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4장 [정당방어라해도 그에 따른 미움죄나 보복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24

 

[정당방어라해도 그에 따른 미움죄나 보복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1절입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엔게디 광야는 유대 지역의 광야인데 구원 안에서 존재하는 광야를 의미합니다. 구원을 받아도 핍박이라는 광야가 있고, 환란이라는 광야가 있습니다.

 

2절입니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3절입니다.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길 가 양의 우리에양이 있다는 것은 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엔게디 광야에는 물이 있습니다. 지금 사울이 큰 것을 보러 굴에 들어갔는데 아마도 양들이 평소에 똥을 많이 싼 곳일 확률이 큽니다. 아니면 그 많은 굴들 중에 그 곳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은 아마도 그곳이 더러우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설마 왕인데 그 더러운 곳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큰 것을 보러 들어온 것입니다.

 

일반 굴이라면 인기척을 분명히 느꼈을 것입니다. 다윗과 사람들의 인기척을 사울이 분명히 들었을텐데 왜 못 느꼈을까요? 이것은 실제 엔게디 굴에 존재하는 것인데 바로 폭포입니다. 굴이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인기척을 느낄 수 있는데 폭포 소리 때문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실제 사진에서도 굴 근처에 폭포가 있습니다.

 

4절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다윗 주변에 부하들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오늘이 그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이 칼을 들고 사울에게 가는데 처음에는 진짜 죽일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사울을 죽인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칼을 가지고 갔는데 사울의 목이나 등을 찌른 것이 아니라 겉옷 자락만 가만히 베고 나옵니다. 조용한 굴이라면 사울이 다 알아차렸을텐데 폭포 소리 때문에 사울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절입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지금 말하는데 예전에 하나님께 약속받은 것과는 다르게 말합니다. 분명히 원수를 마음대로 하라고 약속 받았는데 지금 마음이 바뀐 겁니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을 치는 것은 금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헷갈립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이 충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기름부은 자를 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또 하나님의 음성은 쳐도 된다고 하십니다. 이 때 다윗은 말씀을 선택합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논제가 나옵니다. 기름부은 자에 대한 개념과 적용에 대해서 알려 주십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기름부은 자입니다. 그래서 기름부은 자를 치지 말라는 말씀에 의해 사울을 해지지 않겠다고 다윗에 부하들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누구를 말할까요? 예수님 및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120명을 말합니다. 마가 다락방은 구원만이 아니라 기름 부음 받은 장소입니다. 성령이 넘치게 부어지는데 바로 복음전파 때문입니다. 복음전파 때문에 기름이 부어지고 왕으로 인이 쳐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기름부음과 인침이 존재하는데 마찬가지로 복음사역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름부음 받은자를 해하지 말라는 말씀을 다윗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7절입니다.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다윗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기름부음 받은 사울을 해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 12사도와 120명의 제자들이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기로 결정된 사람들이고,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참교회의 인도자로, 전파자로 세움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름부음 받은 자는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나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왕권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절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절입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기름부음 받은 자들에게 대한 태도 때문입니다. 죽여도 죄가 안 되지만 기름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세움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아직 폐위가 안 된 이상 죽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곱 등잔대가 있는데 이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증거자로 두 감람나무를 세우셨습니다. 예배 인도자로 제사장을 세우셨고 복음 전파자로 감람나무, 즉 왕을 세우셨습니다. 왕은 인침을 받은 자인데 복음전파자로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세움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인침을 받은 자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를 세우기는 엄청 힘든 것입니다. 교회는 돈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인침 받은 왕, 즉 성령의 기름을 받은 왕이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 부음이 없으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보여주며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진짜 왕권을 가진 사람은 원수가 밉지 않습니다. 싫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미워하지 않았고 나중에 사울이 죽었을 때 애도합니다. 마음에 미움이 없습니다. 평안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윗과 같은 선왕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는 원수를 보복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보복은 ‘avenge’인데 ‘revenge’는 내가 보복하는 것이라면 ‘avenge’는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이 대신 복수를 해 주는 것입니다. 조금 뜻이 다릅니다. ‘어벤져스(avengers)’는 능력있는 자가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나는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서 왕에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악과 악인은 분리될 수 없고 악은 악인에게서 나옵니다. 반대로 다윗같은 선인에게서 선이 나옵니다. 입술과 행동에서 나옵니다. 다윗은 선이기 때문에 왕을 죽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절입니다.

그런즉 여호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선과 악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선인지 악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심판이 알려 줍니다. 노아 때도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심판을 통해 알게 됩니다.

 

16절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사울의 말이 바뀝니다. ‘내 아들 다윗아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왕인데 크게 웁니다. 이 때 속으면 안 됩니다. 일시적인 은혜일 뿐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사울이 후회하고 돌아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에 또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악이라는 것은 행동입니다. 행동이 안 바뀌면 아직 안 된 겁니다. 눈물로 죄를 사함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결정과 행동이 하나님 뜻대로 옮겨져야 합니다. 회개는 물론 많이 울어서 죄사함을 받아야 하지만 그것으로는 안 되고 행동이 하나님 뜻과 일치되는 행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울도 일시적으로 눈물도 흘리고 후회하지만 결국 행동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예배를 통해서 변화가 이루어지지만 행동의 변화가 될 때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를 하는데 왜 행동의 변화가 없을까요? 지속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죄를 깨닫고 금식이라도 하면서 온전히 변화가 되어야 하는데 금세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은혜를 받았을 때 그 은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야가 합니다. 은혜가 깊이 임했을 때 그것을 잘 유지해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가 임할 때 그것을 자꾸 붙잡아야 합니다. 저는 차에서 기도를 오랜 기간 동안 한 적이 있는데 차를 탈 때 깊은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은혜를 계속 붙잡았습니다. 은혜가 임할 때 멈추면 안 되고 우리가 바뀔 때까지 계속 은혜를 붙잡아야 합니다.

 

 

17절입니다.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절입니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절입니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사울이 지금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와서 다윗이 한 것에 대해 칭찬하고 있습니다.

 

20절입니다.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사울이 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실 진정성이 없는 말입니다. 사울에게 아직까지 거짓된 마음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절입니다.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사울이 진심으로 다윗이 왕이 되기를 바랬다면 지금 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줄게.’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는 내 자리를 물려주지 않을거야.’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는데 내가 죽을 때까지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구원도 받기 힘들 뿐만 아니라 받았다 해도 금방 상실이 되어 버립니다. 신앙은 의지적으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때가 되면, 시간 지나면 신앙이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안 좋아집니다. 신앙은 지,정 뿐만 아니라 의가 필요합니다. 나의 결단과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사울이 왜 이런 부탁을 다윗에게 했을까요? 사울은 지금 자신이 고집을 피우고 왕의 자리를 유지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 버려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대적하면 3대가 멸해집니다. 물론 영적인 멸망입니다. 큰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자신의 왕권과 가문에 대해서 불안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원래 사울은 자신이 천국 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불안한 마음을 비친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다윗은 참 지혜롭게 행동하는데 사울에게 맹세하고 나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안전한 요새로 올라갑니다. 악에서 돌아서는 것이 한 번에 안 되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지켜봐야 합니다. 이 때 만약 다윗이 , 사울이 이제 변했구나.’하면서 긴장을 늦추었다면 위험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악의 요체는 인간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그래서 악인을 대할 때 순간 돌아섰다 해도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회개할 때까지 영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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