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7장 [핍박에 대한 두려움은 거짓말을 하게 하며 결국 구원상실에까지 이르는 영적인 통로가 됩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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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7
[핍박에 대한 두려움은 거짓말을 하게 하며 결국 구원상실에까지 이르는 영적인 통로가 됩니다]
 
1절입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사무엘 상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상은 여러 가지 압박 속에서 구원을 얻는 과정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다윗이 구원을 잃어버릴 위기에서 어떻게 구원을 유지하고 얻는지가 나옵니다. 사무엘 상은 구원유지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오늘 27장부터 28, 29장이 그 하이라이트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구원상실이 얼마나 쉬운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을 보면 드디어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에게 시험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평생을 이렇게 쫓겨 다녀야 하는가?’하며 회의감이 들면서 사울을 피해 유대를 떠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정말 마음이 아픈 장면이고, 동시에 구원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핍박을 받아도 유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나은데 핍박을 피해서 떠납니다. 왜 유대를 떠나 갔을까요? 그 이유가 이제 나옵니다.
 
2절입니다.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는데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원귀신의 지배하에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나안 유대 땅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데 다윗이 지금 원귀신의 지배 아래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 납니다. 오늘 사무엘 상 27장이 구원에서 가장 멀어지는 내용입니다.
 
3절입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왜 아기스로 갔느냐? 내 가족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염려와 사랑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마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나만 힘들면 괜찮은데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을 노리고 마귀가 공격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실제로 다윗이 유대를 떠나자 드디어 순교의 위험이 사라지고 더 이상 목숨이 위태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일까요? 복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복을 이해할 때 일이 잘 되고 잘 풀리면 복, 그렇지 않으면 복이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유대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5절입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지방 성읍 한 가운데 한 곳을오번역인데 성읍(city)이 아니라 ‘town’ 일반 마을입니다. 처음에는 다윗이 사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귀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6절입니다.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시글락은 원래는 유대 땅인데 블레셋이 점령한 땅입니다. 하지만 통치는 아기스가 하고 있습니다. 이 통치가 중요한데 나를 원귀신이 통치하느냐, 예수님이 통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원귀신은 우리를 늘 두려움으로 인도하는데 핍박 앞에 두려워하면 지는 것입니다. 환상에서 토끼는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마귀는 먼저는 핍박을 준 다음에 두려운 마음을 심어 줍니다. 이 때 두려움이 구원 상실을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두려움은 우리에게 굉장히 큰 원수입니다. 이 두려움을 마귀가 주는데 이 때 넘어가면 안 됩니다.
 
7절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10년 중에 마지막 14개월인데 이 때는 다윗의 최악의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블레셋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다윗이 이것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구원상실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것을 이기고 극복했기 때문에 이 내용이 나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편이나 아내의 말 한 마디에도 두려워 떠는데 생명의 위협의 두려움 앞에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8절입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은 수르를 의미하는데 수르와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역들을 다윗이 공격한 것입니다. 지금 이 공격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영적으로 안 좋은 상황인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많이 안 좋아진 것입니다. 얼마나 안 좋아졌는지가 나옵니다.
 
9절입니다.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다윗이 탈취한 것들을 아기스에게 바치게 됩니다. 모든 탈취한 제물은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사유가 됩니다. 지금 다윗이 어둠과 가까운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오번역인데 ‘Whither have ye made a road to day?’입니다. ‘너희가 오늘은 어디서 길을 내었느냐?’라고 묻습니다. 다윗이 애굽이라는 불신세계로 가는 길을 하나 만든 것입니다. 하늘의 상급을 쌓은 것이 아니라 블레셋이라는 원귀신 안에 들어가 두려움 때문에 지옥의 길을 만든 것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이제 다윗의 본격적인 거짓말이 나옵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다 지역을 쳤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모든 두려움이 우리에게 거짓을 줍니다. 만약 다윗이 사실대로 말했다면 같은 편을 쳤다고 아기스가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적군인 유다를 쳤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다윗이 하나님 편이 안 된 것입니다.
 
다윗이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가족 때문입니다. 가족이 고통 당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비극중에 비극이죠. 아브라함도 애굽에 가서 부인을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물론 진짜 거짓말은 아니고 준거짓말입니다. 다윗도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애매하게 유다 남쪽 지역을 둘러대며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다윗도 구사일생으로 벗어나서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천국의 길은 굉장히 좁고 어렵습니다.
 
11절입니다.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다윗이 남녀를 다 죽인 이유는 나중에 거짓이 드러날 싹을 아예 제거한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다윗이 술수를 쓴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마귀인 아기스가 다윗이 영원히 자신의 부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핍박과 두려움 때문에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기스를 따르게 됩니다. 구원 상실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아직 버림받지는 않았지만 실제 구원 상실의 시점에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변화가 있습니다. 구원은 가변적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구원은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끝까지 구원을 이루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두려움 가운데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구원은 따 놓은 것이 아니라 늘 위협을 받습니다. 과정과정 가운데 상실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유지하는 데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습니다. 육신도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하루 3끼 밥을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늘 애써야 합니다. 우리의 영도 가만히 있으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합니다. 계속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영적인 내용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구원이 쉽다, 천국이 쉽다라고 말합니다. 알면 알수록 구원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도 잘 버텼으면 좋았을텐데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애굽가는 길을 하나 더 열어줍니다. 블레셋 왕인 아기스에게 신용을 얻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과는 잘 안 어울립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다윗에게 일어난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두려움이 없을까요? 두려움이 있는데 원귀신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두려움 때문에 보험을 들고, 돈을 모아서 쌓아 두며, 노후를 대비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다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것들인데 사실 이 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이 영적인 핍박으로 올 때도 있습니다. 핍박으로 인해 사자 먹이로 주어졌을 때 누가 안 무섭겠습니까? 실제 로마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자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성도들이 다 두려움 없이 신앙을 지켰을까요? 대부분두려워서 신앙을 못 지킵니다. 그 두려움들이 지금도 존재합니다. 누구에게? 참 교회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단이나 미혹된 교회들은 사단이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지옥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참 교회에 사단이 방해하기 위해서 주는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왜 공격할까요?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에 빠지게 해서 구원에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참 신자를 구원에서 떨어지게 하는 사자가 존재합니다. 그 유명한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을 쫓아오는 사자가 나오죠.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자 목에 줄이 매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안 건져 주셔도 죽음을 감당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지는 겁니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사자 옆에서 편하게 있었습니다. 내가 담대하면 사자가 잠잠합니다. 반대로 내가 두려워하면 사자가 강해집니다. 내가 사자에게 잡혀 먹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구원의 신앙입니다.
 
아쉬운 것은 다니엘 시대에 5만명의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다니엘은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고 딱 3명만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구원이 어려운 것입니다. 핍박과 어려움 앞에 다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이 마귀의 불같은 시험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요구하실 때가 반드시 한 번은 옵니다. 그 때 생명까지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은 이런 게 잘 안 될까요? 진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진짜에게는 생명을 거는 위험이 옵니다. 우리를 구원에서 이탈시키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오늘 말씀의 다윗처럼 애굽가는 길을 열어주는 데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하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갈 때 결국 승리하게 되는데 그 승리를 통해서 나의 구원 뿐만 아니라 남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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