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3장 [구원 후 풍요와 음란을 섬겨 구원상실이 일어납니다]

 


사사기 3

[구원 후 풍요와 음란을 섬겨 구원상실이 일어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모든 시험은 귀신에게서 옵니다. 시험은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게 합니다.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전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영적 전쟁, 특히 내부적인 전쟁이 항상 있습니다.

 

3절입니다.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블레셋은 현재 팔레스타인이라 불리는데 가자,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가드 이 5개 정도 나라인데 원귀신에 속하는 블레셋이 이 5개 왕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모든 시험의 본질은 계명에 순종하느냐 못하느냐입니다. 귀신이 하는 일이 십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우리에게 외적인 질병이나 어려움을 주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야 지옥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 들어서 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귀신의 역할인데 이 존재를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것입니다. 이 귀신과 싸워서 이겨야 천국에 가는 것인데 싸우지 않고는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싸우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구원상실이 되어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천국 지옥은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가나안 족속이 왜 일곱 족속이 아니라 여섯 족속일까요? 한 족속이 빠졌는데 바로 기르가스 족속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때 그냥 보너스로 나가 버리는 귀신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우리가 어떻게 시험에 들고 계명을 어기게 될까요? 바로 내 안의 귀신과 연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안에 성령님과 연합이 될 때 은혜의 신앙이 됩니다. 하지만 내 안에 귀신과 연합이 되면 결혼하는 것과 같은데 영적으로 연합이 되는 겁니다. 결혼은 의미상 결혼이라고 표현한 것이고 귀신의 생각이 바로 내 생각이 되는 겁니다. 안에 있는 귀신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영적으로는 귀신과 연합하는 것이지만 외적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바알은 하나님 외에 풍요나 성공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신은 결코 마귀를 섬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 명예와 내 성공과 내 부귀를 추구하도록 합니다. 내가 주인 되는 것이 바로 바알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참신앙인데 나를 섬기므로 내가 잘 되어야 하고 내가 복을 받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축복교회, 축복성회, 축복 기도원 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잘 되는 것이 신앙인 줄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만을 섬겼지만 축복이 아니라 고난과 환란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내가 잘 되고 잘 사는 것은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내가 잘 되는 것에 신경을 쓰면 내 안에 어둠이 들어왔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힘들어 하는 것, 반대로 내가 잘 될 때 기뻐하는 것 자체가 나를 섬기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를 섬기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종이므로 안 되도 되고, 망해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생각은 내가 잘 되는 쪽으로 돌아가는데 이게 바로 바알입니다. 어둠이 들어오면 염려가 많아지고 욕심이 많아집니다. 바알을 섬기면서도 내 자신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 보다 나의 어려움 때문에 눈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바알이 내 안에 오면 나를 기복쪽으로 끌고 갑니다.

 

아세라는 뭘까요? 바알의 부인일까요? 바알의 부인은 아세라가 아니라 아스다롯입니다. 아세라는 바알의 어머니입니다. 이 아세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음란입니다. 음란은 우리가 세상에 빠지게 하는 양념 중에 하나입니다. 귀신의 파워는 음란에 비례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음란한데 귀신이 더 많아졌다는 증거입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음란이 더 발달합니다. 지금은 전 세계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분을 불문하고 다 음란합니다. 바알을 섬길 뿐만 아니라 아세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주로 기복과 음란을 이용해서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우리 안에 귀신이 있는데 그 귀신이 바로 밖에 있는 메소보다미아를 끌어 들이게 됩니다. 메소보다미아는 왕년에 구원을 잃은 자를 의미합니다. 귀신은 구원을 잃은 사람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구원 잃은 교회, 구원 잃은 사람과 가까워지게 만듭니다. 귀신이 내 안에서 역사하면 이상하게도 구원을 잃은 목사, 구원을 잃은 교회가 좋아지고 구원을 잃은 자들이 쓴 책들이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참구원을 얻게 되면 이런 것들이 싫어지게 됩니다.

 

메소보다미아는 발달된 문명으로 세상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구원을 잃어버린 문화와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나도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름만 기독교이고 하나님이 전혀 없는 사이비나 이단 쪽으로 가게 됩니다. 왜 갈까요? 내 안에 귀신이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어둠과 결탁해서 섬김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신 이유도 셈 족에서 쭉 이어져 온 신앙이 우상신앙으로 변했기 때문에 따로 끌어내신 겁니다. 사람은 내가 속한 공동체, 내가 대화하는 대상에 따라 엄청 영향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계속 그곳에 있으면 지옥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빼내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기자 진노하시고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에게 넘기시고 팔 년동안 섬기게 하십니다.

 

9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입니다. 갈렙은 헤브론을 얻은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외에 세상을 섬기지 않은 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우리가 우리 안의 귀신의 영향으로 잘못된 교파나 교단에 빠졌다가 회복하는 내용입니다.

 

11절입니다.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8년 동안 리사다임에게 빠져 있다가 다시 회복되어 40년동안 믿음 생활을 잘 하게 된 것입니다. 귀신들을 이기고 참 믿음으로 돌아온 것인데 다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1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이번에는 모압입니다. 모압은 롯의 자손입니다.

 

13절입니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모압이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암몬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쳐들어 온 겁니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입니다. 가나안 일대는 다 하나님을 섬겼던 지역인데 지옥간 경우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독교인데 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는 자들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음란과 풍요가 발달했습니다. 메소보다미아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라면 이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을 섬겼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멀어져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단을 이해할 때 교리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다가 떨어져 나간 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유다서에 나왔듯이 가인이 이단입니다. 발람 또한 이단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해도 죄를 지으면 이단이 됩니다. 메소보다미아는 타종교, 사이비가 된 경우지만 모압과 암몬은 겉으로는 기독교 모양이지만 음란과 기복을 이기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들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내 안의 귀신이 역사할 때 외부의 귀신도 함께 들어 옵니다.

 

14절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8년동안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두 번째 사사인 에훗이 나옵니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던 사람입니다.

 

16절입니다.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한 규빗, 45cm 되는 단검을 만들어 허벅지 옷에 숨기고 갑니다.

 

17절입니다.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에글론은 ‘fat' 뚱뚱한 왕입니다. 옛날에는 돈이 있어야 뚱뚱했습니다. 구원 받았는데 일이 잘 되고 형통하고 돈을 잘 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니라 풍요를 섬기게 됩니다. 이게 바로 모압과 암몬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믿음 좋은 장로입니다. 사업이 잘 되고 일이 잘 되고 부와 명예도 얻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모압과 암몬처럼 구원상실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 서머나 교회가 칭찬받고 천국 갔을까요? 서머나 교회는 평생 환란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고난에 있다보니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 믿으니까 너무 잘 되고 복이 쏟아지다보니 내가 잘 믿어서, 믿음이 좋아서 형통하는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파산되고 이탈된 것입니다. 육적으로는 에글론 왕처럼 뚱뚱해져서 비둔하게 됩니다.

 

18절입니다.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9절입니다.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돌 뜨는 곳은 채석장을 말합니다. 왕에게 비밀이 있다고 말하고 신하들을 다 물러가게 합니다.

 

20절입니다.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서늘한 다락방, ‘summer parlour’ 여름용 응접실인데 그만큼 부요하고 잘 사는 것을 알려 줍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에글론이 하나님을 알고 믿은 사람입니다. 모압과 암몬이 불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단지 지옥가는 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경건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옥갔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경건해 보여도 지옥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21절입니다.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에훗이 칼로 왕의 몸을 찌른 것처럼 우리도 말씀의 칼로 우리안의 어둠을 찔러야 합니다. 자신이 천국 간다고 확신하고 있고 그러기에 하나님께 복을 받아 잘 된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결국 지옥갑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천국에 가는 줄 알았는데 지옥갈 자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 받은 후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데 구원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2절입니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칼자루까지 따라 들어갔는데 너무 뚱뚱해서 그런 겁니다. 칼을 빼낼 수 없을 정도였고 원어에는 있는데 생략된 것이 있는데 더러운 것입니다. 더러운 것들이 나온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더러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밖으로 다 빠져 나와야 합니다. 말씀을 칼로 찔림 받을 때 회개를 통해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23절입니다.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그니라

에훗이 방들의 구조를 잘 알았기에 문들을 안에서 잠근 겁니다.

 

24절입니다.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들어와서 다락문들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25절입니다.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들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가지고 열어 본즉 그들의 군주가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

오래 기다려도원어에는 부끄러워질 때까지 지체하고신하들이 계속 기다리다가 염치불구하고 열쇠를 가져온 것입니다. 문을 열어보니 에글론이 죽어 있는 것을 본 겁니다.

 

26절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돌 뜨는 곳, 길갈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합니다.

 

27절입니다.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나팔은 복음전파를 의미합니다. 말씀의 칼로 자신을 돌이키게 되었는데 에브라임 산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산지는 영적으로 예배처를 의미합니다.

 

28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요단 강 나루에서 진을 치고 사람들이 건너가지 못하게 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구원상실의 땅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의미합니다.

 

29절입니다.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에훗이 에글론 왕을 죽인 후에 참 복음전파를 통해 당신들은 모압 왕처럼 구원에서 이탈되면 안 됩니다.’ 하며 구원 상실을 막은 겁니다. 다시 말하면 모압 왕으로부터 구원상실될 영혼들을 구출한 것입니다. 옷니엘은 그나마 쉬운 전투였지만 에훗은 같은 기독교 내에서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귀신의 왕, 어둠을 먼저 말씀의 칼로 찔러 이기고 구원이 상실될 위기의 영혼들에게 복음전파를 통해서 구원 상실을 막은 겁니다. 오늘날에도 영적인 싸움에서 모압과 암몬의 세력을 이해하고 먼저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이 복음전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0절입니다.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옷니엘은 40, 에훗은 80년 동안 평안했습니다.

 

31절입니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소 모는 막대기소는 일꾼들이고 막대기는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를 의미합니다.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블레셋은 우리 안의 원귀신을 말하는데 우리 안에 풍요와 음란의 죄들을 막대기로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어도 안에 어두움이 있는데 말씀의 막대기로 자꾸 자신을 쳐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원귀신이 욕심과 음란과 풍요를 계속 불러 일으키는데 이것을 막대기로 계속 쳐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계속 다듬어 주십니다. 구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마귀들은 음란과 풍요로서 구원받은 자들을 서서히 이탈시키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합니다. 이 싸움은 계속 되는데 드디어 사무엘상,하에 가서는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나옵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고 치열한 싸움을 통해 이기면서 완성되어 갑니다. 싸움에 숙달되어 우리 안의 귀신들과 싸워 승리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현대 신학으로는 풍요와 음란의 죄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유익합니다. 이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방법이 됩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잘 먹고 잘 살고 인기가 많다 해도 죽어서 지옥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 앞에 힘들어하고 눌림 받으면 안 되고 감사해야 합니다. 형통이나 잘 되는 것 앞에서 오히려 겁을 내야 합니다. 사람은 내가 좀 편하고 잘 되면 100%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못 들어가는데 이 세상에서의 복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땅의 모든 복에 욕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예수님만을 소망하고 천국만을 소망해야 합니다. 에글론의 부가 복입니까? 우리는 복을 따라가면 안 되고 반대로 고난을 선택하고 힘들 때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나를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과 고난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나를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바쁠수록 죄 질 생각과 틈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생과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jaegap33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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