다. 이 마음의 죄 때문에 천국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요? . 성경에서는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대라고 말씀합니다. 속옷을 원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나에게 고통을 줄 때 마음속에 열 받아 하는데 이것은 귀신이 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고통을 당할 때 원인이 남편이라고 진단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성경에서는 열 받은 사람이 문제가 있다라고 진단합니다. 고통과 핍박이 있을 때 맞서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억울하게 어려움을 당할 때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증오하면 안 됩니다. 저주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다윗이 이것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적군에 편에 서서 동족과의 싸움에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피해를 입게 될 때 정당방위라고 하면서 대응하고 같이 싸울 때가 있는데 이것은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지옥가는 사유가 되는 것입니다. 중요합니다. 왜 우리가 불신자와 함께 하면 안 될까요? 우리가 왜 악한 자를 멀리 해야 할까요? 악한 자는 그 안에 악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반드시 피해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 안에서도 악이 생겨 공격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귀신끼리 붙게 됩니다. 다윗이 이 부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다행이 나중에 회복해서 건짐 받았지만 이 상태로라면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울의 계속되는 공격앞에 블레셋으로 도망을 가서 피해 있다가 전쟁에서 뒷부분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잘못된 겁니다. 우리가 피해를 입을 때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모든 면에서 내가 손해보는 것입니다.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니 천국은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사귄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십계명과 산상수훈에 의해 회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인간과 생각 자체가 다릅니다. 내가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핍박과 공격이 왔을 때 같이 맞서지 않는 수준까지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선인이고 의로운데 저 악인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봐야 하나? 봐야 합니다. 마음의 앙갚음이나 속으로 끓는 감정들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될 수 있습니다. 저도 한참 산상수훈을 많이 묵상하고 있었을 때 억울하게 당하고 피해를 보게 되었지만 전혀 상대가 밉지 않고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4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내면의 세계가 지금 보여지는 것인데 원귀신 블레셋을 따라 가다가 드디어 따라가지 않을 명분을 얻게 되는 장면입니다. 다윗의 내면에서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하고 원귀신을 따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을 알려주는 상황입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사울과 다윗은 과거에 원귀신인 블레셋과 싸워 크게 이긴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윗이 원귀신에게 져서 원귀신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6절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아기스는 다윗을 좋아하는데 다섯 수령들이 다윗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다윗이 이제 사울과 싸우지 않고 해방된 것입니다. 내면적으로는 사울을 미워하는 미움을 버리고 완전한 아가페로 돌아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이 내면의 죄를 순간 지었었는데 이로 인해 다음 장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내면으로 죄를 지을 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면을 보십니다. 다윗이 실제 사울에게 복수한 적도 없고 저주한 적도 없고 욕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편에서 사울과 싸우려고 나간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충동질하는 귀신과 싸우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서 나를 죄로 인도하는 귀신과 싸워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과 싸울 위기에서 다시 돌아 오는 장면입니다.

 

8절입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의 마음이 억울한 생각에 다시 갈등이 생깁니다. 본전 생각이 난 겁니다. 내면에 원귀신이 항상 붙어서 구원을 잃게 하려고 분노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합니다.

 

9절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우리가 신령해 지면 죄가 안 지어지는 단계가 옵니다. 영이 좋으면 죄가 안 지어집니다. 영이 좋을 때 술집이나 유흥업소에 가지 않습니다. 죄를 지을 수 없게 됩니다. 내 안에서 귀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순간 있었다 할지라도 중죄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소죄에 그친 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새벽곧 밝은 날이 오게 됩니다. 인생이 어두운 이유는 마음에 분노 때문입니다. 피해를 받았다는 분노 때문에 마음이 어두운 것입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을 생각하면 열 받아합니다. 생활에서 사소한 일로 열 받고 치고 받습니다. 여기서 극복하고 이겨야 합니다. 보복하지 않고 열받아 하지 않으며 그냥 손해보고 살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어두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누군가가 내 돈 3000만원을 훔쳐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밝을 수 있을까요? 열 받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밝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재수가 없었나보다 하고 잊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어둡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릴 때는 누구나 다 밝습니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면 짜증을 많이 냅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무도 못 건듭니다. 학교 졸업하면 마음에 안 든다고 가출합니다. 원귀신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제어가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해도 통제가 안 되는 이유는 억울한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분하고 억울해서 나만 당할 수 없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복수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자기부인이 필요합니다. 희한하게도 이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3000만원을 누가 훔쳐 갔는데 열 받지 않고 다 털고 편하게 마음 먹으면 결과적으로 내가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둡게 사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해 늘 묵상하고, 내가 당한 피해를 늘 묵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피해를 준 자를 자꾸 사해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용서해 줄 때 마음이 편해지고 날이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평안함은 신앙에서 얻어지는 산물입니다. 평안함을 얻고자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보니 평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는 항상 우리 마음에 어두움을 주고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반대로 의는 우리를 편하게 만듭니다.

 

11절입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어둠에서 완전히 떠나 해방을 얻은 것입니다. 마음에 앙금이 사라지고 편해집니다. 우리는 몇 날, 몇 일, 몇 시에 네가 그랬지?’ 하며 앙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다 사라져야 합니다. 마음에서 다 지워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울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날 때도 있는데 악인과 있으면 이런 앙금들이 생기기 때문에 웬만하면 피해야 합니다. 아니면 상대방 때문에 내가 지옥갈 수 있습니다.

 

무고한 고통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다윗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보통 사람들은 이기기 힘듭니다. 죽이려고 나를 쫓아오는 사람을 피해 잠도 못 자고 수년간을 도망만 다녀야 하는데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당연히 생길 것입니다. 악인들이 내게 행한 것 때문에 내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즉 죄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불신자들을 늘 경계하고 사람을 잘 선택해서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가해자를 덜 만나서 밝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 교회선택, 결혼 배우자 선택, 학교 선택입니다. 다 인간관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다윗이 드디어 어둠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처음에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했던 이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는데 다음 장에 나옵니다. 다윗이 아무런 욕도 안 하고, 저주도 안 하고 복수한 것도 아닌데 다음장에서 심판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은연중에라도 마음가운데 받은 피해에 대해서 품어서는 안 됩니다. 다 소화시키고 사해주고 용서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편이 바람피고, 술마시고, 때리고 하는데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아내가 더 죄를 얻게 되고 피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안에서 악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당연하지만 이 때 오히려 내가 용서 모드로 가는 것입니다. 산상수훈 말씀처럼 다 받아 주게 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매번 행패를 부립니다. 그 때 당시 우물의 가격은 1억 정도 합니다. 가치는 지금의 집 한 채와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그냥 우물을 포기하고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또 팝니다. 블레셋이 또 찾아 옵니다. 하지만 또 놓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결국 블레셋에서 벗어 납니다. 이삭이 열 받아서 맞서 싸워야 마땅한데 그냥 포기합니다. 세 번째 우물부터는 블레셋이 안 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그 시험을 이길 때까지 계속 주시는데 이기면 더 이상 시험이 안 옵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포기하고 버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을 통과하게 되면 더 이상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이 사라집니다. 이런 통과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느부갓네살 왕도 77년의 과정을 통과했을 때 천국이 가능했습니다. 원귀신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붙어서 순종을 방해해서 천국에 못 이르도록 합니다. 천국은 오직 순종입니다. 십계명과 산상수훈과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가 프란체스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내용 중에 온전히 믿음으로가 있는데 원문에는 나 자신을 온전히 바침으로입니다. 나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질 때 구원이 가능합니다. 이삭이 우물을 그냥 포기하고 줍니다. 이것이 내 자아가 없는 삶입니다. 온전히 바쳐지는 삶입니다. 바친다는 것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산상수훈에서 네가 원수를 사랑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까지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원수 사랑이 될 때까지 계속 원수를 허락한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훈련이 통과되면 원수들의 모든 가해를 다 받아주고 다윗처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 때 영생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계속해서 우리 삶 가운데 찾아오는 것이 환란입니다. 이 때 우리가 받는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넘겨야 합니다. 절대로 우리는 미움, 증오, 분냄, 열 받음, 원수맺음, 앙갚음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것에서 온전히 벗어나서 다시 아가페로 들어오게 되면 이런 힘든 일을 겪는다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사울과 달리 다윗처럼 드디어 영생으로 들어가는 사무엘하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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