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3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선지자는 아니지만, 듣지 못하면 선지자가 아닙니다]

 


사무엘상 3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선지자는 아니지만,

듣지 못하면 선지자가 아닙니다]

 

1절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말씀이 희귀하여말씀이 드물다는 것인데 어느 시대에나 기독교에는 환상이 있고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념이 나옵니다. 말씀이 성경 66권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토라 성경 말씀은 늘 존재해 왔습니다. 계시가 없다는 의미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open vision’인데 눈을 감았을 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서도 보입니다. ‘open vision’은 열린 환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인데 사무엘이 선지자가 되는 과정이 오늘 나옵니다. 선지자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가 나옵니다. 선지자에게는 말씀이 임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나옵니다. 선지자가 보는 환상과 내용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가 나옵니다. 예언의 은사도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인데 이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선지자가 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선지자와 예언 은사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규명하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2절입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직역을 하면 엘리가 자기 자리에 누워 있을 때에 그의 눈이 희미해져 갔는데 그는 볼 수 없었다.’입니다. 볼 수 없다는 것은 영의 구원상실을 의미합니다. 소경은 구원 상실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엘리가 구원이 상실된 것을 의미합니다. 앉은뱅이, 귀머거리, 중풍병자, 문둥병자가 다 죽음으로 가는데 중환자 다음 단계가 바로 영의 죽음입니다. 엘리가 지금 구원상실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입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기 전입니다. 이상하죠? 원래 성막의 등불은 항상 꺼지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이 율법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등불이 꺼지기 전이라는 것은 성막이 구원의 방주 역할을 못하기 직전이라는 것입니다. 성전, 곧 교회는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꺼지기 전이라서 구원의 기능이 약간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궤는 ‘Ark’인데 노아의 방주에서 방주와 같은 단어입니다. 법궤가 방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일으키시는데 법궤를 잃어버렸다? 구원을 못 주는 것입니다. 성막, 교회의 생명력은 ‘Ark’에 있습니다. ‘Ark’가 있는 성전에 등불이 꺼질 위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사무엘이 어디에 누웠을까요? 성소에서 잠을 잔 것입니다. 엘리가 대단한 사람인데 성소에서 잠을 잘 정도로 아주 영적인 사람입니다. 또한 사무엘을 키운 제사장입니다. 엘리를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엘리가 지옥에 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데 어떻게 불렀는지는 안 나옵니다. 사람이 부를 때와 똑같이 사무엘아~’하고 부르셨을 것입니다. 이상한 언어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람처럼 그냥 이름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이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5절입니다.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 듣는 거라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갑니다. 엘리가 아니라고 말하자 다시 자려고 눕습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내 아들아사무엘을 아들처럼 키운 겁니다.

 

7절입니다.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아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의 분량이 안 된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어릴 때부터 제사장 임무를 수행하고 예배 드릴 줄도 아는 사무엘에게 말씀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어떤 뜻일까요?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드디어 엘리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줄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깨닫게 되었을까요? 엘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경험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9절입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came’ 하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오셔서 얼마든지 예언할 수 있고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예언을 하거나 눈에 보이는 환상을 보는 자가 아닙니다. 실제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하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예언 은사자들을 선지자로 여깁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임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시는 사람, 그 자가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오시지 않았는데 단순히 내가 뭘 보고 들었다고 해서 선지자로 여기는 것은 그것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여호와의 천사가 임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에게 천사가 방문했습니다. 사사들은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처럼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십니다. 대통령이 누구를 미팅할 때 비서관을 보내는데 진짜 중요한 사람에게는 직접 가서 만납니다. 이것이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과 예언, 통변, 방언, 등을 통해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직접 만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아브라함, 모세는 선지자로 하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입니다. 직접 만나서 받는 내용들이 훨씬 더 강력합니다.

 

임하여 서서하나님께서 서 계시는 것입니다. 서 계시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직접 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떤 형상으로 보일까요? 그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두 번 부르시는데 왜 두 번일까요? 대부분 한 번 부르시는데 못 알아 먹거나 다급할 때 두 번 부르십니다. 아브라함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 번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중간에 여호와여~’가 생략 되었는데 킹제임스에서는 여호와를 다 ‘Lord’로 바꿔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 필사할 때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면 멈추고 정결케 한 다음에 필사했는데 킹제임스 번역자들이 여호와란 단어를 차마 쓰지 못하고 ‘Lord’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경우에 오번역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창세기를 번역하고 있는데 이런 오번역들을 바로 잡아 수정하고 있습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나님께서 드디어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데 이 내용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는데 무엇을 말씀하시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내가 너를 창대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실까요? 대부분 죄를 지적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에 그 죄를 말씀해 주셔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선지서의 내용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들입니다. 선지자는 축복을 말하지 않습니다. ‘너 우상숭배 하지마! 이런 저런 죄들 짓지마!’ 하나님께서 나를 싫어하시는 이유들을 꼬집어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이유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축복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적하시기 때문에 당황됩니다.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귀가 번쩍 뜨인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지옥간다고 선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평민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고 대제사장인데 지옥간다고 하시니 어린 사무엘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나를 키워 주고 모든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며, 예배 인도자인데 지옥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가 울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100%입니다. 단순히 들리는 성령의 음성과는 다릅니다.

 

12절입니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이미 엘리의 집에 대해 예언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듣고도 엘리가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의 집은 엘리와 그의 후손들입니다. 가문이 다 심판받는 것입니다. ‘그가 아는 죄악엘리가 아는 죄악입니다.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저주는 오번역이고 ‘he restrained’그가 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합니다. 아들들이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는 용서가 가능한 죄입니다. 이 때 엘리는 분명히 아들들을 불러서 혼을내고 꾸짖었습니다. 잘못한 건가요? 잘못 없습니다. 이것이 엘리의 죄는 아닙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바로 죄를 지었는데도 여전히 제사장 직을 수행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금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아들들이 범죄했는데 혼내는 것으로 안 됩니다. 제사장 직은 거룩한 것인데 죄가 있는 그대로 수행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 받으신 것입니다.

 

예배 인도자는 조건이 단 한가지입니다. 거룩입니다. 거룩한 성전에 간음한 자들이 왔다갔다 하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겠습니까? 이런 자들이 예배를 인도하니 얼마나 열 받으시겠습니까? 엘리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자들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의 죄입니다. 엘리는 천국을 확신한 사람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예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실을 사무엘이 듣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원어로는 ‘sacrifice nor offering’입니다. 동물을 희생시켜서 드리는 예물들이 ‘sacrifice’입니다. 지금 엘리의 죄는 어떤 종류의 희생 제물을 드려도, 어떤 예배를 드려도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속죄함은 오번역이고 ‘purged’ ‘제거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이 땅에서 경고를 받았는데 회개하지 않아서 드디어 버림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버림받게 되는 경우는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를 주십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말을 안 들으면 다음에는 버리십니다. 그 때는 회개를 해도 죄가 사해지지 않습니다. 엘리 나이가 98세였는데 40년간 사사였고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거룩한 곳인데 악인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돌아다니도록 그대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죄를 지으면 빨리 옷을 벗고 내려와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 안 됩니다. 지금 엘리가 악인들인 자기 아들들을 그대로 제사장 직을 수행하도록 두니까 너 때문에 너와 네 자손들이 다 천국 못 간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15절입니다.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여호와의 집의 문성막 문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아침에 예배 드리러 오니까 문을 연 것입니다. 너무나 무서운 말씀이라 엘리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한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17절입니다.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내게 숨기지 말라.’ 참 어려운 명령입니다. 나를 키워 주신 대 목사님 앞에서 목사님! 이제 목사님 어떤 것으로도 죄사함이 안 되고 천국 못 가시고 지옥 가신답니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것인데 사무엘은 이것을 전달합니다. 선지자는 천국과 지옥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인데,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에 가는 이유를 전해주는 자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구원입니다. 천국에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보내시는데 사무엘은 330년만에 나온 선지자입니다. 그동안 사사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직접 만난 자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8절입니다.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사무엘은 하나님을 직접 만났고 들은 말씀도 정확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에게 제사장님 아들을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사장님을 지옥에 보내신다고 합니다라고 그대로 전달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여기서 엘리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나옵니다. 엘리는 사무엘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 말이 문제가 됩니다. ‘여호와께서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그 말을 안 믿은 겁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선포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버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엘리는 40년간 사사요, 제사장으로 지냈고 철야도 많이 했을 것이며 과거 하나님 만난 경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선포된 말씀을 믿었을까요? 안 믿은 겁니다. 저 같으면 누군가 나에게 당신 지옥가.’라고 말하면 밥이 안 넘어가고 잠이 안 올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천국 100% 갈 것 같은 사람들도 대부분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 선포는 그냥 음성이나 느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난 선지자가 구체적인 죄를 지적해 주고 알려 주어야 알 수 있습니다. 죄가 보여지고, 지옥이 보여지고 고통이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커트라인이 있으신데 엘리에게는 참다참다 지옥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때 엘리는 밥이 안 넘어가야 되고 패닉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담담합니다. 안 믿은 겁니다. 하나님이신 것은 알겠는데 안 믿은 겁니다. 가짜 믿음입니다. 믿음은 100% 순종이 따라와야 하는데 지금 엘리는 가짜 믿음이라 순종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야.’라는 생각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이 얼마나 신령했느냐면 모든 말 속에 다 하나님의 감동 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의 영적 수준입니다.

 

20절입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선지자는 모세오경에도 몇 명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에 온 이스라엘이 인정하는 사사가 등장한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깊은 것까지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으로는 심판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경건한 교회일수록 대부분 책망이 많고 훈계가 많습니다. 칭찬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하나님께서는 책망의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래야 돌이키고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죄를 사함받고 돌아서는 과정을 계속 해 나가는 것입니다. 거룩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고 거룩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거룩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축복을 선포하지만 참 교회는 복을 말하기 보다 문제점을 지적해 줍니다. 천국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순간이지만 천국은 영원한 곳이고 엄청난 곳입니다. 이 땅에서 복 안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축복이 천국을 방해합니다.

 

천국은 진짜 어렵습니다. 대제사장 엘리가 천국에 못 갈 정도입니다. 범죄한 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께서 사사 시대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셨는데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 사람으로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남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파자와 교사와 목사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선지자가 나와야 하는데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천국과 지옥을 전해주고 죄를 지적해 주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선지자가 나와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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