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0장 [천국이 확정된 사람(왕)에 대한 충성(생명바침)은 예수님에 대한 충성입니다]

 


사무엘상 20

[천국이 확정된 사람()에 대한 충성(생명바침)은 예수님에 대한 충성입니다]

 

1절입니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라마 나욧은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갔다가 사무엘의 영성으로 은혜를 받고 예언을 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얼마나 악한지 그렇게 은혜를 받아도 변화가 안 됩니다. 은혜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변화된 행동이 중요합니다. 받은 은혜를 간직하지 못하면 그 은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거듭남, 성령세례, 은사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행동의 변화가 없는, 마음의 변화가 없는 기독교는 가짜입니다. 사울은 예배도 잘 드리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변화가 안 됩니다. 이 사울을 피해서 다윗이 요나단에게 가서 말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친구인 요나단에게 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2절입니다.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지금 요나단이 사울의 악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가는 신앙인은 악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지옥가는 사람들은 천국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3절입니다.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이에 다윗이 요나단에게 네 아버지가 요나단 네가 슬퍼할까봐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거야.’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지금 다윗은 죽기 직전이라고 말해 줍니다.

 

4절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5절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6절입니다.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다윗이 초하루에 식사자리에 불참하는 이유를 베들레헴에 급히 가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합니다.

 

7절입니다.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이 때 사울의 반응이 긍정적이면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화를 내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지금 다윗이 말하는데 원어로는 요나단 너는 네 종인 나 다윗에게 언약을 가져왔기 때문에 너는 나에게 자비롭게 대해야 할 거야.’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너는 나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나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하는데 그럴 때 네가 천국에 들어갈 거야.’라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교만한 말처럼 들립니다.

다윗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다윗과 함께 해야만 천국 가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과 언약이 맺어지는 것은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됨은 천국과 지옥의 분기점이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가 된 마음입니다. 같이 천국가는 약속을 함께 받은 것입니다. 지금 천국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요나단은 다윗가 하나가 되어 언약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인자하게, 즉 자비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그런데 다윗에게 죄가 있다면 요나단이 자신을 죽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요나단도 같이 동참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관계에 있다면 나를 잘 대해주고, 그렇지않다면 나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요나단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천국과 지옥 중간 단계는 없습니다. 요나단도 아버지 편을 들던지 다윗편을 들던지 해야 합니다. 다윗을 선택하면 천국에 들어가지만 반대라면 다윗을 죽이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10절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

 

11절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12절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절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만약 사울이 다윗을 해치려고 하는데 요나단이 알려주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요나단이 다윗편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누군가의 편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정이 그 사람의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종교성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결정을 해야 할 때 꼭 어려움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함정과 위기들을 만들어 놓으십니다. 결코 쉽게 천국으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카운터파트와 만나게 하십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부모 등 반드시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하는지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나쁘게 보는데 이것은 창조주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누구랑 비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만드시고 우주의 주인이 되시는데 인간은 악해서 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14절입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절입니다.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절입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상대가 죽을 상황에 빠져 어려움 가운데 있는데 그 상대를 사랑하니 나도 죽을 위험에 빠지는 손해가 있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19절입니다.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에셀 바위에셀 나무가 있는데 원래 브엘세바 에셀 나무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영생을 선포하십니다. 에셀은 영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놀랍게도 사울이 이 에셀나무 아래에 장사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이 천국에 들어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울은 자타가 다 천국 들어간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요나단도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경을 보니까 사울이 지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사울 자신은 천국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중에 증거가 나옵니다.

 

20절입니다.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21절입니다.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요나단이 다윗에게 미리 화살로 약속을 정한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23절입니다.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24절입니다.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다윗이 3일간 들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이 고난이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게 되고 시편을 기록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문제로 얼마나 처절하게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5절입니다.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

 

26절입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부정하다는 것은 시체나 사체를 만질 때 부정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오늘 불참한 이유가 부정한 것을 만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이 자신은 부정하지 않고 깨끗하며 다윗이 부정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나쁘게 보고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27절입니다.

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

 

28절입니다.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29절입니다.

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30절입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사울이 화를 내며 요나단에게 욕을 퍼붓습니다.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오번역이고 이새의 아들을 택하여 너 자신의 파멸과 네 어머니의 벌거벗은 파멸이 되는 것을 내가 모르겠느냐입니다. 요나단이 사울 대신 다윗을 택한 것에 대해서 욕을 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분노는 당연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친구의 우정을 택한 것에 대해 사울이 분노한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단이 천국가는 이유입니다. 물론 요나단은 얼마 후에 죽게 됩니다. 사실 요나단은 이단 교회와 참교회의 중간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 사울은 천국 가는 신앙인으로 보였을 것이고, 다윗은 신생하는 세력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선택했고 아버지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31절입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다윗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요나단과 왕권이 서지 못할 것이라고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바른 선택을 합니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 영예,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을 버리고 참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요나단도 순간 아버지와 친구 다윗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32절입니다.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요나단이 아버지의 말에 위축될만한데 당당하게 다윗의 죄목을 말해 보라고 말합니다.

 

33절입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34절입니다.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요나단이 분노하여 식탁을 떠납니다. 분노한 이유는 아버지가 친구인 다윗을 욕되게 하였기 때문에 슬펐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다윗이 친구여서가 아니라 천국 가는 신앙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35절입니다.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36절입니다.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화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37절입니다.

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이르되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38절입니다.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39절입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40절입니다.

요나단이 그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라 하니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기 위해서 아이에게 무기를 주고 보냅니다.

 

41절입니다.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이제까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다윗과 요나단이 설마 했는데 이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안고 입 맞추며 함께 웁니다. 사실 다윗과 요나단은 예수님과 우리, 혹은 하나님의 사람과 우리를 의미합니다.하나님의 사람과 우정을 맺는데 얼마나 이 관계가 강한지 아버지를 뛰어넘고, 왕좌를 뛰어넘고 생명을 감수합니다.

 

42절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사울은 미혹된 거짓교회의 대명사이고, 다윗은 참교회의 대명사입니다. 요나단이 그 사이에 있다가 드디어 다윗에게로 왔는데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계시고, 또한 두 사람 자손들 사이에 계실 것이라고 맹세합니다. 실제로 나중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됩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사실 우정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신앙은 사실 하나님의 사람과 아닌 사람과의 갈등입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아닌 사람들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다 증명이 됩니다. 우리는 당장은 모르지만 나중에 알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감이 안 잡히지만 나중에 다 드러납니다.

 

성경은 하나의 스토리인데 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성경은 과학책도 아니고, 족보책도 아니며, 역사책도 아닌 오직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가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성경을 거울삼아 나를 고치는 것입니다. 목적이 뭐냐?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오히려 성경을 푸는 서기관들은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성경을 나에게 적용하지 않고 암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다 몰라도 됩니다. 암기 못해도 됩니다. 적용을 잘 하면 됩니다.

 

오늘날 성경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바로 성령의 음성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성령의 음성이 매일 새롭게 나오는데 거의 오차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미 기록된 내용인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이 없다면 기록된 성경도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오늘날에도 성경과 똑같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음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이 성령의 음성은 성경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실 때 지옥가는 사람들은 다 죄목이 있습니다. 그 죄목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실 때 심판하겠다.’라는 의지가 있으시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에게 이런 죄가 있어.’라고 하시면 지옥 사유는 아닌 것입니다. 말씀은 두 가지인데 심판의 말씀과 정죄의 말씀입니다. 그냥 죄를 정죄하시는 것은 상관없는데 그 죄로 인해 심판하겠다라고 하시면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신앙이 좋다고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신앙이 약하다고 다 지옥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중요합니다. 겉보기에 훌륭하다고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걸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옷을 대충 입고 지저분하게 다녀도 아무 지적 안 하시면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 그렇게 하고 다니지 마!’라고 하시면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이런 것 때문에 신앙이 어려운 것입니다.

 

나중에 지옥에 떨어졌을 때 깜짝 놀라게 됩니다. 목사라고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용서 못하시는 죄목들이 있는데 그것을 지적 받았을 때 회개가 안 되면 지옥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긴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일같이 눈물로 기도하며 나갑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요나단은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사람을 대합니다. 물론 일찍 죽었지만 자녀들에게 천국가는 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복받은 인생입니까? 이 땅에서 복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역사서와 선지서를 통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더 확실하게 배우게 됩니다. 성경 말씀은 옛날 말씀이 아니라 지금도 적용되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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