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장 [원귀신(블레셋)은 40년간 '사사'이며 '제사장'이었던 엘리조차 구원을 잃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4

 

[원귀신(블레셋)40년간 '사사'이며 '제사장'이었던 엘리조차 구원을 잃게 하였습니다]

 

1절입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사무엘이 늘 감동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사람들이 사무엘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에벤에셀은 원래 블레셋 지역이 아니고 이스라엘 땅인데 그만큼 블레셋이 많이 들어온 것입니다.

 

2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절입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갔는데 왜 패했냐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조건 승리하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배우고 암기합니다. 나로 하여금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서 승리하는 것이지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도 얼마든지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졌지?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가난의 영에게 질 수 있고, 질병의 영에게 질 수 있습니다. 재난에게 져서 망하기도 합니다. 마귀들은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습니다. 지면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왜 졌지?’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그냥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도 이겨야 가는 것이지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이 어려운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말씀보고 하는 것들은 이기기 위해서 우리를 단련하는 과정들입니다. 많이 패배하다 보면 요령을 알게 됩니다.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은 많이 맞아보고 져 봐서 잘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언약궤가 없어서 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언약궤는 ‘Ark’인데 노아 방주의 방주와 같은 단어입니다. 지성소에 있는 법궤를 가져온 것인데 법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법궤가 있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발상이 좋은 것일까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기 때문에 진 것일까요? 모든 싸움에서 승리의 비결은 명령 순종입니다. 오직 명령 순종인데 사람들은 상징을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를 가져온 것인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법궤만 있으면 이길 수 있어.’ 맞을까요? 틀릴까요? 틀린 겁니다. 법궤는 상징물입니다. 상징과 본질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껍데기 신앙은 결국은 패배합니다. 신앙은 본질이 중요합니다. 세례식이나 성찬식도 본질인 죄사함이나 예수님의 은혜가 중요한 것이지 껍데기인 형식이나 행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상징들에 매이는 신앙은 진짜가 아닙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눈물로 회개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4절입니다.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그룹 사이에 계신그룹은 날개 달린 사람 모양의 천사를 말합니다. 구원 받으면 천사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동행합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현상인데 십계명을 지키고 싹난 지팡이처럼 신앙이 항상 살아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상징물인데 백성들이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오게 됩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전쟁하는데 제사장들을 앞세워 나가는데 오늘날로 하면 목사들을 앞세워 나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기겠지.’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5절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신앙의 본체가 아닌 껍데기를 가지고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블레셋은 원귀신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님이 계시고 귀신도 있고 내 영도 있습니다. 내 영에 성령님이 들어오시는 현상이 구원입니다. 이 때 내 안에 귀신들이 엄청 두려워 떨게 됩니다. 그런데 거꾸로 성령님께서 이탈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 때 구원이 상실됩니다. 오늘 말씀은 구원 상실에 대한 묘사입니다. 어떻게 구원이 상실되는가가 잘 묘사되어 나옵니다.

 

7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이것은 구원 받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때 내 안에 귀신이 엄청 두려워합니다. ‘우리에게 화로다.’ 성경에서 는 지옥을 의미합니다. 모든 귀신들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으면 내 안에 귀신이 많이 제압이 됩니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귀신들이 내 안에서 활동하다가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면 두려워합니다.

 

8절입니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과거에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으로 치신 적이 있는데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귀신들은 우리가 거듭나고 구원 받는 과정에 있을 때 항상 고통 가운데 거합니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우리에게서 나가자마자 지옥행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아주 잠시지만 돼지떼에게 들어가고자 부탁할 정도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잘 알기 때문에 1초라도 더 있고 싶어서 버티고자 한 것입니다.

 

 

9절입니다.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너희가 대장부처럼 강하게 된다면 히브리인들에게 종이 되지 않을 거야.’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종이 되었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원귀신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구원 받으면 귀신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꼼짝 못합니다. 우리 안에서 종처럼 꼼짝 못합니다. 반대로 구원 상실이 되면 귀신의 종이 됩니다. 구원 상실은 블레셋에게 우리가 종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왕이 되셔서 나를 다스리는 것인데 동시에 내 안에 귀신이 제압되거나 추출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원 상실은 내 안에 귀신이 왕이 되어서 성령님, 예수님께서 추방 당하시고 내 영이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마귀는 마귀의 일을, 즉 죄를 짓는 것을 계속 하게 됩니다. 마귀는 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인 블레셋의 종이 되면 우리는 지옥가게 됩니다. 마귀에게 지배되어 죄를 짓게 되면 천국 못 갑니다. 지금 블레셋이 군사들에게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싸우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이스라엘이 귀신들에게 져서 도망하게 됩니다. 구원 받은 사람 대부분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최하 9:1입니다. 귀신을 못 이기고 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보병 3만명이 죽게 됩니다. 3이라는 숫자는 하나님 숫자인데 하나님께서 쫓겨 나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근심하시다가 소멸되어 나가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 상실을 이해 못하는데 이 구원 상실이 엄청 많습니다. 믿고 나서, 즉 한번 빛을 경험하고 나서 지옥에 떨어지면 그 심판이 더 큽니다.

 

11절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드디어 궤를 빼앗겼습니다. 당시 실로의 기능이 상실한 것입니다. 성막이 더 이상 구원으로 인도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 자신인데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구원이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당시 하나 밖에 없는 참교회가 무너진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절입니다.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이것은 구원 상실 때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영이 떨림이 있고 고통이 있게 됩니다.

 

14절입니다.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절입니다.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엘리는 과거에 구원을 얻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원이 꺾인 겁니다. 구원 얻었을 때 죽으면 천국 가는데 엘리는 장수를 해서 눈이 어두워지고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엘리는 영적으로 앉은뱅이에 소경이었습니다. 비운의 사람입니다.

 

16절입니다.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절입니다.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엘리는 하나님이 없는 예배 인도자였습니다. 예배 인도자는 기능이 아닙니다. 찬양, 말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끝난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 없이 예배를 인도합니다. 아무 의미가 없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좋은 이야기들만 하고 내려오는 겁니다. 엘리는 지금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아들들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18절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문 곁에서성막 문 곁입니다. 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진 것입니다. 구원 밖에서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40년 동안 사사를 했지만 유일하게 사사 가운데 제일 오래 사역을 했지만 지옥 간 인물이 되었습니다. 두 아들 역시 지옥에 갔습니다.

 

19절입니다.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며느리가 슬픈 소식을 듣고 고통 가운데 몸을 구푸려 해산하는 겁니다.

 

20절입니다.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엘리의 구원 상실이 두 아들을 지옥 보내고 며느리도 죽게 합니다. 구원 상실입니다. 예배 인도자의 타락은 아주 무섭습니다. 한 명 때문에 다 지옥 보냅니다. 나중에 손자도 지옥 갑니다. 예배 인도자를 하고 싶으십니까? 교회 목회자가 지옥가는 사람이면 나머지 성도들도 천국이 어렵습니다. 지금 며느리가 죽기 전에 아들을 낳았는데도 전혀 대답도 안 하고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며느리가 죽을 때 , 내가 지옥 가는구아.’하고 영적인 세계를 봤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들을 낳았는데 아무런 감정도 없을 리가 없습니다. 죽음의 영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은 이 영을 죽기 전에 다 느낍니다. 이 며느리는 아마도 자신 뿐만 아니라 이 아들도 지옥 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구원 받을 때 영광이 오는데 이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기 때문에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은 겁니다. 더 이상 구원이 없고 낳은 아이도 지옥 가기 때문에 출산이 기쁘지가 않은 것입니다. 교회 자체가 기능을 상실해서 구원을 일으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윗이 회복하지만 그 전에는 구원이 없이 끝난 겁니다.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원어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 때문에 구원의 길이 다 막히고 나도 지옥가고 아들도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단순히 궤를 빼앗긴 것 때문에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죽기 전에 지옥에 가 있는 남편과 시아버지를 봤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 의식이 있기 때문에 천국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이 며느리는 죽기 전에 지옥을 봤을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이 말은 분명히 아들 이름을 지을 때 한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반복한 이유는 아마 유언으로 남기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구원상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구원을 일으킬 수 없는 총체적 함락을 본 것입니다. 목회자가 타락해서 더 이상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참 교회가 없는 것입니다. 이 며느리의 심정이 바로 이처럼 패닉 상태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참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분명히 대제사장은 천국 갑니다. 사사도 천국 갑니다. 그런데 엘리는 지옥 갔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으로 인도하는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대환란 시기에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대환란은 성소에 하나님의 궤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지고 가증한 것이 들어 선 것이 대환란입니다. 대환란은 구원 시스템이 망가진 상태의 시대입니다. 구원이 안 일어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교회마다 다 울었습니다. 지금은요? 아무도 울지 않습니다. 어릴 때 교회마다 철야를 했습니다. 지금은요? 기능이 다 망가진 것입니다.

 

엘리 한 명 때문에 다 망하게 된 것입니다. 예배 인도자는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누가 구원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일 씨름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병낫는 얘기, 축복 받는 얘기 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얘기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누구도 장담 못합니다. 엘리가 지옥갔습니다. 구원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고난을 좋아하고 핍박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인간이 구원에 가깝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반대로 형통과 축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한 가지를 목표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구원 이 한가지를 전하는 것이 복음전파입니다. 사람들은 구원 외에 쓸데없는 것들을 설교하고 전하는데 다 소용없습니다. 은사나, 예언이나, 방언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병 낫는 것, 축복 받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과 순종입니다. 특히 인도자들은 더 긴장하고 항상 자기를 치고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결단을 강하게 하고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나실인처럼 세상 것을 바라보거나 찾으면 안 됩니다. 구원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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