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2장 [참된 성령의 역사를 핍박하는 기독교 정통은 구원상실의 주체가 됩니다]

 


사사기 12

[참된 성령의 역사를 핍박하는 기독교 정통은 구원상실의 주체가 됩니다]

 

1절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북쪽은 세겜 지역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암몬과 싸울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입다에게 불사르겠다고 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것은 무시받고 쫓겨났던 입다가 다시 초청받아서 지도자가 되고 전쟁에서 승리하자 열 받고 시기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2절입니다.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사실은 입다가 불렀는데 그들이 거절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부르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는 겁니다. 이유가 시기심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같은 민족끼리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승리는 길르앗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은 길르앗 사람을 에브라임과 므낫에서 도망한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길르앗 사람을 믿음이 있다가 믿음을 잃고 구원 상실된 사람들로 폄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패잔병들이 요단 강 나루턱을 지나 갈 때 먼저 점령한 길르앗 사람들이 도망자들에게 물어봐서 에브라임 사람이면 죽이고 아니면 살리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쉽게 말하자면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라는 발음을 못하므로, ‘십볼렛이라고 말하는데 그 때 잡아서 죽인 것입니다. ‘쉽볼렛강가라는 뜻인데 입다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도록 고안한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이 때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수가 42000명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입다와의 싸움은 바로 하나님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볼 때 입다는 이단이나 사이비 정도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입다가 승리케 하심으로 너희가 바로 이단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사사기 때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들어갔는데 이유가 혼합주의와 싸운 입다에 맞서 싸웠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와 맞서 싸우는 자는 다 지옥입니다. 성경에서 선지자와 싸우는데 천국가는 사례가 한 곳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싸우는 자도 100% 지옥입니다. 왜 싸울까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시기심 때문입니다. 보통 다른 교회가 부흥을 하면 마음에 시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냥 시기심이 생깁니다. 유대교인들이 초대교회를 시기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몰려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시기심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지옥간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바로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길르앗 중에서도 이단으로 여겨지던 입다가 동쪽에 혁명을 일으키니 정통이던 에브라임이 시기심이 생긴 것입니다. 이 시기심은 육적인 시기심으로 고린도후서에 이 시기심 때문에 지옥에 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기심은 구원에서 이탈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미워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미워하는 겁니다. 나보다 못 나고 나와 다른데 나보다 더 잘되면 괜히 그 교회가 미워집니다. 그래서 이 시기심이 구원상실의 증거가 되는 겁니다. 구원받게 되면 시기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이 시기심이 심각한데 그래서 절대적인 순종이 어렵습니다. 인간의 악 가운데 시기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상대를 무조건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 구조가 현재 전 세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악한 마음은 주님을 떠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구원을 받았을 때 정통이 되는데 정통에 속해 있던 에브라임이 죽게 된 것입니다. 정통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7절입니다.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8절입니다.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9절입니다.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성경에서 숫자는 다 의미가 있는데 30명은 입산이 구원의 은혜로 인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밖에서 30명을 데려왔다는 것은 안에서 구원의 은혜에 있던 사람들이 밖에서도 다른 사람을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절입니다.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스불론은 잇사갈과 아셀 사이에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아얄론은 단 지파에 있습니다.

13절입니다.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비라돈은 에브라임에 속한 지역입니다.

14절입니다.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압돈이 70명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사사, 선지자가 뭐하는 사람이냐? 바로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본인만 구원에 이르는 사람은 의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명령에 순종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군중은 가르침을 받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콜링을 받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콜링을 받으면 제자, 제자에 있다가 구원이 일어나면 의인, 의인에서 남을 구원으로 인도하면 사사나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사와 선지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사사는 왕이 오기 전에 백성들을 인도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왕의 개념은 구원이 확실한 자를 의미합니다. 왕은 여호수아를 통과하고 사사기를 통과하고 사무엘상을 통과해서 나온 인물이 다윗왕입니다. 사사는 백성을 판단하며 인도하지만 아직 왕이 안 된 상태입니다. 삼손도 사사인데 사사는 구원에 확실하게 이른 수준이 아닙니다. 사사들도 문제가 있는데 얼마 못 갑니다. 압돈도 8년 동안만 다스립니다.

15절입니다.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왜 사사들이 길게 못 갈까요? 사무엘은 80년동안 사사로 있었는데 그 뒤에 사사들은 점점 기간이 줄어듭니다. 사사기에서 뒤로 갈수록 믿음이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 중에 얼마 쓰임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이 점점 하락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사사 삼손입니다. 믿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잠깐 동안만 쓰임받고 다른 인물로 교체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력으로 남을 인도하는데 그 영의 파워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악할수록 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옛날에 힘들고 어려울 때는 믿음으로 살았는데 점점 세상이 편해지고 고난도 없고 형통해지니까 영이 점점 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세워도 금방 영력이 떨어져서 교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힘드실 겁니다. 우리가 오래 쓰임받기 위해서는 영력을 개발하여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가요계에서도 급수가 작은 가수들은 한 곡 가지고 계속 부르지만 조용필, 이미자 같은 고수들은 곡들이 계속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도 고수들은 계속 나옵니다. 설교도 영력이 약한 사람들은 금방 고갈되어 여기저기 찾아 다닙니다. 또는 책을 읽고 발췌해서 그것으로 설교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자신의 이야기는 안 하고 다른 사람 것을 자기 것처럼 만들어서 설교합니다.

더 나아가 영적인 능력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고난은 영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아 주는데 그래서 고난을 사모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인도자가 최소 10배 정도는 더 강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도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인도가 엄청 어려운 것입니다. 영력 곡선에서 최고치에 있을 때 쓰임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래 쓰임받기 위해서는 더 많이 울고 애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현재 자신의 수준에 만족하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는 더 올라가야 되고 더 깊어져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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