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2장 [구원받은 자는 예수님께 충성한 이유로 지옥가는 크리스찬에게 순교당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2

 

[구원받은 자는 예수님께 충성한 이유로 지옥가는 크리스찬에게 순교당할 수 있습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그 곳을 떠나그 곳은 가드입니다. ‘아둘람 굴은 유대 지역에 있습니다. 굴은 영적인 세계에서 계속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다윗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이 다윗에게 이르렀는데 함께 모인 이유는 아마도 가족이 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울의 핍박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2절입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지금 400명 정도 모였는데 모인 사람들은 한 마디로 쫄딱 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이 있는 굴로 몰려들 정도로 당시에 이스라엘 안에서 망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때 망한 자들이 붙게 됩니다. 우리가 망하지 않으면 구원 받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조금이라도 세상적으로 의지할 데가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간증들을 살펴보면 세상에서 망한 뒤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망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도망다니면서 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다윗이 제일 크게 망했기 때문에 리더가 된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성경에서 ‘4’라는 숫자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오죠. 지금 모여든 400명은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다윗의 시편에서 아둘람의 기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다윗의 영성이 이 때 엄청났을 것입니다. 400명에게 영적인 은혜가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은혜는 가르침이 아니라 존재입니다. 다윗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은혜가 전파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

를 청하나이다 하고

왜 모압 미스베로 갔을까요? 굴에서의 생활이 매우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다윗이 지금 육신의 생각이 발동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그냥 굴에서 더 기도생활을 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육적으로 인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망해도 항상 영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여기 모압은 이단입니다. 다윗도 알고 있었지만 육신의 안락을 위해 부모를 모압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4절입니다.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이제 다윗은 안전하게 되고 부모는 향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잘 된 것일까요? 잘 된 게 아닌 겁니다. ‘내가 어려웠는데 응답받았어. 이제 편하게 살 수 있어.’ 이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뜻은 우리의 형편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잘 된다고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반대로 못 되었다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육적인 흥망성쇠가 신앙의 본론이 아닙니다. 영의 흥망성쇠로 가야 하는데 다윗도 이 때 살짝 빗나간 것입니다. 모압 땅은 사울도 쫓아올 수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5절입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다윗에게는 갓과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물론 다윗이 더 높은 위치에 있지만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갓은 이름도 없는 무명의 선지자였지만 다윗은 그의 말에 순종합니다. 무시할 수도 있었는데 순종한 것입니다. 헤렛 수풀은 유대 지역으로 사울이 쫓아 올 수 있는 곳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편한 삶을 주시지 않고 늘 쫓겨다니는 생활을 하게 하셨을까요? 다윗에게는 쫓겨다니는 것이 그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운명을 피하기를 원하지만 그 쫓겨다니는 운명 속에서 다윗의 영성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당하게 되는 모든 어려움과 어둠에 대해서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과 그 사람을 세우셔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운명을 다 정하시고 인도하시는데 우리가 그 운명을 받아들일 때 지혜가 생깁니다. 다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다윗이 성군이 되고 천국가는 신앙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나게 될 때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싫어하면 안 됩니다. 기꺼이 맞이해야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윗이 쫓겨 다닐 때 우리가 볼 때는 불쌍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이 때 다윗이 엄청나게 신앙이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신령해집니다. 다윗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유대로 들어갑니다.

 

 

6절입니다.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사울이 다윗이 다시 나타났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단창을 들고칼은 미움을 의미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죽이기 위해 늘 칼을 들고 다녔습니다.

 

7절입니다.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사울이 지금 베냐민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사울이 지금 다윗이 매복하여 자신을 치려고 한다고 없는 말을 지어서 모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들은 신하들은 그대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에 선동되는 것인데 이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마귀는 가짜를 진짜처럼 믿게 합니다.

 

9절입니다.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사울의 신하 중에서 도엑이 말하고 나섭니다.

 

10절입니다.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11절입니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절입니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14절입니다.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절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말하는데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오번역인데 영어로는 ‘be it far from me’입니다. 그것이 내게서 멀다는 것입니다. 결코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히멜렉이 자신의 무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빵과 칼은 준 적이 있지만 어떻게 하라고 알려 주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let not the king impute’ impute‘~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뜻인데 쉽게 말하자면 생사람 잡지 마세요.’라는 뜻입니다.

 

16절입니다.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절입니다.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절입니다.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도엑 혼자서 에봇 입은 제사장, 즉 구원받은 자 85명을 다 죽입니다. 도엑은 지금 지옥에서 엄청 고통받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예수님을 도우면 마귀에게서 공격이 들어옵니다. 에봇 입은 제사장을 죽이라는 명령에 왕의 호위병도 죽이기를 꺼려하는데 도엑이 얼마나 악했으면 혼자서 다 죽입니다. 다 구원받은 자들인데 이 구원이라는 것은 애매한 고난과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사울과 도엑은 지옥가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사람들을 다 멸망시키고 죽이는 일을 합니다. 얼마나 악했으면 다윗만이 아니라 다윗을 도왔던 제사장과 가족과 소유물들을 다 쳐서 죽입니다. 어둠이 잡았을 때는 참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어둠은 자신이 하는 일을 옳다고 여깁니다.

 

20절입니다.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절입니다.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절입니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네 가족들이 죽은 것의 원인이 바로 나에게 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이 원인이 되어서 우리에게 환란과 핍박이 옵니다. 그래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에게 환란이 옵니다. 의로 인한 환란과 고난입니다. 고난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죄로 인한 고난이 있는데 징계라고 부릅니다. 채찍질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의로 인한 고난인데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채찍질은 내 죄에 따라 오는 징계인데 어떤 고난은 의 때문에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의에 의한 고난,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는 고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채찍과 십자가가 누구나 다 공존해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징계로서 매를 맞기도 하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둘 다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징계가 올 때 회개해야 하고 고난을 당할 때 담대해야 합니다.

 

환경에 대한 어려움은 죄로 인해서 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질병은 대부분 죄에서 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이 순교입니다. 때로는 예수님 때문에 빨리 죽을 수도 있지만 만약 그들이 그 때 죽지 않았다면 10년 후에는 타락했을지도 모릅니다. 일찍 죽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상은 상대로 쌓게 하시고 구원상실도 안 당하게 하시고 타락하기 전에 미리 데려가신 것입니다.

23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제부터 너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해. 그러면 앞으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안전할 거야(safeguard).’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동 가운데 다윗이 계시를 받아 말한 것입니다. 얼마나 신령했으면 도망을 다니는 처지인데도 하나님의 감동과 계시가 임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남의 미래를 함부로 말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당시에 얼마나 신령했냐면 가족이 몰살된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한 뒤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라는 감동을 전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의 공격이 있다 할지라도 빠져나갈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죽임을 당한 85명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정말 가까이 있었다면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일찍 순교한 것도 복이지만 더 은혜가 깊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에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수록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니엘입니다. 사자굴에서 죽어도 당연히 천국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자굴에 던져지면 죽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안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순교를 당하시겠습니까, 오래 쓰임을 받으시겠습니까? 이왕이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서 오래 쓰임을 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안에 있을 때 방만하지 말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죽임을 당해도 그것도 순교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더 오랫동안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많은 공격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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