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1장 [왕은 구원상실을 주는 마귀를 물리쳐 타인의 구원을 유지시킵니다]

 



사무엘상 11

 

[왕은 구원상실을 주는 마귀를 물리쳐 타인의 구원을 유지시킵니다]

 

1절입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암몬은 갓 지파 동쪽에 있습니다. 암몬은 혼합주의의 상징입니다. 거듭난 다음에 천국까지 가지 못하는 이유가 혼합주의 때문입니다. 혼합주의는 이방종교가 아니더라도 성경적인 장점들을 혼합해서 만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성경 말씀에 은사나 계시가 추가되면서 기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입다가 암몬을 이기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어떻게 사울이 혼합주의를 이기느냐에 관한 말씀입니다.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소수가 남았는데 영적으로 소수만 살아남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요단 동편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땅인데 거듭남은 있습니다. 거듭남은 있는데 구원이 안 일어나는 땅이 동편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서편은 거듭나고 나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땅이고, 동편은 거듭났지만 구원이 아예 일어나지 못하는 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혼합주의인 암몬이 야베스에 올라와서 거듭나지도 못하도록 접근하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원어로는 모든 이스라엘 가운데 치욕을 안겨 주어야 내가 언약하겠다.’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눈을 빼는 것은 구원 상실을 의미합니다. 또 환상 가운데 눈이 하얗게 되는 것은 구원 상실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눈이 빠지는 것은 구원 상실을 의미합니다. 암몬이 내가 거듭난 너희들에게 구원 상실을 줄거야.’라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이것이 안 보입니다. 암몬이 나에게 구원상실을 목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안 보이지만 이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편은 복음전파 지역이 아니라 불신 지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내가 거듭나야만 누구를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듭나지도 못하면 남들을 거듭나게 못합니다. 요단 동편을 아예 불신화 시키려고 암몬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거듭남이 있는 교회가 있는데 그 거듭남조차 일어나지 못하도록 구원 상실로 마귀가 인도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장로들이 일주일을 유예시켜 달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온 지역에서 구원할 믿음이 있는 자들을 찾아보겠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지혜롭습니다. 내가 믿음이 약할 때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붙으면 살게 됩니다. 혼자 있다가는 그 믿음마저 떨어집니다. 다행이 이 때 야베스 장로들이 믿음 좋은 서편에 연락을 해 보겠다는 방책을 내게 되는데 이것이 승리의 요인이 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붙는 마음이 굉장히 지혜로운 것입니다.

 

4절입니다.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기브아는 예루살렘 위 라마 사이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땅입니다. 사울의 고향이고 사울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암몬이 지금 자신들을 공격해 오는 것도 아니고 먼 동편이 죽게 되었는데 백성들이 우는 겁니다. 믿음 좋은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운 것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이 울지 않으면 결국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혼합주의의 목적은 애통을 없애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울지 않을까요? 혼합주의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보고, 은사들을 보면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면서 울지를 않습니다. 천국 지옥도 갔다와서 간증들을 합니다. 하지만 울지를 않습니다. 혼합주의입니다. 입다가 두 달을 웁니다. 그리고 매년 딸을 위해서 3일간을 울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마귀의 목표는 우리가 안 울게 만드는 것인데 우리가 울지 않을 때 결국은 구원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울음은 구원에서 메인입니다. 마태복음은 계명 순종으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복음, 죄사함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울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울지 않는 것은 혼합주의의 결과입니다. 많은 종교적인 정보들의 결합은 우리를 혼합주의로 만듭니다. 못 울게 합니다. 울음이 안 터집니다. 또는 거듭나서 한 번 울었다해도 더 이상 울지 않게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마귀들은 사람들을 지옥 보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혼합주의는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신앙 가운데 혼합주의가 들어오면 진짜 메인에 신경을 못 쓰게 되어 결국 구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울음이 떠나지 않으면 구원이 안정적입니다. 하지만 울음이 떠나가면 구원 상실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울지 않는 이유는 마귀의 공격 때문입니다. 공격을 받으면 울음이 안 나옵니다. 회개가 안 터집니다. 애통이 안 됩니다. 애통은 거듭날 때만, 구원 받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 죄를 사함받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죄가 쌓여만 가는데 전도가 의미가 있을까요? 지식이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신앙의 메인인 죄사함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울지 않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옛날에는 새벽에 교회마다 울음소리가 넘쳐 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울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결과입니다.

 

지금 기브아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식을 듣고 소리 높여 웁니다. 우리가 어떻게 남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남들을 위해서 울면 됩니다. 중보는 다른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우는 것이 중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혼이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대신 울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이 울음이 신앙에서 메인인 것입니다. 내가 강퍅하다고 생각되면 항상 애통의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회개의 은혜를 주시라고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씻는 것처럼 매일 회개하며 울어야 합니다.

 

5절입니다.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세움을 받았는데 나라는 안 세우고 여전히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여기서 소는 원어에 복수로 되어 있는데 여러마리 소를 몰고 오는 것입니다. 소를 몰고 오다가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해 듣게 됩니다.

 

6절입니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우리가 울 때 영의 감동이 옵니다. 하나님의 감동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울음과 애통의 역사 위에 음성이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것은 마귀의 음성일 확률이 큽니다. 우리가 물두멍으로 사함받는 것이 없으면 임재가 없습니다. 지금 사울이 울음이라는 애통을 통해 영의 감동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노가 크게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내게 전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감동과 분노가 오게 됩니다.

 

7절입니다.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두 마리의 소를 한 멍에로 연결해서 해 놓은 것인데 그 소들을 잡아서 각을 뜨고, 즉 잘라서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보내어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이제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까 두 마리 소가 나왔는데 복선입니다. 한 마리는 사울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사무엘입니다. 왕과 제사장, 곧 예배 인도자가 있고 선지자가 있습니다. 왕은 구원을 확정받은 자를 의미하는데 지금 동편 사람들처럼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들을 다시 잡아주고 살려내는 역할을 하는 자가 왕입니다. 선지자는 불신자에게 믿음을 갖게 하고 거듭난 사람을 구원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구원이 확정된 왕은 예배 인도는 아니지만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예배 인도자와 역할이 다릅니다. 왕은 영혼들이 구원안에 오래 머물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왕입니다. 우리나라는 목사와 장로 제도가 있는데 목사는 바뀔 수 있지만 장로는 교회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습니다. 장로님들이 교회에 있어야만 성도들이 유지가 됩니다. 만약 목사와 장로가 같이 교회를 나오게 되면 교회가 붕괴가 되어 버립니다. 장로님들이 교회 건물들을 많이 세우고 영혼들을 관리하는 가운데 예배 인도자가 예배를 인도하면 교회가 안정이 됩니다. 그래서 두 마리 소가 비유로 나온 것입니다.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구도입니다. 그동안 선지자 구도에서 사람들이 왕을 원하자 구원이 확정된 왕을 세운 것입니다. 이제 선지자와 왕이 같이 일을 하게 됩니다.

 

8절입니다.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베섹은 므낫세 지역에 있는 도시입니다. 숫자를 세어보니 33만명입니다. 여호수아 때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인원이 60만명이었습니다. 사사기 때는 40만명이었는데 지금은 더 줄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 점점 감소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다가 다윗 때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몇 명이나 될까요? 다윗 때에는 유다 지파만 70만명입니다. 이스라엘이 50만명, 120만명이었습니다. 구원의 엄청난 증가입니다. 왕이 잘하면 구원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입니다. 다윗 때 최고치를 이루고 그 다음 점점 다시 줄어듭니다. 왕을 세우는 목적은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9절입니다.

무리가 와 있는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내일 해가 더울 때에신앙이 처음에는 뜨거웠다가 나중에는 미지근해져서 식게 됩니다. 재미가 없어집니다. 뜨거움을 주는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야베스 사람들에게 내일이면 너희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11절입니다.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새벽은 경인데 3시부터 6시 사이입니다. 이 때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갔는데 암몬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신앙에서 내가 감각이 없으면 금세 망하게 됩니다. 영이 잠을 자게 되면 적들이 쳐들어와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신앙은 절대 나 혼자서는 안 되고 옆에 신앙 좋은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아니라 같이 모이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교회에 가지 않고 나혼자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 신앙이 뜨거울 수 없습니다. 찬양과 말씀과 기도가 신앙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들이 뜨거워져야만 신앙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사울이 왕으로 세움 받은 뒤 사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향해 의협심이 발동해 그 반대파들을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늘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사울이 역시 의롭게 대처합니다. 오늘은 구원의 날이니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모든 백성이 길갈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게 됩니다. 화목제는 이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답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속상해 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마음을 풀어 주는 것이 화목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드리는 것이 화목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서운해 하실 때 그 부분을 풀어 드리는 제물이 화목제입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하나님의 세계는 기쁨의 세계입니다. 행복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영적 싸움을 합니다. 이 싸움은 눈에 안 보입니다. 암몬, 모압, 에돔 다 안 보입니다. 늘 싸우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이러한 싸움 앞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주시기 위해서 늘 역사하십니다. 지금도 구원이 확정된 왕을 세우셔서 영적인 공급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싸움들은 평생 계속되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암몬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 줍니다. 암몬은 애통을 방해하는 세력들입니다. 애통이 끊어졌다면 암몬이 역사했다는 것을 아시면 됩니다. 우리는 애통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며 믿음의 사람과 늘 함께 연합되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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