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장 [구원상실된 이단교회 예배를 모방(유입)한 단지파는 100% 구원상실이 일어났습니다]

 

 

사사기 18

[구원상실된 이단교회 예배를 모방(유입)한 단지파는 100% 구원상실이 일어났습니다]

 

1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영적인 의미인데 왕은 구원확정을 뜻하며 왕이 없다는 것은 거의 다 구원상실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12명이 있을 때 그 중에서 1명만이 영생, 즉 구원확정입니다. 나머지는 다 상실되는데 사람들은 이 말을 들을 때 설마하는데 이것은 제가 신앙생활 하면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입니다. 구원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에는 구원 유지가 쉽지 않습니다.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지금 시기가 여호수아가 땅 분배를 한 뒤 200~300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단 지파는 구원 확정이 안 된 것입니다. 기업을 받는 것은 확정을 의미하는데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오번역인데 분배를 받기는 받았습니다. 그런데 ‘fallend’ 분배를 받았는데 유산으로는 못 받은 겁니다. , 구원은 받았는데 확정이 안 된 겁니다.

 

2절입니다.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단 자손이 이미 땅을 받았는데 그 땅에 정탐을 보냅니다. 아모리 족속 때문인데 이것은 구원 받은 뒤 안에 있는 귀신을 그대로 둔다면 100% 지옥이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귀신을 못 이기고 쫓아내지 못하면 100% 지옥입니다. 단 지파가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면 되는데 안 쫓아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이유입니다.

 

내 안에 귀신이 남아 있으면 천국 못 갑니다. 죄의 원인이 귀신이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추방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주제입니다. 구원의 확정을 받는 수준까지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이 귀신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만 받고 기업으로 유산을 받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땅인데도 정탐을 보내 살펴보게 합니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가서 유숙하게 됩니다.

 

3절입니다.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미가는 구원상실을 일으키게 하는 원조입니다. 지난 말씀에서 미가는 베들레헴 출신의 레위 청년을 꼬셔서 월급을 주고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정탐꾼들이 그 레위 청년에게 빠져 버립니다. 그 청년의 음성, 즉 마귀가 쓰는 거짓 선지자요 이단 교주에게 빠져 버린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절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드디어 그 청년을 참 제사장으로 인정합니다. 믿음이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어 보라고 예언을 요청합니다. 어떤 음성이 들려올까요? 당연히 마귀 음성이 들리는데 하나님이 주신 음성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거짓 예언이 나옵니다. 단이 이 후로 나오지 않는데 하나님 앞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지금 이 레위 청년이 자기가 거짓인 줄로 모르고 말하는 겁니다. 오직 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을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 드러납니다.

 

7절입니다.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라이스는 사자라는 뜻인데 사자는 구원상실의 영입니다. 라이스 그 땅은 평온하고 안전하고 부족한 것이 없이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구원 상실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주는데 여기에 속는 것입니다. 구원 안에는 항상 환란과 핍박과 칼과 위협이 늘 도사립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잘 되고 평안할 때가 오는데 하나님과 연결 되었던 것들이 끊기고 교통이 사라지는데 이것이 구원 상실입니다. 구원상실이 일어나면 환경은 오히려 좋아집니다. 가나안 땅은 풍요의 땅이 아니라 순종의 땅입니다. 의의 땅입니다. 가나안 땅, 즉 구원 안에 있으면 고난과 박해와 순교가 있지만 밖에 있으면 고난이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게 됩니다.

 

이들이 갑자기 망하게 된 이유는 신령한 것처럼 보이는 제사장이 평안하다, 너희가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고 하는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형통을 복으로 이해하면 큰일 납니다. 오히려 고통 가운데 있을 때가 훨씬 좋은 겁니다. 우리가 언제 영이 맛이 갈까요? 성공할 때입니다. 부흥할 때입니다. 이 때는 마귀가 우리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좋은 게 아닙니다. 두려운 겁니다. 마귀가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긴장하며 사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절입니다.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절입니다.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하나님께서 넘겨 주셨다고 오판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정해주신 땅이 있는데 엉뚱한 땅으로 가게 됩니다. 실제로 라이스 땅은 수목이 우거지고 헬몬산 물줄기가 흐르며 부족함이 없는 엄청 환경이 좋은 곳입니다. 이렇게 환경이 좋기 때문에 거짓 제사장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단 지파의 가족 중 육백 명이 무기를 지니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5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600명이 무기를 들고 출발합니다. 6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으로 7과 대적하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52와 대적하는 숫자입니다. 정탐꾼은 원래 2명을 보내야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7진법, 7이 마지막 수입니다. 5는 거짓된 전파자입니다. 참 증인은 원래 2명입니다. 가나안 정탐꾼도 2명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600, 6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숫자가 아닌 겁니다.

 

12절입니다.

올라가서 유다에 있는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 단이며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첫날에 기럇여아림에 진을 치는데 이곳은 유다 땅에 마지막 땅입니다. 베냐민 땅과 접촉해 있는데 소재지는 유다에 속해 있습니다. ‘마하네 단은 마하네는 군대, 진영이라는 뜻입니다. 단의 진영입니다. 구원 상실이 단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유다 외에는 다 구원상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구원 상실을 의미합니다. 다 구원상실이 일어나고 유다 지파만 영적으로 구원의 대를 이어갑니다.

 

13절입니다.

무리가 거기서 떠나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14절입니다.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다섯 사람이 먼저 구원상실이 일어났고 그 형제들에게 우상숭배의 예배가 있는 곳을 알려 줍니다.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너희도 이제 믿으라하면서 꼬시는 장면입니다. 이 일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단 예배로 인도하면서 대량 구원 상실이 일어나게 됩니다.

 

15절입니다.

다섯 사람이 그 쪽으로 향하여 그 청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하고

 

16절입니다.

단 자손 육백 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절입니다.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5명이 집에 들어가서 예배 도구들을 다 가지고 나옵니다. 이단은 또 다른 이단을 낳게 됩니다. 이단은 원뿌리가 있는데 이 뿌리에서 다양하게 번져 나갑니다. 이단들의 교리를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압축해서 교리로 만들면 안 되고 성경 전체를 그대로 봐야 합니다. 말씀은 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만 정확한 해석이 나옵니다. 성경 한 말씀 한 말씀을 푸는 것이 설교입니다.

 

18절입니다.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19절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미가의 집에서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이 단 지파에서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성공한 거죠. 하지만 실패한 겁니다. 목회자들이 자신이 섬기던 교회를 떠나 큰 교회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건 아닙니다. 처음에 맡았던 영혼들을 끝까지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뽑아내지 않으신 이상 끝까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부흥하지 않고 힘들면 큰 교회에서 좀 데려가 주었으면...’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큰 교회로 이동해서 가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좋아하는 체질이 되면 미혹되지 않습니다. 숫자가 많아지고 부흥하면 마음이 딴 곳으로 향합니다. 엄청 안 좋은 것입니다. 성도가 한 명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 제사장이 된 이 청년은 욕망 때문에 단 지파를 따라 나섭니다. 이 욕망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 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신상이나 에봇이나 드라빔이 우상이 아닙니다. 진짜 우상은 성공이라는 욕망입니다. 우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단이 되고, 구원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끊어지게 될까요? 11 지파가 구원을 잃어 버렸을까요? 하나님 이외에 자기의 야망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입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하나님과 교통이 없습니다. 참 평안이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현상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 드라빔이나 조각 우상들을 보여 준 것 뿐입니다.

 

레위인이 왜 베들레헴에 거주합니까? 가면 안 됩니다. 왜 지파를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갑니까? 왜 미가 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합니까? 다 욕망 때문입니다. 미가 집에서 더 큰 지파로 떠납니다. 남들은 성공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성공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작은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고 감사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됩니다. 망해도 됩니다. 빚져도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못 견디고 힘들어 합니다. 나를 섬기면 살기가 힘듭니다. 나를 생각하면 좋은 말과 칭찬을 들어야 하고, 성공해야 합니다. 내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20절입니다.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21절입니다.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값진 물건들을오번역인데 ‘carriage’ 운송수단을 앞세우고 길을 떠난 겁니다.

 

22절입니다.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미가에 의해서 구원상실된 사람들이 단 자손을 따라 붙은 겁니다.

 

23절입니다.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24절입니다.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25절입니다.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단 자손들이 협박하는 겁니다.

 

26절입니다.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이단이 낳은 이단이 더 크게 부흥하니까 처음에 태클을 걸다가 자기보다 더 강하니까 그냥 돌아간 겁니다. 이단은 항상 뿌리가 있는데 그 뿌리에서 뻗어 나가서 정통을 먹게 되는 겁니다. 이단에 빠지는 이유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이론이 아니라 영의 세계인데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도 계시나 예언이 거짓된 것들이 많은데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기초는 성경 66권인데 이 말씀이 내 신앙의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성경 66권을 정확히 이해하고 번역, 해석하는 일입니다. 제가 하는 사역이 바로 이 진리 사역입니다. 교회 부흥이나 은사 사역이 아니라 진리를 정확히 깨닫게 하는 것이 저의 사역입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절대 미혹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진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27절입니다.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절입니다.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절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30절입니다.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그 젊은 청년이 진자 모세의 손자일까요? 모세는 킹제임스 성경에는 므낫세로 되어 있습니다. 므낫세라는 히브리어 원어에다가 ‘n'을 빼면 모세가 됩니다. 모세의 후손일까요? 므낫세의 후손일까요?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청년은 레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레위인들이 교회나 기도원을 차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명령한 것도 아닌데 자기가 교회를 차리는 것은 그 자체가 이단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라고 명해서 한 것입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사도가 된 것입니다.

 

31절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목사가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세우신 것이라면 그곳이 성막이 됩니다. 인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면 그곳이 실로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은사가 뛰어나고 훌륭해도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실로가 아닙니다. 성막이 아닙니다. 그곳은 인간적인 모임 장소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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