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1장 [하나님의 사람(참교회)을 선택할 땐, 반드시 모든 것이 포기되어지며 잃어버려지게 됩니다]

 


룻기1

[하나님의 사람(참교회)을 선택할 땐, 반드시 모든 것이 포기되어지며 잃어버려지게 됩니다]

 

1절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룻기의 배경은 사사기 끝부분이 아니라 중간 부분입니다. 사사기 때는 여호수아 이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다 구원을 잃어버리고 서편에서도 가나안 지역에서도 단 지파는 전체가 구원을 잃고 베냐민 지파도 일부만 간신히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안 좋은 시대인데 반대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과정이 바로 룻기입니다. 어떻게 영생에 도달되는지에 대한 전개가 쉽게 펼쳐지게 됩니다. 4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려운 시기에 구원을 얻게 되는 영적인 여정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들의 모형이 될 수 있습니다. 극적인 내용이지만 이것은 한 개인의 스토리가 아니라 영적인 현상을 그대로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구원 받아도 어려움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 받아도 가난이 존재하고 질병이 존재합니다. 구원 받은 이후에도 많은 어려움들이 생깁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레위인이 미가 집에 가서 제사장이 되었다가 이후에 단 지파에 가서 제사장이 되어 구원을 잃게 하는데 쓰임받게 됩니다.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서는 유다 베들레헴에 첩을 둔 사람이 첩이 죽은 후 시체를 도막 내 이스라엘에 보내는데 이 사건을 통해 베냐민이 전멸될 위기에 처합니다.

 

오늘 말씀에 왜 유다 베들레헴이 나왔을까요? 그것은 지파들 가운데 유다 지파가 제일 영적으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상황이 안 좋을 때 보통 영적으로 좋은 자들을 등장시킵니다. 사사기 때는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들어갔고 사사조차도 구원상실의 위험에 많이 빠졌습니다.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모압 지방은 이방 지역입니다. 구원 상실의 땅입니다. 이곳에 거하면 지옥입니다. 롯의 두 딸 가운데 첫째 딸이 모압을 낳게 됩니다. 구원 상실이 일어나는 모압으로 가는데 구원 상실이 한 번에 일어날까요? 아닙니다. 구원상실은 오래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1년의 시간을 회개 기회로 주시기도 하십니다. 10년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왜 저렇게 행할까?’라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실제 영적인 세계는 쉽지 않습니다. 구원이 굉장히 어려운데 구원상실은 쉽고 회복도 굉장히 오래 걸립니다. 천국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영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사사기가 구원 잃은 경우라면 룻기는 구원을 회복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경우를 말해 줍니다.

 

2절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나오미도 은혜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 혈통이 좋은 사람들인데 모압 지방으로 들어가 살면서 신앙이 점점 떨어집니다.

 

3절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남편이 먼저 죽습니다. 구원 상실을 의미합니다. 왜 먼저 죽었을까요? 엘리멜렉에게 먼저 구원의 은혜를 주셨는데 타락하게 되면 더 어렵습니다. 많이 은혜를 받았는데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회복이 더 어렵습니다.

 

4절입니다.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10년 쯤 뒤에 드디어 두 아들을 결혼시키는데 둘 다 모압 여자와 결혼합니다. 신앙을 잃어버렸는데 당연히 불신자와 결혼합니다.

 

5절입니다.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다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남았더라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시고 어떤 사람은 빨리 죽게 하실까요? 두 경우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책망이나 꾸지람이 나갈 때 반박하지 않고 자신을 묵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십니다. 구원을 받은 이후에 영생을 얻기까지는 오래 걸리고 쉽지 않는데 이 영생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6절입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나오미가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기서 양식은 영적인 양식이 풍성해 졌다는 뜻인데 구원 상실의 땅에서 구원의 땅으로 다시 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와 함께 다시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7절입니다.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두 며느리가 순수하게 유다 땅으로 따라 갑니다. 아무 유익이 없는데 오히려 여자 입장으로 더 힘들텐데 순순히 따라 나섭니다. 이유가 뭘까요? 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인간적인 정이 들었기 때문에 같이 길을 나선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오미가 비전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동안 너무나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정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따라 나선 겁니다.

 

8절입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보고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합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사별했기 때문에 재혼하라고 말해주며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그동안 10년 정도 정이 있었기 때문에 소리 높여 웁니다.

 

10절입니다.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두 며느리가 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불신자요, 우상숭배자인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나오미가 다시 아들을 낳으면 며느리에게 줄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12절입니다.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절입니다.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남자가 적어도 15세 이상 되어야 결혼 할 수 있는데 기다릴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따라오면 좋은 일이 안 생겨.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어. 너희로 인해 더욱 마음이 아파. 앞으로 잘 되는 게 아니라 더 힘들 거야.’라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드디어 오르바는 돌아가겠다고 결심합니다. 도저히 비전이 없기 때문에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룻은 더욱 붙잡습니다. 비전도 없고 가난이 보장되어 있고 인생이 더 힘들텐데 왜 나오미를 선택했을까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망하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지금 룻이 나오미를 붙잡은 근거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룻이 영생의 가문으로 가는 것에 대한 동기가 됩니다.

 

15절입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나오미가 룻을 다시한번 돌아가라고 권유합니다.

 

16절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이 붙잡은 것이 하나님일까요? 룻의 선택은 하나님이 아니라 시어머니인 나오미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에 그 교회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어.’라고 생각하는데 그 교회에 하나님이 떠나셨어.’라고 여기면 그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안 하신다는 주관적인 믿음입니다. 룻의 선택은 주관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나님을 믿은 겁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자신도 죽겠다는 것입니다. 룻의 마음속에서 영적인 애착심이 생겨서 나오미를 선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으로는 한계가 있는데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가페적 사랑을 하게 되면 함께 죽음도 결단하게 됩니다. 죽는 것 외에는 항상 어머니 곁에 함께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어머니를 사랑한 것입니다. 내가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영생에 들어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룻기의 마지막 스토리는 다윗 가문의 족보가 나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 성도님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인데 그 이유는 교회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도 한 분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친화현상 때문인데 하나님의 사람을 같이 사랑해 주면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에게 하신 것처럼 엄청난 고난과 어려움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도 룻은 전혀 움직임이 없고 나오미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결혼을 못 해도, 가난하게 산다 할지라도 결단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떠나지 않고 끝까지 붙어 있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18절입니다.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절입니다.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베들레헴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이이가 나오미냐?’하고 못 알아 봅니다. 10년동안 얼마나 고생했으면 얼굴이 변했겠습니까? 며느리와 단 둘이 왔는데 거지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20절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인데 마라는 쓰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셔서 괴롭게 하셨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때문에 망했다고 하면 믿음을 가지기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흥하고 번성하고 잘 되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벌하기도 하시고 때리기도 하시고 지옥으로 보내기도 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실제 진리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그렇게 잘 되었냐?’라고 하면 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망했냐?’라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셨어.’라고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를 치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고난으로, 핍박으로 심지어 순교로 이끌기도 하십니다.

 

21절입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한 마디로 나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셨어.’라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 나는 잘 될 거야. 복 받을 거야.’라는 헛된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나를 괴롭게 하셨어. 나는 이것이 마땅한 존재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같은 상황이 될 때 사람들은 겉으로는 몰라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옵니다. 이런 상황을 주신 하나님조차 여전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복을 안 주셔서도, 망하게 하셔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복이 임하지 않고 망하기도 합니다. 이 때 실망하고 원망이 된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좋아한 결과입니다. 나오미는 나를 때리고 괴롭히는 하나님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감사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일이 안 될 때 감사하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사사기 시대 사람들이 다 좋으신 하나님, 좋은 것, 좋은 일만 좋아하기 때문에 다 신앙이 떨어진 것입니다.

 

과연 복이 뭘까요? 잘 되는 것이 복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를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치신 것입니다. 이게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리시고 징계 하실 때 미워하시는 것으로 여기면 큰 오해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시고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 대해서 영적인 아가페 사랑을 주십니다. 불명예, 가난, 고통, 어려운 일 등을 주십니다.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잘 되고 형통한 상태에서는 천국 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많이 맞고 연단을 받아야 변화가 됩니다. 사랑할수록 때리시는데 나오미는 이 연단을 통과한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보리 추수할 때는 유월절 기간이고 밀 추수할 때는 오순절 기간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드디어 신앙의 출발을 시작한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 이것이 출발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엄청나게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이제 이들의 신앙이 바르게 출발되는데 거듭남과 구원의 신앙에서 영생에 이르게 되는 신앙으로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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