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전장 강해] 여호수아 5장 강해 말씀 (마음의 할례, 삶의 성찬, 예수님의 현현)


여호수아 5

[마음의 할례, 삶의 성찬, 예수님의 현현]

 

1절입니다.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가나안에 일곱 족속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고 두려워 떨고 있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부싯돌은 불꽃으로 불을 내는데 쓰는 돌인데 과거에 돌칼을 만드는 재료였습니다. 할례는 현대판 세례를 말합니다. 한동안 할례를 안 해 오다가 다시 행하라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할례 산은 오번역이고 포피 언덕입니다. 당시에 아무나 할례를 할 수 없고 의사급 사람이 움막 안에서 줄을 세워놓고 한 사람씩 할례를 시행했을 것입니다. 자른 포피를 웅덩이나 산에 버렸을 것인데 그래서 포피 언덕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200만명 가운데 60만명 정도가 할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4절입니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원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때부터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 받지 않으면 백성에서 끊어진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안 받은 자들도 있습니다. 바로 광야 길에서 난 자들과 모세의 아들들입니다. 모세의 아들들은 미디안 파였기 때문에 할례를 안 받았습니다.

 

5절입니다.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할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지 않으면 다 지옥갑니다. 천국과 지옥은 세례식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분들이 세례를 받기만 하면 천국인 줄로 착각합니다. 천국 아닙니다. 오늘 말씀처럼 할례 즉, 세례를 받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할례를 받았지만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먼저일까요, 할례가 먼저일까요? 요단강입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구원 후 세례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3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했는데 구원 후 세례입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죄가 끊어져야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아무리 율법대로 살아도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마음에서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고 되어 있습니다.(신명기 16:10) 이 구절을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또 사용합니다.

 

육신의 할례는 외적인 행사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할례, 즉 마음에서 죄가 끊어지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했다는 것은 마음의 죄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짜 세례는 구원받은 자에게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도 문제가 되는 것이 구원상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에게 줘야 할까요? 사도바울은 놀랍게도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 구원을 잃지 않은 사람에게 세례를 줍니다. 세례를 아무에게나 주면, 그것 때문에 나는 세례 교인이야.’라는 생각으로 미혹이 됩니다.

 

8절입니다.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보통 일주일이 지나야만 살이 붙습니다. 2주가 지나면 활동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행동합니다. 나중에 나옵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reproach' 책망, 훈계, 수치, 경계를 의미합니다. 더러움이 없게 하는 것으로 불신자들은 더러움이 있습니다.

 

10절입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절입니다.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무교병은 죄가 없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40년간 행했습니다. 그런데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성찬식을 안 하는데 그 이유가 성찬의 미혹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유월절 행사 때마다 먹고 마시면서 구원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옥 갔습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들이 성찬식을 다 행합니다. 이게 구원의 증거인 줄로 착각합니다. 내가 성찬식 때 빵을 먹으면 예수님의 몸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포도주를 마시면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성찬은 그런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진짜 성찬입니다. 누룩없는 빵을 먹는 것, 즉 삶에서 죄를 짓지 않는 것 자체가 진정한 성찬입니다.

 

성찬은 외적인 형식이 아닙니다. 죄 없는 삶, 그것이 성찬입니다. 구원 가운데 주님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저희는 성찬식을 행하지 않는데 이런 겁니다. 성찬식 때 빵과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리고는 ~ 내 몸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들어왔어. 느낌상 엄청 뜨거웠어. 눈물도 하염없이 나와.’ 하며 마치 성찬이 뭔가를 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한 번도 성찬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성찬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희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성찬식도 행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성찬식 하지 않는 것이 더 건전합니다. 왜냐? 성찬은 구원을 받은 다음에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다음에 성찬을 행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자가 적습니다. 구원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이 성찬을 행하고 참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의미없는 의례와 의식일 뿐입니다.

 

참된 성찬은 내가 구원받아서 예수님과 먹고 마시며 삶 자체가 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됩니다. 삶 자체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 이것이 성찬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연중 행사가 아니라 늘 삶에서 있는 것입니다. 라면을 먹어도 빵을 먹어도 늘 좋습니다.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12절입니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만나가 계속 임하다가 그친 겁니다. 드디어 가나안에서 나오는 곡식을 먹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과 후가 다릅니다. 이집트에 있었던 불신자의 삶이 있고 거듭난 이후 광야의 삶이 있고 다시 홍해를 건너게 된 삶이 있습니다. 진짜 구원을 받게 된다면 여러 가지 의식이나 의례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신앙이 없으면 자꾸 의식이 발전하고 많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식이 안 되기 때문에 자꾸 의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유아세례를 줍니까? 유아세례가 성경에 나온 예가 한 곳도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하면 안됩니다. 학습도 성경에 없고 교리를 배워서 가르치는 것도 없습니다.

 

13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여호수아가 여리고라는 가나안에서 가장 큰 적군을 만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비장한 각오로 다가갔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는데 어떤 분이 칼을 빼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아직 적군인지 아군인지 몰랐기 때문에 물어 본 것입니다. 누굴까요? 예수님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여호수아를 향해 칼을 빼 들고 계실까요? 지금 구원받고 세례도 하고 성찬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꾸로 칼을 들고 서 계신 것입니다.

 

14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예수님은 군대 장관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천군천사와 함께 적군을 물리치십니다. 여호수아 힘으로 안 됩니다. 우리 힘으로 귀신 못 물리칩니다. 우리 힘으로는 구원을 완성 못 시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셔야 이길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드디어 여호수아가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이마를 땅에 대로 엎드려 경배한 것입니다. 지금부터의 싸움은 예수님 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판도가 다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대적하는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인간적인 싸움이 아니라 다 영적인 싸움입니다.  싸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성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성자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 안이 구원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장관이 되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게 됩니다. 나의 장관이 되시고 승리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실 때 승리가 가능합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우리의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생각과 힘으로는 마귀를 절대 못 이깁니다. 인간적인 지정의로 싸우면 100% 패배합니다. 절대 마귀를 못 이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과 은혜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게 어려운 겁니다. 모든 영적인 싸움에서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버리지 않으면 제 풀에 지쳐 쓰러집니다. 여리고를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못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어디든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는 거룩한 곳인데 그래서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 주십니다.

 

여호수아 전, 구원받기 전에는 율법이 인도했는데 구원 후, 여호수아 때부터는 예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이 때부터는 성령의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놀라운 구조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은 율법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힘으로 우리를 잡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7족속을 전멸시키고 패배시켜서 승리하게 됩니다. 누가?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힘을 빼고 나를 맡기고 살면 됩니다. ‘율법대로 해야지~’하며 억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나를 붙잡아 주셔서 순종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이후에는 신앙이 훨씬 쉬워집니다. 그 전에는 죄가 누르고, 귀신이 눌러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쉽게 의의 삶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끌어 가시고 여호수아는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마어마한 성을 무너뜨리시고 격파시켜 주셔서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역사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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