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9장 [겸손은 구원확정의 가장 큰 조건입니다]

 


사무엘상 9

 

[겸손은 구원확정의 가장 큰 조건입니다]

 

1절입니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를 먼저 소개하는데 유력한 사람은 오번역이고 ‘mighty man of power’

강력한 능력의 사람입니다. 기스라는 사람은 엄청나게 영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서 혈통이 아비엘, 스롤, 베고랏, 아비아로 천국 가는 혈통입니다. 사울이 등장하기까지는 윗대부터 신앙이 끝내주는 선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사울의 아버지는 능력이 강한 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아들이 단수로 쓰인 걸 보니 외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는 여러 아들 중 영적으로 뛰어난 한 아들을 소개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준수한 소년’ ‘a choice young man’ 뽑고 뽑는, 아주 뽑을 수 밖에 없는 청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goodly’ 잘 생긴 청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미남입니다. ‘his shoulders and upward he was higher than any of the people.’ 어깨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큽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영력이 좋을수록 잘 생기고 키도 큽니다. 지금 사울은 누구보다도 이스라엘에서 영력이 가장 최고인 상태입니다.

 

3절입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사울에게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고 시키는 장면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암나귀를 타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사울이 지금 영력도 세고 겸손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에브라임은 당시에 가장 영적인 장소인데 신앙적으로 왕성한 활동이 있는 곳입니다. 살리사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사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숩 땅은 예루살렘일 확률이 큽니다.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가 걱정하실 것이니 돌아가자고 사환에게 말합니다.

 

6절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사환이 사무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무엘에게 가보자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사울을 꼬시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사울은 겸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빈 손으로 갈 수는 없는데 드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의 습관인데 헌금을 드리는 습관이 잘 베어 있습니다. 먹을 것이라도 가져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은 한 세겔, 15만원 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에게 가는 목적은 예언을받기 위해서입니다.

 

9절입니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선견자는 ‘seer’는 보는 자를 의미합니다. 선견자는 선지자와는 조금 다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고, 선견자는 그냥 하나님의 음성만 들을 뿐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같은 의미로 지칭했습니다.

 

10절입니다.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성읍은 예루살렘 쪽으로 추정됩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12절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산당은 예배처인데 주로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산당은 우상숭배의 장소이기 때문에 다 허물었다고 나옵니다. 지금은 법궤가 기럇여야림에 있었기 때문에 원래 법궤 앞에 세워야 하는데 아무도 안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무엘도 고향에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아직은 산당이 우상숭배의 장소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다음부터 산당이 우상숭배의 장소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산당에서 제사, 곧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 걸리지는 않습니다. 아직 성전이 생기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산당이 있는 성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와 벧엘과 길갈 쪽에서 활동했는데 오늘 이 장소에서도 와서 예배를 인도한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축사를 한 후에야 백성이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사무엘이 지정한 자가 먹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구원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15절입니다.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사무엘은 전날 하나님의 음성을 미리 듣습니다.

 

16절입니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사울을 백성의 지도자, 왕으로 삼으라는 것인데 이유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왕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확실하게 구원을 얻게하기 위해서 어둠을 물리치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울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왕이 되는데 왕은 자기 안에 있는 원귀신을 물리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에게 있는 원귀신을 쫓아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구원이 확실해집니다.

 

17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사무엘은 수시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수시로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때가 따로 없습니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관계 없습니다. 음성이 들려 옵니다. 선지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것을 부인합니다.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수시로 듣는 것이 가능해야 합니다.

 

18절입니다.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19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선지자의 집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사무엘이 내가 선지자라고 답하면서 자신보다 앞서 산당으로 먼저 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울의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들도 그대로 말해 줍니다. 대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한 내용들만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시는 것이지 세세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자가 각 개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오히려 미혹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특히 죄에 대해서 다 안다고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 사람에 대해서 상황적인 것을 알려주고 뜻대로 가도록 도와 주시는 것 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절대로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에 도움이 되라고 알려 주셔서 단면만 이해할 뿐입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은 단면과 그 순간에 대한 내용 뿐입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신령하다 해도 사람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의 개인적인 비밀을 다 알려 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도와 주라고 알려 주시는 것 뿐입니다.

 

20절입니다.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사울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사흘 전에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았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게 선지자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에게 보여진 것입니다. 선지자의 세계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파워가 있는데 대부분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많습니다. 나중에야 정확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진짜 참 선지자들은 마인드나 나오는 예언들의 수준이 다릅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위로나 말들보다 하나님의 뜻만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설교나 대화 내용이 다릅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대화가 안 됩니다. 오히려 오해받고 핍박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합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해 줍니다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이제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해 줍니다.

 

21절입니다.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사사기 시대에 한 레위인이 자신의 첩이 강간당해 죽자 시체를 12도막으로 나누어 각 지파에 보냅니다. 이로 인해 베냐민 지파가 남자가 거의 전멸했다가 겨우 대를 잇게 되는데 열등감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사울은 베냐민이 작은 지파요, 본인의 가족 또한 베냐민 지파 중에 가장 미약하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사울의 겸손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22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이 사울을 상석에 앉게 합니다. 청한자 30명은 구원받은 자들을 의미하는데 사울이 이들 중에 상석에 앉았다는 것은 구원 확정을 의미합니다.

 

23절입니다.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사무엘이 예배 인도 후 요리사에게 희생제물을 미리 준비해 두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전날 사울이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미리 들었기 때문에 준비시킨 것입니다.

 

24절입니다.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지금 사울이 제사장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게 됩니다. 왕은 예배 인도자와 버금가는 직분입니다. 예배 인도자로 부름을 받거나 왕으로 구원의 확정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 그만큼의 대우를 받게 됩니다. 확정의 세계에는 많은 큰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예배 인도자 뿐만 아니라 왕으로 부름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많이 하는 자로 쓰임받게 됩니다. 왕은 예배 인도자와 비슷한 급수의 위치입니다.

 

25절입니다.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6절입니다.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선지자 뿐만 아니라 왕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입니다.

 

27절입니다.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

다윗이나 히스기야 왕들은 역사상 기독교를 크게 부흥시킨 인물들입니다. 역사적으로 평신도 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평신도이면서 신학자였습니다. 프란체스카도 신부가 아니라 평신도였지만 많은 역사들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꼭 목사가 아니어도 구원받고 하나님께 인침 받으면 목회 뿐만 아니라 어느 영역에서나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목사가 아니더라도 선지자로서의 영역이 있는데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선지자가 있고 제사장이 있고 왕이 있습니다. 물론 다윗처럼 선지자와 왕의 직분이 겹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 영역이 다르고 역할이 다릅니다. 특히나 왕은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꼭 예배 인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울은 왕이었는데 후에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예배를 인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된 것입니다. 왕은 왕의 할 일이 있고 예배 인도자는 예배 인도자로서 할 일이 있습니다. 선지자 또한 역할이 다릅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가 상호 보완됩니다. 사람마다 부르신 목적이 다릅니다. 각자가 다른 영역들이 있는데 어떤 영역이든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구원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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