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1장 [구원받은 사람은 광신자나 귀신들린자나 미친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21

[구원받은 사람은 광신자나 귀신들린자나 미친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1절입니다.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원래 성막이 실로에 있었는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손상되었다가 나중에 놉에 성막을 짓게 됩니다. 놉은 예루살렘에서 4Km 위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제사장이 왜 다윗이 왔을 때 떨었을까요? 지금 다윗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을 받아들이면 해를 당할까봐 떨었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다윗이 혼자서 도망 다니고 있으니 더욱 신뢰를 못한 것입니다.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사실 몇 명이 더 따라 왔는데 다윗이 자기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혼자 아히멜렉에게 간 것입니다.

 

2절입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다윗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도망 나온 것인데 왕이 일을 시켜서 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내가 온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소년들, 즉 부하들도 함께 왔는데 다른 곳에 있다고 거짓말 합니다. 다윗이 왜 아히멜렉에게 갔을까요? 먼저는 배가 고파서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 뜻을 물어보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 아니라 예전에도 몇 번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온 적이 있습니다.

 

3절입니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지금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 다윗의 부하들이 많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게는 4명 많게는 9명 정도 될 것입니다.

 

4절입니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원래 진설병은 제사장, 즉 구원받은 사람만 먹을 수 있습니다. 진설병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등잔대는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들어오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아가페하게 되고 이웃을 아가페하게 됩니다.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본성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가 예수님을 먹게 되는 것인데 그 위로부터 오는 영양분으로 인해 감사의 사람이 되고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내적인 능력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게 되면 우리에게 위로부터의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양분이 있습니다.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받게 되는데 지금 다윗과 부하들이 이 영적인 영양분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다윗이 3일동안 배회를 한 것입니다. 지금 기브아에서 나와서 바로 온 것이 아니라 3일동안 밖에서 잠을 잔 것입니다. 당연히 여자를 가까이 할 수 없죠. 물론 이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다윗이 구원을 받고 나서 받은 것이 집 없는 서러움입니다. 잘 곳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맘 편히 잤지만 쫓겨 다니면서부터는 잘 곳이 없어 빈들에서 자고 숨을 곳을 찾아 도망 다닙니다. 그런데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잠잘 곳도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다윗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라온 자들도 성결, 즉 깨끗하다고, 구원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신약에서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말에 예수님께서 오늘 나온 다윗을 예를 들어서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모형이고 부하들은 구원받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구원받게 되면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의 빵을 먹을 수 있고 이것이 영생의 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으면 위로부터 은혜가 계속해서 임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거듭날 때와 전혀 다릅니다. 구원 받으면 영적인 자양분들이 계속 부어집니다. 영생의 빵입니다. 그래서 이 빵을 먹는 자마다 죽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결된 자에 한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자는 영적으로 구원상실을 의미하는데 이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을 때 계속해서 영생의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제사장들은 매일 12개의 더운 빵을 떡상에 올리고 나중에 식은 빵을 먹은 후 다시 더운 빵을 새롭게 올려 놓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매일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절입니다.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이 때 마침 사울의 신하 에돔 사람 도엑이 있었습니다. 성도이지만 지옥가는 성도입니다. 다음날 이 도엑이 제사장 85명을 다 죽입니다. 제사장이 예배를 드릴 때 도엑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끔찍하게도 이 도엑이 제사장들을 다 죽이게 됩니다. 지옥가는 자들은 예배 인도자들을, 목회자들을 결국은 다 죽입니다. 지금까지 참교회들은 다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옥과 천국의 비율이 많게는 1000:1입니다. 천국의 메시지를 듣지 않고 목회자들을 다 무너뜨립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과 부하들은 천국가는 신앙인들인데 소수입니다.

 

도엑은 당시 많은 영혼들을 인도하는 목자장이요, 예배 인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제사장들을 다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옛날 일일까요?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지금도 항상 일어납니다. 구원을 받으면 항상 적들이 도사리게 됩니다. 그래서 죽일려고 기다립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죽일 마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마귀가 역사할 때 동화가 되어서 죽이게 됩니다.

 

8절입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절입니다.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구원받으면 영적인 칼이 주어집니다. 원귀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칼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성령충만함으로 무장할 때 성령의 검을 가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칼은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승리의 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구원받으면 지식적으로 알고 있던 말씀이 적용이 됩니다. 불교계에 있는 분들도 성경 구절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천국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구원은 말씀이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말씀이 충돌 되는 것 같고 헷갈립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으면 선명해지고 갈등이 사라지고 신앙생활이 쉬워집니다. 다윗이 이 말씀의 칼을 드디어 받게 됩니다.

 

10절입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다윗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도망을 가게 됩니다. 지금 다윗이 구원을 받고 은혜의 삶을 사는데 이 때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을 너무 화려하게 보면 안 됩니다. 이러한 고난의 세계가 구원의 세계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도 곤고와 적신과 위험과 칼이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환경적으로는 사실 어려움이 엄청 많습니다. 야곱도 가나안에 들어가서 구원 받은 후, 엄청 고생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세계를 이해할 때 이런 영적인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얻어서 구원받으면 평안함을 얻게 됩니다. 영적으로 진설병이 평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경은 도망자의 신세입니다. 얼마나 도망 갈 곳이 없었으면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왕이 있는 곳으로 갔을까요? 영혼의 평안함과 은혜는 있지만 환경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구원의 세계는 아주 어려운 세계로 환경이 어렵습니다. 다윗이 지금 블레셋으로 도망갔는데 사람들로부터 더 오해를 받았을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단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핍박을 당합니다. 사람도 적고 겉으로 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구원의 세계는 아주 어렵습니다. 환경적으로 어려움과 고난이 따릅니다.

 

11절입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옛날에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고, 적군의 왕인데 망명을 왔다고 하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쉽게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당연히 죽임당할 수 있으니 다윗이 두려워 합니다.

 

13절입니다.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죽음의 위험 앞에 다윗이 미친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구원 안에 있을 때 때로는 미친 척도 필요합니다. 다윗은 천국 가는 사람의 모형입니다. 핍박으로 갈 데가 없어서 가지 못할 곳에 가서 미친 척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무엘 상을 볼 때 다윗이 참 고생 많이 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구원 받은 사람의 실제, 리얼입니다. 구원은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따라옵니다. 도엑 같은 악인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구원의 세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핍박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참교회를 다니고 구원 신앙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있지만 환경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단에게 이단 판정을 받아 애매한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울과 도엑이 이단이면서 다윗을 이단이라고 핍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모와 형제들이 귀신 들렸다고 이단이라고 핍박당합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늘 예수님을 시험하고 이단으로 몰고 잡고자 늘 모의합니다. 다윗은 잠도 못 자고 도망다니고 심지어 미친척까지 해야 하는 고난을 당합니다.

 

14절입니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다윗의 미친 척이 성공합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이 미쳤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구원의 세계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 광신, 즉 미쳤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것이 성경에 기록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과거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도 구원 안에 있을 때 다윗처럼 이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때 우리는 다윗을 떠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 나만 이런 고난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은 거울과도 같습니다. 성경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다윗도, 예수님도, 12사도들도 다 이런 일을 경험했구나.’라며 위로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당할 때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반대로 신앙생활 하면서 진짜 무조건적인 광신자들도 있습니다. 미혹이나 이단 교회에 빠져 자신이 다닌 교회를 참교회로 알고 광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미친, 광신자들이 있는데 이 진짜와 가짜가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아무리 참교회에서 진리를 선포해도 교회가 작다고, 별볼일 없다고 무시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성경을 통해 이미 알려 주셨습니다. 그 답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물론 죽은 다음에 심판이 있지만 이 땅에서도 어느정도 보여 주십니다. 이 심판이 진짜와 가짜를 판단해 주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악당은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심판받아 망하게 되고, 주인공은 처음에는 어려움을 당하다가 나중에는 결국은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판을 지금 당장 안 하시고 나중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심판은 정확합니다. 죽기 전에는 모르기 때문에 분별을 못 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부하들과 다윗의 부하들이 누가 심판을 받게 될지 지금은 모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다윗이 쫓겨 다니니까 참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심판을 받기 전에는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쉽게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나타내 보이시지 않으시고 숨겨 놓으십니다. 가짜와 진짜가 똑같아 보이고 구별이 안 됩니다. 나중에 심판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지 그 전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다윗의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혹은 미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구원의 세계는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환경적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그것을 능가할 만한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나중에 심판의 때에 심판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 구원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심판 아래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다윗의 연기가 통해서 아기스 왕이 다윗을 미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는 연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길은 매일매일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 전과는 다르게 구원의 세계에서는 언제 어디서 마귀의 공격이 임할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다닐 때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고난과 고통을 알지 못하고 믿으면 잘 되는 줄로만 생각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얼마나 고난과 고통을 많이 당하는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미 앞서간 선조들이 걸어간 길이라는 것을 아시고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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